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giantroot2008. 7. 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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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의 폭력: 폭력,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전에 리뷰를 썼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는 영화가 주는 감정적 충격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인공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었다. 그게 단점이라는 건 아니지만(차에 하악하악 해대는 인간들에게 사실성을 바라는 것은 웃기는 일 아닌가!), 여튼 '아 이 영화 내 하트를 자연발화시키네'라고 감동하기엔 거리가 먼건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놓은 [스파이더] (아이러니컬 하게도 제대로 본 첫 크로넨버그 영화였다.)는 굉장히 달랐다. 비록 금기된 성적 소재를 다루고 있었지만, 영화의 묘사는 놀랄 만큼 차분했으며 마지막에 안겨주는 충격도 [크래쉬]때와 다른 느낌이였다. 여전히 쉽게 받아들이기엔 거리감이 있었지만, 적어도 [크래쉬]때 처럼 인공적인 느낌은 아니였다. 랄프 파인즈가 열연한 실제로 있을법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오늘 그 여세를 몰아 본 [폭력의 역사]는 그런 변화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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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의 평범한 소도시. 톰 스톨이라는 평범한 남자가 자기 식당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그는 그 일로 주목받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전국에 보도 되면서 낯선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게 되고, 그의 평온한 일상은 무너지게 되는데...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 팬들은 저 플롯에서 뭔가 느낀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슈퍼 히어로 물이다! 한번 이야기 구성요소들을 살펴보자. 평범한 남자, 초인적인 능력, 숨겨진 정체, 그 정체가 불러오는 위기... 실제로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물로 유명한 DC 코믹스사의 그래픽 노벨을 원작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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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슈퍼 히어로 물 언급은 여기까지다. 오히려 이 영화는 슈퍼 히어로 공식을 받아들인 갱스터 영화에 가깝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대부식의 '개인과 범죄 조직간의 암투'로 나아간다. 여기까지 오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영화가 그냥 단순한 상업적인 영화인가, 궁금해질 것이다. 저 거창한 제목은 유식한 관객들을 낚기 위한 제목이였던 것일까? 이 영화는 그냥 평범한 액션 스릴러 였던 것일까?

답은 '아니다'다. 이 영화는 제목과 걸맞는 주제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폭력'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 속 폭력이 어떻게 생산되는가와 그것에 대한 감독(및 원작자)의 비판적 논평이다. 그럼 이 영화의 폭력을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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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폭력은 양면적이다. 분명 이 영화의 폭력은 쾌락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크로넨버그 영화의 한 부분이였던 악취미적인 요소는 없지만, 피가 꽤 튀는 편이며, 폭력을 다루는 터치 역시 사실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 폭력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럼 실패한 것인가?

이 역시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바로 일상의 폭력의 메커니즘과 관객이 그 폭력에 열광하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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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톰의 폭력을 생각해보자. 톰의 첫 폭력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정당방위이다. 만약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폭력 이후 기자가 자랑스럽지 않냐고 물어보자 톰은 "아니요, 전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이런 태도는 그 뒤로도 이어지는데, 그 이후 갱단이 몰려와 그에게 상당히 심한 정신적 폭력을 가하고 그의 폭력적 자아인 조이가 다시 깨어나지만, 그가 대처한 방법은 놀랍게도 '비폭력'이다! 후반부에 두 번 그 원칙이 깨지긴 하지만, 그것 역시 첫 폭력처럼 정당방위 수준에 머무른다. 정리하자면, 온순한 톰이던 공격적인 조이던 톰은 굉장히 철저하고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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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는 톰의 아들 잭에게도 나타난다. 잭은 영화 초반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가 취하는 행동은 아버지 톰과 마찬가지로 비폭력이다. 그는 그 불량배들을 철저히 경멸하며(정학 받은 뒤, 아버지와 대화 중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걘 또라이에요" 아 간단 명쾌하다!),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 중반부에 그 역시 그 불량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불량배들 처럼 힘 쓸때 없다 터트리자 식의 폭력이 아닌, 그동안 쌓여 왔던 감정을 분출하는 수준에서 멈춘다.

이와 반대로 학교 불량배 및 필라델피아 갱들의 폭력은 참 찌질하기 그지 없다. 그들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위신을 갉아 먹었다고 괴롭힌다. 그리고 그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가히 꼴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폭력을 행사한 그 결과는? 절대로 좋은 결말은 아니라는 정도만 밝혀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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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들을 통해 영화가 면밀히 밝혀낸 과정과 결론은 이렇다.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폭력이 있다. 톰과 잭처럼 자기 방어적인 폭력과 학교 불량배 및 필라델피아 갱 처럼 자기 과시적 및 자신의 이익을 위한 폭력.

후자의 폭력은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폭력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런 대항도 못한다. 하지만 종종 그 폭력에 맞서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전자다. 관객이 전자의 폭력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는 저런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크로넨버그가 생각하는 폭력 메카니즘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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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이런 폭력의 메카니즘을 설명하고 논평하는데 그치지 않고 폭력이 평범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톰의 숨겨진 자아, 조이와 그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통해 드러난다. 비록 톰과 조이의 차이점이 거의 없으며 조이를 통해 드러나는 폭력이 철저히 통제되어 있더라도, 톰의 모습을 진짜라고 믿고 살아왔던 가족들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스파이더] 이전의 크로넨버그 전작이 즐겨 다루었던 변형에 따른 공포라는 점과 이어진다. 다만 직접적인 변형을 이야기 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의 변형은 지극히 정신적인 부분에 머물러, 전작 보다 보기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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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폭력성에 따른 성격 변화는 곧 크로넨버그 특유의 성적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초반부 섹스와 후반부 조이의 정체가 드러난 뒤 이어지는 섹스를 살펴보자. 초반부 섹스는 아내 에디를 중심으로 이뤄지며, 온화한 편이다.(주류 영화치고 과격한 69체위이긴 하지만) 하지만 후반부 계단에서 이뤄지는 섹스는 폭력적이고 격렬하다. 에디가 화를 내며 톰의 따귀를 때리고 계단으로 올라가자 톰은 에디를 확 잡아 땡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톰 주도의 섹스는 동물적 폭력성을 물씬 풍긴다.

이 장면은 극히 크로넨버그 답다. 전작 [크래쉬]의 섹스 신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섹스 신은 그러나, [크래쉬]보다 인간적이고 중후하다. [크래쉬]의 섹스신들이 "난 단지 섹스하는 기계에 불과해!!"라고 울부짖는 관념적인 인간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면, [폭력의 역사]의 섹스신은 관계의 폭력과 성 권력에 대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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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 모든 것을 끝마친 톰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이 있는 식탁에 앉는다. 하지만 전 같은 단란한 평화는 없다.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긴장과 침묵만이 남아 있다. 철저히 통제된 폭력 역시 주변 인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안겨 줬을 뿐이다.

[폭력의 역사]는 새로운 크로넨버그의 걸작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중후하고 놀랍게도 재미있다(!!). 사이버펑크와 SF를 넘나들며 기발한 충격을 던져 주었던 크로넨버그가 그리울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적어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업 스릴러 영화의 재미와 폐부를 찌르는 시각이 결합된 놀라운 영화다.

PS.한 달(2008/6/22) 묵혀놓은 글을 정리해 올린다. 쓸때는 왜 이렇게 정리가 안되던지;;;;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맞먹을 정도였다. 크로넨버그 영화는 보면 명쾌한데, 쓰면 상당히 힘들어지는 케이스다.
PS2.부제는 소닉 유스의 곡과 마크로스 극장판 제목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