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37

벌집의 정령 [El Espíritu de la Colmena / The Spirit of the Beehive] (1973)

벌집이 내게 들려준 시 영화가 가장 닮은 문학 장르는 의외로 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과관계로 진행되긴 하지만, 영상이 우리 머릿속에 틀어박히는 방법은 추상적이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굴비 엮듯 엮여서 하나의 뜻으로 만들어낸다. 이런 방식은 시 읽는 방식과 비슷하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벌집의 정령]은 그런 영상의 추상성과 시적 감흥을 극대화시킨 영화이다. [벌집의 정령]은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한다. 1940년 스페인의 카스티야 고원 시골 마을에 [프랑켄슈타인]이 상영된다. 두 자매인 아나와 이사벨은 그 영화에 흠뻑 빠지고, 아나는 언니인 이사벨에게 프랑켄슈타인은 진짜 죽었는지 물어본다. 그러자 이사벨은 "프랑켄슈타인은 안 죽었어. 난 그를 봤지"라고 대답해준다. 이후 아나는 그 말을 믿고 이곳..

일렉트릭 박스 [Electric Box] (2009)

Electric Puzzle → Brain on Fire 일렉트릭 박스는 굉장히 정통적인 퍼즐 게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템을 적절히 써서 기계를 작동시키기' (ex.[요절복통 기계]) 류죠. 게임 목표도 단순해서 주어진 도구를 적절히 배치해서 해당 위치에 있는 전원을 연결해야 하는게 전부입니다. 간단하고 기본에 충실한 게임 디자인에 비해, 게임은 꽤 어렵습니다. 후반 가면 굉장히 비비꼬이게 퍼즐을 설계해놓는 바람에 애 먹기 일쑤입니다. 스테이지 12를 클리어하는데 10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 그 점만 빼면 난이도 밸런싱 자체는 무난합니다. 성실하게 잘 만든 게임이고, 그래픽 및 음악 역시 준수하지만 15레벨 밖에 없는 다소 적은 스테이지 수가 마음에 걸립니다. 퍼즐 게임의 핵심 요소인..

Fight Test/리뷰 2009.03.12

돈 룩 백 [Don't Look Back] (2009)

神曲 콩그리게이트에서 지원한 [돈 룩 백]은 1980-90년대 풍 아케이드-플랫포머 게임입니다. 그에 따라 조작키도 단순하고, 그래픽과 음악 역시 아타리 풍의 단순함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 시절 플랫포머 게임들이 그렇듯, 이 게임 역시 시스템 자체는 단순하지만 좀 짜증나게 어렵습니다. 꽤 부조리한 레벨 디자인도 많아서, 아마 하시면서 엄청나게 죽으실 겁니다. 하지만, 단순한 외피에 비해 게임의 분위기와 (숨겨진) 스토리는 우울하고 진지합니다. 어찌보면 분위기로 승부한다 할 수 있는데 그 분위기가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 힌트를 드리자면 무척 원형적인 이야기입니다. 게임 디자인이 어렵고, 부조리한 편이긴 하지만 분위기와 이야기 때문이라도 잡아볼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 PS.저희..

Fight Test/리뷰 2009.03.11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

나는 레슬러입니다 격투 종목 자체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사실 누군가의 패배로 끝나게 되는 스포츠라는 것에 그렇게 많이 열광해 본 적이 없다. 좀 불편하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는 속된 말로, 구닥다리스럽다. 그의 대표작 [레퀴엠]에서 보여줬던 세련되고 음울한 편집 및 촬영술도, 정교하게 구성된 시나리오도 없다. 1980년대 프로 레슬링 대스타였던 랜디 램은, 이제 한물간 스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링 위에서는 스타지만, 링 밖에서는 그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망가진 사내일 뿐이다. 잘 풀리지 않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경기할 기회가 찾아온다. 솔직히 보기 전만 해도, 이 영화가 허세로 밀고 갈까 걱정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뒤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랜..

글로브트로터 XL [Globetrotter XL] (2009)

Around The World [글로브트로터 XL]은 무척 간단한 게임입니다. 세계의 도시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마우스로 콕 클릭하면 됩니다. 장르를 굳이 정하자면 캐주얼-퀴즈 게임 정도 되겠죠. 물론 시간 제한도 있으며, 레벨 개념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난이도는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물론 아주 유명한 도시도 나오지만, 대부분 별의별 희한한 도시 이름들도 마구 튀어나옵니다. 프랑스령 기니 수도가 어디있는지 아시는 분? 아마 대부분 모르실 겁니다. 이 게임은 이런 식입니다. 그나마 영토가 마우스 포인트만한 나라는 쉬운 편이지만, 그 이상 되면 조금 난감해집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게임은 지리 교육용으로도 톡톡히 그 효과를 발합니다. 틀린 곳을 클릭하면 정확한 도시 정보와 함께 틀린 곳까지 거리를 표..

