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컨트롤 [Control] (2007)

giantroot2008. 11. 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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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쾌락 속에서

조이 디비전을 만난 것은 2007년 3월이였다.

당시 난 음악에 대해 이것저것 찔러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중이였다. 열심히 평론 사이트와 위키피디아를 들락날락거리며 좋다는 음반은 모조리 찾아 들었고, 아티스트에 대한 지식도 섭렵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나에게 조이 디비전이라는 이 다섯 글자를 가르켜 주었다.

대학 입시로 인해 음반 구매는 금지 되었고, 난 이왕인 김에 듣고 싶었던 거 한꺼번에 사서 듣기로 했다. 그래서 조이 디비전의 [Substance]을 구매했다. 몇몇 곡들은 이미 불법으로 들어봤지만,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듣기 시작했다. 웅얼거리다가 절규하는 이안 커티스의 보컬, 헤비하지만 날카로운 버나드 섬너의 기타, 무겁게 둥둥거리는 피터 훅의 베이스와 스티븐 모리스의 드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바로 처박고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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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아이팟을 사고, 들을 게 없어서 조이 디비전 음반을 다시 도전했다. 일단 귀에 익자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웠다.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들어갔고, 'She's Lost Control', 'Transmission', 'Dead Souls', 'Love Will Tear Us Apart'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안톤 코빈의 [컨트롤]은 바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언 커티스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데이빗 보위와 섹스 피스톨즈의 팬이였던 19살의 소년 이안 커티스가 소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밴드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점점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해결책으로 선택한 것은 죽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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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이안 커티스는 자신의 삶에 대해 늘 짓눌린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첫 사랑과 열렬한 사랑도 식어가 점점 족쇄가 되어가고, 그나마 공연 중에 만난 여자에게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곧 그것은 또다른 족쇄가 된다. 게다가 간질이라는 끈질긴 병으로 정상적 삶이 불가능 해지는 상황에서 유약한 그는 음악에 매달리지만 곧 음악 역시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런 그의 태도를 보고 찌질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모든 일에 대범한 영웅이 아닌, 이래저래 하지 못하는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걸 생각해 보면 그의 삶을 그저 찌질하다고 매도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들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런 모습인데... 이제 모든 것이 통제 되지 않는다." 그의 이런 고백은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에 대해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좌절한 어느 예술가의 담담하지만 솔직한 심경이 담겨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쉽게 통제 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의 이런 고백과 마지막 결론에 전율과 서늘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Atmosphere'가 흘러나오는 결말에 이르러선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지는 경험을 했다. 가히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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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코빈의 연출은 지극히 담담하다. 그는 영화 내내 이안 커티스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대신 그가 처한 상황들을 흑백의 미묘한 대비와 인물 배치, 음악 사용을 통해 드러낸다. (이는 이안과 데보라가 아닉에 대해 다투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런 연출은 그동안 뮤직비디오와 사진을 다뤄왔던 그의 전략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그는 어설프게 내면 심리를 다루는 기존 영화 연출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가 잘 해왔던 연출 방식을 쓰기로 했다.

이런 의도는 대부분 성공했다. 그의 이런 연출을 통해 영화는 동양화 같은 미묘한 매력을 지니게 됬다. 안톤 코빈의 빛과 그림자, 흑과 백에 통달한 미적 감각은 서양화의 원근법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뮤직 비디오계에서 거장으로 군림할 수 있던 이유도 이런 독특한 미적 감각에 있을 것이다. 영화 역시 그런 미적 센스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리고 그 미적 센스가 전혀 천박한 과시로 드러나지 않고 언제나 주제와 내용을 위한 도구로 머문다. 이 역시 발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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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담담한 연출은 종종 이안 커티스라는 인물의 심리 묘사에 대한 결핍이라는 단점으로도 나타난다. 영화내에서 종종 이안 커티스라는 대상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는 영화의 인간적 체취를 앗아가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다행히도 샘 라일리의 훌륭한 연기(간질 연기는 소름이 돋았다.)가 이런 단점들을 어느정도 보완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컨트롤]은 뮤직 비디오 감독이 겪을 수 있는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간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종종 영화가 무미건조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대부분 좋은 배우의 좋은 연기가 그것을 커버하고 있으며, 영화의 완성도를 위협할 정도로 해치지는 않는다. 그동안 뮤직 비디오 출신 감독들이 어설프게 영화 연출을 흉내내다가 추락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노련한 감독의 훌륭한 영화 데뷔작에 좀 더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게다가 생생하게 재연된 조이 디비전의 실황을 영상으로 본다는 장점까지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PS. 이왕인 김에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와 비교를 해보자면, 1.우선 매니저인 롭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고, 2.질리언 길버트가 단역으로나마 등장하고 3.뉴 오더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당연하겠지만) 4.마틴 하넷이 덜 뚱뚱하고(!) 5.시니시즘이 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느 쪽이 좋냐면... 뭐 비등비등하다.

PS2. 부제는 조이 디비전 1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