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597

Manic Streets Preachers - [The Holy Bible] (1994)

절망과 탐미의 성경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The Holy Bible]은 매닉스의 최고 앨범을 꼽으라면 [Everything Must Go]와 함께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앨범이다. 이 두 앨범 이후로 매닉스는 그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만큼 이 두 앨범은 매닉스에게 일종의 금자탑이자 벽으로 자리잡고 있다. [The Holy Bible]이 담고 있는 감정은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 즐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매닉스가 그 절망을 표출하는 방식은 철저히 우화적이고 탐미적이다. 조이 디비전, 갱 오브 포, 와이어,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 같은 까끌까끌한 포스트 펑크와 헤비 메탈의 에너지, 글램 록의 능수능란한 코드를 결합한 매닉스의 음악은 영향받은 선배들과 달..

Scott Walker - Jackie

인디 키드에게 스콧 워커는 펄프 프로듀서 혹은 짐 오루크와 놀면서 음침한 고딕풍 실험 음악으로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콧 워커의 본령은 프렌치에 발을 걸친 바로크 풍의 오케스트라/챔버 팝스였습니다. 4집 말아먹고 워커 브라더스 재결성하기 이전 내놓은 4장 모두 그 본령에 충실한 앨범이였습니다. 프렌치에 발을 걸친,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콧 워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샹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스콧 워커의 음악은 샹송 같은 채널 해협 넘어 유럽 문화의 향취가 많이 느껴집니다. 6-70년대 활동하는 동안 가장 알려진 곡인 이 곡은 그런 본령을 확인하기에 딱 좋습니다. 이 곡 샹송 벨기에 출신의 샹송 가수인 자크 브렐의 곡을 커버한 곡인데, 원곡의 프랑스어 특유..

Yann Tiersen - [L'absente] (2001)

얀 띠에르상이라 하면 다소 아리까리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들어보면, 대부분 아!라고 하실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드리 투드를 일약 세계의 여동생으로 만든 영화 [아멜리에]에 쓰였던 곱디고운 동화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테마 트랙를 만든 사람이죠. 다소 조급한 박자로 힘차게 나아가는 멜로디가 맑게 울리는 차임과 하프시코드의 소리의 질감으로 채색된 이 곡은 당 앨범 [L'absente]에서도 여는 곡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1분 정도 길어진 풀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작 이 앨범은 (어두운 채도로 이뤄진 앨범 커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화적 감수성하고는 떨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깊고 쓸쓸한 앨범입니다. 이어지는 리자 저메이노의 우울한 보컬이 깔리는 'La Parade'와 비장한 결기..

Roots Manuva - Witness (1 Hope)

2000년대 영국 음악 유행 중 하나가 그라임이라는게 있었습니다. 트립합의 꿀렁꿀렁한 무드와 레게을 가져오면서도 IDM/일렉트로닉/라가의 영향을 받아 공격적인 비트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담긴 강렬한 래핑을 선보였던 장르였습니다. 이 장르의 스타는 디지 라스칼와 더 스트릿이였는데, 같은 해에 둘이 내놓은 [Boy In Da Corner]와 [A Grand Don't Come For Free]는 사회적인 현상을 일으키면서 한순간 힙한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관심이 좀 떨어진 상태죠...) 루츠 매뉴바는 그 흐름을 선구적으로 열긴 했지만, 디지 라스칼이나 더 스트릿처럼 대중들의 관심은 덜했던 것 같습니다. (차트 성적으로 봐도 루츠 매뉴바는 골드도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레이블이 다소 마이너했다는..

Sun Ra - [Space is the Place] (1973)

선 라라는 이름은 스테레오랩과 요 라 텡고의 [Summer Sun]이라는 앨범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를 느껴서 뭘 듣을까 찾아보다가 너무 막막해서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음반이 5000장을 넘어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다가 최근에야 이 앨범이 가장 구하기 쉬운 대표작으로 꼽아서 지르게 되었습니다. 같이 산 허비 행콕의 [Crossings]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기어이 정형적인 틀을 벗어나려고 별의별 발악을 해대는 프리 재즈 앨범입니다. 하지만 선 라는 어느 정도 연주라는 테마를 유지하려는 흔적이 보였던 허비 행콕보다 더욱 기상천외하고 탈재즈적입니다. 21분 짜리 대곡이자 앨범의 심장을 구성하고 있는 'Space is the Place'는 그야말로 난잡한 소리의 난장입니다. 파피사 ..

