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음악
오늘은 평소처럼 딱딱하게 쓰지 않고, 가볍게 쓸까 합니다. 마치 일기처럼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다소 고민되긴 하지만, 그 리스트에 폴 토마스 앤더슨라는 이름은 꼭 들어갈 겁니다. 제가 이 사람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였죠. 그리고 나서 본 게 [데어 윌 비 블러드]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 감독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게 됬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나 테크닉이나 당대 최고라 할 만 합니다. 동년배 중에 이만한 감독이 있을까 싶네요.
오늘 드디어 펀치 드렁크 러브 이전에 발표한 [매그놀리아]를 보았습니다. 보고 난 뒤, '음... 역시 앤더슨 감독은 날 실망시키지 않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의 압박이 심했긴 했지만, 영화가 훌륭하다 보니, 전혀 아깝지 않더군요.
로스 앤젤레스 산 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9명의 인물을 쫓아갑니다. 거물 프로듀서 얼은 죽기 전에 아들 프랭크(잭)과 화해하고 싶어하고, 필은 그의 소원에 따라 프랭크에게 전화를 걸려고 노력합니다. 한편 얼의 부인 린다는 얼에 대한 감정으로 미칠 지경이고, 얼이 제작한 TV 퀴즈쇼 사회자인 지미는 최근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가자인 꼬마 스탠리나 30년전 챔피언 도니, 지미의 딸 클로디아, 경찰관 루이스도 역시 비슷한 사정입니다.
[매그놀리아]를 본다는 것은 활화산이 폭팔하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스펙타클하고 어마어마한 감정이 마구 폭팔하는데, 이런 감정을 폭팔시키는 캐릭터가 하나가 아니라 9명씩이나 됩니다. 이런 전개는 자칫하면 신파스러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함점이 있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은 경이스러울 정도로 이걸 유려하게 통제하면서, 신실하게 묘사합니다. 20대 후반에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니 폴 토마스 앤더슨은 괴물인가 봅니다. 물론 배우들도 그런 괴물같은 감독의 성화에 힘입어 극상의 연기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에 상처받고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도피하거나, 억지로 꿰메 보려고 하죠. 하지만 모두 헛된 일로 판명나고, 좌절한 그들은 격렬하게 폭팔합니다. 하지만 결국 우연히 이어진 관계와 자신의 문제 대면으로 인해 그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그 실마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점 투성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고 있노라면 울컥함과 동시에, 최근 제가 고민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진정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라는 대답에 어느정도 답을 찾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사실 이 영화보다 더 다듬어진 [펀치 드렁크 러브]나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조금 더 개인적인 애정이 쏠리긴 합니다. 다소 결함도 있고요. 하지만 이 영화의 정서적인 충격 또한 참 벅찬 경험이였습니다. 우연과 용서로 이뤄진 거대한 교향곡이라고 할까요? 여튼 제 '폴 토마스 앤더슨 교'의 신앙심이 깊어지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가볍게 쓴다고 했더니 이상하게 길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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