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만약... [If...] (1968)

giantroot2009. 2. 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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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의 테러리스트들

현재의 교육 체제는 근소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머리에다 쑤셔 박는 주입식 교육이며, 학생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당연히 전 세계의 학생들은 학교를 싫어하며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물론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진정한 교육은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런 진정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경외심 마저 있다.) 하지만 현 시대의 교육이 사회에 맞는 인간을 찍어내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확신 할 수 있냐면, 우리 모두 그 교육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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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기독교 계열 기숙학교, 엄격한 규율과 감시로 가득한 그 곳에서 트래비스와 그 친구들은 호시탐탐 일탈을 시도하고, 자유를 찾는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격렬한 충돌 끝에 이야기는 급작스러운 파국을 맞는다.

이 학교의 궁극 목표는 영국 사회의 신사 사회에 걸맞는 인물을 양성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말 안 듣는 학생들을 규율과 체벌로 처벌해 "딴 생각 하지 못하도록" 계도하며, 삶을 보람차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식이 아닌 있어 보이기 위한 지식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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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흔함에 날카로운 메스를 대 그 속에 있는 추악함과 사회적 모순을 까발린다. 권력을 가진 아이들은 벌써 거들먹거리기에 바쁘며, 교사들은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지만, 실은 교사의 권위를 이용해 미소년 동성애에 빠져 있으며 정숙한 이사장 부인은 벌거벗고 교실을 활보한다.

그런 까발림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단연 후반부 유격 훈련 장면일텐데,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이 학교가 가부장제적이고 군국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말로는 학생들에게 소통한다고 한다는 거다. (남 일 같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교육을 하니, 제대로 된 사람이 나오기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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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재미있는 점을 짚자면, 영화 속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체 게바라와 베트남 전의 사진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이 영화을 해석할때 68혁명을 떼어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체 게바라와 베트남 전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68혁명의 상징이였다.)

린제이 앤더슨 감독은 이런 장면 구성을 통해 당시 베트남 전과 잘못된 사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기숙 학교 교사 같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나서서 전쟁을 벌린게 바로 베트남 전이라 보고 있다. 잘못된 교육 방식과 제국주의는 잘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른들을 만들어내고, 전쟁을 만들고, 학생들을 억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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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적극적으로 반항을 모색한다. 처음엔 서재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술 마시며 도색 잡지 돌려보는 수준이지만, 그들의 억압이 심해질 수록 그들의 반항은 점점 과격해진다. 결국 그들은 '십자군'을 결성해, 학교 지붕 위에 올라가 기성 세대에게 총을 난사한다. 갑오농민항쟁이나 프랑스 혁명처럼 그들은 압제자를 처단한 것이다.

물론 콜롬바인과 버지니아 공대를 지나온 지금 관객들이 보기에, 이들의 행동이 과격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 속의 교사들과 학교 이사진들이 대부분이 인간적인 묘사가 거의 없는지라 막상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면 신랄한 야유와 쾌감마저 느껴진다. 제목의 만약은 결국 '만약 억압된 교육과 폭압적인 사회 질서가 사람들을 짓누르면...'의 축약인 셈이다.

희곡을 원작으로 했지만, [만약...]은 무대에서 자유롭다. 린제이 앤더슨은 무대의 답답함과 로케이션의 자유로움을 각각 학교와 일탈에 섞어넣었고, 이런 연출들은 대부분 영화의 꼬인 듯한 유머와 주제를 구축하고 있다. 종종 영화는 초현실주의로 빠져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친 사람이 이사장실 비밀 서랍에 누워있고, 흑백 필름과 이 별다른 구분 없이 섞여있고, 동물 놀이를 하던 두 남녀가 갑자기 옷을 벗고 격렬히 사랑을 나눈다. [만약...]은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엿같은 사회 및 교육 체제와 그 사회를 엿먹이는 자들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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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가져간지도 정확히 40년이 흘렀다. 당시엔 근사하게 보였을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실패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졌으며, 오직 자본주의만이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반항아 포스를 절절히 풍기던 말콤 맥도웰은 이미 중견 배우가 된 지 오래다. 이 영화의 몇몇 시각들은 이미 다른 영화들이 화끈하게 써먹었거나 써먹고 있다. 이 영화와 이 영화를 낳았던 68혁명을 낡아빠졌다고 비웃을 수도 있을것이다. "순진하긴, 이런 생각과 행동이 언제까지 먹힐 줄 알아?"라고.

하지만 얼마 전 거세게 몰아쳤던 촛불 시위에 가장 두드려졌던 세대는 바로 학생들이였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60년대 영국 기숙학교보다 지독했으면 지독했지 덜하지 않을 한국의 교육제도가 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의 제목처럼 '만약'의 경우는 어디에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자유와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이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대접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가장 보편적인 감수성과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성난 학생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 없다.

PS1.부제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첫번째 앨범인 [Generation Terrorists]에서 가져왔다.
PS2.요새 반사회적인 영화 리뷰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하도 엿같아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