Deeper Into Movie/리뷰 221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

나는 레슬러입니다 격투 종목 자체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사실 누군가의 패배로 끝나게 되는 스포츠라는 것에 그렇게 많이 열광해 본 적이 없다. 좀 불편하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는 속된 말로, 구닥다리스럽다. 그의 대표작 [레퀴엠]에서 보여줬던 세련되고 음울한 편집 및 촬영술도, 정교하게 구성된 시나리오도 없다. 1980년대 프로 레슬링 대스타였던 랜디 램은, 이제 한물간 스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링 위에서는 스타지만, 링 밖에서는 그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망가진 사내일 뿐이다. 잘 풀리지 않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경기할 기회가 찾아온다. 솔직히 보기 전만 해도, 이 영화가 허세로 밀고 갈까 걱정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뒤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랜..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Ma Nuit Chez Maud / My Night At Maud's] (1969)

솔직함의 중요성 에릭 로메르의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은 평범한 프랑스인의 삶을 쫓아간다. 평범한 지식인 주인공 장은 오랜 옛 친구를 만나고, 그를 통해 모드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주변을 얼쩡거리기만 할 뿐 솔직하지 못하게 굴다가,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5년 뒤 어느 해안가에서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난다. 이 영화에는 단순한 스토리에 비해 대사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대사도 상당히 지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현기증 나게 재미없을것 같지만, 의외로 전혀 그렇지 않다. 보다보면 굉장히 유려하면서도 쿡쿡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다. 이는 에릭 로메르가 현학적인 대사을 어떻게 이야기 및 연기자의 흐름에 집어넣을 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우연의 음악 오늘은 평소처럼 딱딱하게 쓰지 않고, 가볍게 쓸까 합니다. 마치 일기처럼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다소 고민되긴 하지만, 그 리스트에 폴 토마스 앤더슨라는 이름은 꼭 들어갈 겁니다. 제가 이 사람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였죠. 그리고 나서 본 게 [데어 윌 비 블러드]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 감독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게 됬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나 테크닉이나 당대 최고라 할 만 합니다. 동년배 중에 이만한 감독이 있을까 싶네요. 오늘 드디어 펀치 드렁크 러브 이전에 발표한 [매그놀리아]를 보았습니다. 보고 난 뒤, '음... 역시 앤더슨 감독은 날 실망시키지 않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의 압박이 심했긴 했지..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달콤씁쓸한 교향곡 중독이라는 것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실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일상에서 중독이라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상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뇌는 의외로 이성으로 좌우되지 않고 감성으로 좌우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꼭 그것만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무언가에 깊게 몰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 역시 일종의 중독이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은 4명의 인물에서 시작한다. 마약상 타이론과 그의 친구 해리, 해리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해리의 연인 마리온은 모두 한 줄기의 희망을 위해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약을 먹으며 도취감에 빠지는 그들. 하지만, 점점 일은 꼬여가며 그들은 파멸의..

만약... [If...] (1968)

세대의 테러리스트들 현재의 교육 체제는 근소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머리에다 쑤셔 박는 주입식 교육이며, 학생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당연히 전 세계의 학생들은 학교를 싫어하며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물론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진정한 교육은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런 진정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경외심 마저 있다.) 하지만 현 시대의 교육이 사회에 맞는 인간을 찍어내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확신 할 수 있냐면, 우리 모두 그 교육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국의 기독교 계열 기숙학교, 엄격한 규율과 감시로 가득한 그 곳에서 트래비스..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딱히 주절주절 제 생각을 늘어놓기에는 좀 그래서 그냥 간단리뷰 형식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1. 오늘 보고 왔습니다. 사실 보러 가면서 다소 '이거 실망하고 나오는 거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14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군소리 없이 화면에 집중해버렸습니다. 2. [밀양]처럼 아이를 유괴로 잃은 어머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체인질링]은 그러나, [밀양]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밀양]이 구원과 믿음이라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면, [체인질링]이 건드리는 주제는 폭 넓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사회의 모순을 통렬하게 고발하기도 하고, 원죄를 범한 인간의 비통함을 조용히 다독이기도 하고, 절망 속에서도 끝없이 포기하지 않는 자의 눈물겨운 투쟁에서 의미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비중을 따지자면 ..

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어렸을때, TV에서 영화를 소개시켜주는 프로그램를 열심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소개해 준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이였던게 무엇이였냐 물으면, [비디오드롬]을 들 수 있다. 뭣도 모르는 초등학교 꼬마 남자애에게 살아 숨쉬는 비디오나 얼굴에 TV를 갖다대는 장면은 쇼킹했다. 그 후 영화에 눈 뜨면서 이 영화와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일종의 금기 및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감상한 바로는 그런 금기와 신비로움이 절대로 허투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느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맥스는 평범하지만 자신만만한 인물이다. 그는 자극을 팔아 장사를 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합리화한다. 그 합리화에는 나름대로 자기 논리가 서있는데, 그가 운영하는 유선 방송은 자극적..

칠드런 오브 멘 [Children of Men] (2006)

아이는 어른의 부모 요 며칠 동안 가자 지구 폭격으로 시끄러웠었다. 비단 가자 지구겠는가. 전 세계의 70%가 다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 사는데 폭격을 가하고 분노한 피해자들은 다시 폭탄을 던진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홧김에 "그래 이딴 머저리 같은 인간이란 종족은 싸그리 죽는게 지구에게 훨씬 도움되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우울하다. 인간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뭔가 사정 때문에 볼 때를 놓친 [칠드런 오브 멘]을 어머니와 함께 보았다. 영화는 2027년 미래의 영국에서 시작한다. 18년 동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미래. 그나마 마지막으로 태어났던 아이는 죽어버리고, 전세계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컨트롤 [Control] (2007)

미지의 쾌락 속에서 조이 디비전을 만난 것은 2007년 3월이였다. 당시 난 음악에 대해 이것저것 찔러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중이였다. 열심히 평론 사이트와 위키피디아를 들락날락거리며 좋다는 음반은 모조리 찾아 들었고, 아티스트에 대한 지식도 섭렵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나에게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 다섯 글자를 가르켜 주었다. 대학 입시로 인해 음반 구매는 금지 되었고, 난 이왕인 김에 듣고 싶었던 거 한꺼번에 사서 듣기로 했다. 그래서 조이 디비전의 [Substance]을 구매했다. 몇몇 곡들은 이미 불법으로 들어봤지만,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듣기 시작했다. 웅얼거리다가 절규하는 이안 커티스의 보컬, 헤비하지만 날카로운 버나드 섬너의 기타, 무겁게 둥둥거리는 피터 훅의 베이스와 스티븐 모리스의 드..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톰의 폭력: 폭력,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전에 리뷰를 썼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는 영화가 주는 감정적 충격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인공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었다. 그게 단점이라는 건 아니지만(차에 하악하악 해대는 인간들에게 사실성을 바라는 것은 웃기는 일 아닌가!), 여튼 '아 이 영화 내 하트를 자연발화시키네'라고 감동하기엔 거리가 먼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놓은 [스파이더] (아이러니컬 하게도 제대로 본 첫 크로넨버그 영화였다.)는 굉장히 달랐다. 비록 금기된 성적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영화의 묘사는 놀랄 만큼 차분했으며 마지막에 안겨주는 충격도 [크래쉬]때와 다른 느낌이였다.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기엔 거리감이 있었지만, 적어도 [크래쉬]때 처럼 인공적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