Fight Test/리뷰 2009.03.05

호텔 더스크의 비밀 [ウィッシュルーム 天使の記憶 / Hotel Dusk: Room 215] (2007)

My Night At Hotel Dusk [어나더 코드]라는 DS 어드벤처 화제작을 만든 일본 제작사 싱의 2007년 어드벤처 게임 [호텔 더스크의 비밀]은 친숙한 설정 두 가지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필름 느와르풍 미스터리와 초현실적인 호텔 괴담이죠. 1979년 12월 28일 미국 서부 지역, 3년전에 일어난 친한 동료의 배신의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전직 형사 카일 하이드는 일 때문에 온 네바다 주에 있는 호텔 더스크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뭔가 숨기는 게 있어보이고... 스토리를 보면 전형적인 장르물 같습니다만, [호텔 더스크의 비밀]은 정 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범죄와 비밀 같은 소재를 다루지만 어두컴컴한 느와르물이나 본격..

Fight Test/리뷰 2009.03.01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Ma Nuit Chez Maud / My Night At Maud's] (1969)

솔직함의 중요성 에릭 로메르의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은 평범한 프랑스인의 삶을 쫓아간다. 평범한 지식인 주인공 장은 오랜 옛 친구를 만나고, 그를 통해 모드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주변을 얼쩡거리기만 할 뿐 솔직하지 못하게 굴다가,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5년 뒤 어느 해안가에서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난다. 이 영화에는 단순한 스토리에 비해 대사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대사도 상당히 지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현기증 나게 재미없을것 같지만, 의외로 전혀 그렇지 않다. 보다보면 굉장히 유려하면서도 쿡쿡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다. 이는 에릭 로메르가 현학적인 대사을 어떻게 이야기 및 연기자의 흐름에 집어넣을 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우연의 음악 오늘은 평소처럼 딱딱하게 쓰지 않고, 가볍게 쓸까 합니다. 마치 일기처럼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다소 고민되긴 하지만, 그 리스트에 폴 토마스 앤더슨라는 이름은 꼭 들어갈 겁니다. 제가 이 사람 영화를 처음 본 것은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영화였죠. 그리고 나서 본 게 [데어 윌 비 블러드]였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 감독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게 됬습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나 테크닉이나 당대 최고라 할 만 합니다. 동년배 중에 이만한 감독이 있을까 싶네요. 오늘 드디어 펀치 드렁크 러브 이전에 발표한 [매그놀리아]를 보았습니다. 보고 난 뒤, '음... 역시 앤더슨 감독은 날 실망시키지 않아'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의 압박이 심했긴 했지..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달콤씁쓸한 교향곡 중독이라는 것은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으로 실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일상에서 중독이라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상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뇌는 의외로 이성으로 좌우되지 않고 감성으로 좌우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꼭 그것만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무언가에 깊게 몰입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 역시 일종의 중독이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은 4명의 인물에서 시작한다. 마약상 타이론과 그의 친구 해리, 해리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해리의 연인 마리온은 모두 한 줄기의 희망을 위해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약을 먹으며 도취감에 빠지는 그들. 하지만, 점점 일은 꼬여가며 그들은 파멸의..

네버엔딩 라이트: 파트 1 [Neverending Light: Part 1] (2009)

지금 뒤돌아 보지 마라 (1/3) 여자 친구 애너벨과 함께 동굴 탐사 체험을 간 주인공. 체험 안내원은 이벤트를 위해 전기를 끊습니다. 하지만 다시 불을 켜니 동굴 안은 지옥으로 변해있는데... 네버엔딩 라이트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잘 만든 인디 웹 호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분명 영화 [디센트]의 영향이 명백해보이지만 효과적으로 짜여진 이야기, 훌륭한 게임 디자인, 간결해서 좋은 조작법, 한 곡뿐이지만 잘 작곡된 배경 음악 등 웹게임이라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상당히 좋은 퀄리티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암울하고 무력한 분위기와 섬뜩한 묘사를 적절히 안배하고 있는데,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특히 마지막은 이런 연출이 극에 달하는지라, 플레이하다가 헉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게임이 선사하는 공포의 뒷..

Fight Test/리뷰 200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