Nick Drake - [Bryter Layter] (1970) & [Pink Moon] (1972)

닉 드레이크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입니다. 첫 앨범 [Five Leaves Left]는 암울했던 고3 시절을 동거동락했던 앨범들 중 하나이며, 들으면서 매번 '어떻게 기타를 이런 식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이런 현악 연주는 어떻게 뽑아냈을까', '가사는 또 어떤지...' 라고 매일매일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작 나머지 앨범을 구한 건 최근입니다 (...) BACK TO CLASSIC ERA을 선언을 하고 나서 이빨 빠진 앨범들을 채워넣기 시작했는데, 싸게싸게 한국반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리마스터링에 대해 말이 좀 많은 편인데 (특히 [Bryter Layter]는 CD 리마스터링 실패 사례로 꼽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뭐 다시 리마스터링 나와도 충분히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다. ..

전기 뱀장어: 난 어제 잠을 (자체검열) 잤어.

1960년대에 활동한 개러지 록 밴드 일렉트릭 프룬스The Electric Prunes는 솔직히 대단한 밴드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말그대로 동네 차고에서 고딩들이케이온! 연주하다가 우연히 픽업되어 데뷔한 밴드입니다. 이 곡으로 반짝 스타덤에 오르지만, 다음 앨범과 이지 라이더 사운드트랙 이후로 이들은 재빨리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중고 LP 매물이 풀리고 개러지 록의 역사를 총망라한 너겟츠 박스셋이 나오면서 이들은 프로토 펑크 시절의 뛰어난 밴드로 재평가 받게 됩니다. 가장 최근에 언급된 사례라면 LCD 사운드시스템의 'Losing My Edge'겠죠. 아무튼 라이노에서 첫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이 재발매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구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게 [Too Much To..

John Coltrane - Blue Train

1950년대 중반부터 재즈엔 하드 밥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대두됩니다. 비밥에서 출발한 하드 밥은 쿨 재즈의 시크한 태도와 상반되게 하드 밥은 블루스와 가스펠 음악에 영향을 받아 좀 더 에너제틱하고 강렬한 싱커페이션 (당김음)과 임프로바이제이션을 추구했던 흐름이였습니다. 이런 강렬함은 종종 사이키델릭한 바이브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하드 밥 뮤지션들이 약물 상용자였던걸 생각해보면 이 바이브는 약물의 효과를 긍정했던 최초의 바이브라 볼 수 있을겁니다.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은 그 점에서 하드 밥이라는 흐름을 잘 짚어내고 있는 앨범입니다. 타이틀 트랙 'Blue Train'은 10여분 동안 청명한 멜로디와 그에 대조되는 강렬한 즉흥 연주로 청자를 잡아채고 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Helplessness Blues

전 사실 제임스 블레이크나 판다 베어보다 플릿 폭시즈 새 앨범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1집은 더 밴드나 카우보이 정키스, 페어포트 컨벤션에서 확고하게 느껴졌던 어두우면서도 따듯한 감수성을 제대로 집어내 풀어내고 있었던 앨범이였고, 들으면서 감동하기까지 했습니다. 전 지금도 이들의 1집은 하이프가 아니라 진짜배기가 담겨져 있는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플릿 폭시즈가 새 앨범을 낸다니, 저는 그저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게다가 커버도 제대로 70년대 클래식 록 간지가 느껴져서 좋습니다. 새 앨범은 2011년 5월 3일 현지에서 발매될 예정이라 합니다. 비트볼에서 라이센스된다고 하니 기다려봐야 되겠군요.

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rial] (1994)

돌이켜보면, 1990년대 초중반은 절망적인 감수성이 사랑받았던 시절인 것 같습니다. 너바나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 스매싱 펌킨스 등 그런지 카테고리는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그 흐름에서 느지막히 떨어져 있었던 페이브먼트에게도 자조적인 정서가 뿌리 박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감수성이 사랑받은 건 1960년대 말 더 후, 롤링 스톤즈, MC5, 더 도어즈 같은 헤비하고 반사회적인 음악이 사랑 받은 것과 비슷한 선상일지도 모릅니다. 저 두 시절엔 세상에 대한 안티 테제적인 생각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고 할까요. (1960년대에 추앙받았던 윌리엄 버로우즈와 잭 케루악이 1990년대에 다시 재발굴-특히 버로우즈-됬다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다만 1960년대 말과 달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