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giantroot2009. 2. 19. 00:1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달콤씁쓸한 교향곡

중독이라는 것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실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일상에서 중독이라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상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뇌는 의외로 이성으로 좌우되지 않고 감성으로 좌우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꼭 그것만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무언가에 깊게 몰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 역시 일종의 중독이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은 4명의 인물에서 시작한다. 마약상 타이론과 그의 친구 해리, 해리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해리의 연인 마리온은 모두 한 줄기의 희망을 위해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약을 먹으며 도취감에 빠지는 그들. 하지만, 점점 일은 꼬여가며 그들은 파멸의 길로 빠져들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퀴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당연 영상 표현 형식이다.  점프 컷 및 몽타쥬, 교차 편집 등을 활용한 날 선 편집, 스테디 캠, 핸드헬드, 어안 렌즈 등 이 세상의 촬영 기법을 모조리 동원한 촬영, 강렬한 조명 등 이 영화의 표현 형식은 한마디로 격렬하다. 그 외 폭력과 섹스에 대한 묘사에도 거침 없으며, 섬찟한 환상 장면도 많다. 보고 있으면 뇌와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이런 테크니컬한 장난에만 매료되지 않다. [레퀴엠]의 기교와 환상들은 모두 4명의 인물들의 감정과 사건을 묘사하는 데 충실하다. 그리고 묘사의 바탕이 될 법한 (아르노프스키 감독과 원작자인 허버트 셀비 주니어가 같이 쓴) 시나리오는 정공법으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성실히 쌓아올리고 있다. 이런 점들은 이 영화가 의미없는 자위 행위에 그치지 않도록 도와줄 뿐더러, 영상 표현 형식과 시너지 효과를 이루기도 한다.

정공법으로 흐르긴 하지만, 스토리 진행에 다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장 구분을 해놨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 서론은 '여름', 본론은 '가을', 결론은 '겨울'로 되어 있다. 이는 실제 계절의 흐름을 나타낼뿐만 아니라, 여름의 들뜨고 희망찬 기분이 가을에 와서 추락하다가 겨울에 본격적인 종말을 맞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다소 평범한 상징이긴 하지만, 충분히 시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튼 이런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마약 근절? 어느정도 맞긴 하지만, 아니다. [레퀴엠]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집착과 중독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인간에게 중독과 집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다. 그 중독은 텔레비전 중독, 음식부터 명성, 돈, 외모 그리고 헛된 희망 등 다양하다. 이 영화가 보편적인 감수성을 획득했다면 그건 아마도 (위에도 적었듯이) 무엇에게 중독된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르노프스키가 혼돈스러운 이미지의 미로와 진중한 메세지를 깔아놓는 동안, 배우들은 그 위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쳐낸다. 망가짐을 불사하는 제니퍼 코넬리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당연 엘렌 버스틴일것이다. 앙상블 연기가 주인 다른 배우들과 달리 혼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뿜지만 완급 조절이 잘 되어있는 그녀의 연기는 영화의 인간적인 중후함을 더해준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연기는 상대방과 관객을 강렬하게 찔러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록 영상미가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지만, [레퀴엠]은 시각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인상적인 영화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MTV 스타일을 이용하지만 그것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강렬한 인간 드라마를 창출해냈다. 최근 [더 레슬러]로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가져갔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만들어주시길 바란다.

PS1.부제는 버브의 곡에서 따왔다.
PS2.아주 짧게 쓸려고 노력했다. 뭔가 글이 참 허전해 보이지만, 모 님의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