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Nick Drake - [Bryter Layter] (1970) & [Pink Moon] (1972)

giantroot2011. 2. 13. 01:06
닉 드레이크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뮤지션입니다. 첫 앨범 [Five Leaves Left]는 암울했던 고3 시절을 동거동락했던 앨범들 중 하나이며, 들으면서 매번 '어떻게 기타를 이런 식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이런 현악 연주는 어떻게 뽑아냈을까', '가사는 또 어떤지...' 라고 매일매일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작 나머지 앨범을 구한 건 최근입니다 (...) BACK TO CLASSIC ERA을 선언을 하고 나서 이빨 빠진 앨범들을 채워넣기 시작했는데, 싸게싸게 한국반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리마스터링에 대해 말이 좀 많은 편인데 (특히 [Bryter Layter]는 CD 리마스터링 실패 사례로 꼽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뭐 다시 리마스터링 나와도 충분히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다.



[Five Leaves Left]를 듣다가 1970년에 발표한 두번째 앨범 [Bryter Layter]를 듣게 되면 좀 많이 놀라게 됩니다. 너무 밝아서 말이죠. 거의 트위 팝 수준인데, 'Hazy Jane II' 같은 곡은 요새 벨 앤 세바스찬 곡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보입니다. 타이틀 트랙은 완벽한 목가주의 바로크 팝스고, 'At The Chime Of A City Clock'의 은은한 오케스트라와 색소폰은 비상감마저 느껴집니다. 'Poor Boy'는 재즈를 기반으로 코러스(!!!)가 동원된 팝스이고요.

아마 이 앨범은 얼마 되지 않는 닉 드레이크 커리어 중에서 가장 블록버스터 급으로 제작된 앨범일겁니다. 페어포트 컨벤션, 존 케일 ('Fly'에서 첼레스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비치 보이즈의 마이크 코왈스키, 에드 카터, 전작에서 활약했던 로버트 커비와 프로듀서 조 보이드까지 굉장히 유명한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앨범은 닉 드레이크 앨범 중에 좀 더 밴드 포맷에 가까운 앨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중심은 여전히 닉 드레이크의 기타입니다. 변칙 코드와 핑거링을 즐겨쓰면서도 어느 순간 보편적인 서정을 탁 쳐버리는 그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수많은 소리 층 속에서도 우뚝 서 있습니다. 그는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낮고 고요한 목소리도 그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줍지만 때론 밝은 햇살을 드러내는 팝스라는 점에서 이 앨범은 후일 1990년대에 등장한 바로크 팝/포크 세대들에게 영향을 준 게 확실합니다. 전작의 단아함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앨범입니다.

P.S. 다소 특이한 앨범 제목은 brighter later의 여왕 영어식 발음이라고 합니다. BBC 기상예보관이 이런 식으로 발음하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Bryter Layter]도 꼴아박았습니다. 레이블은 지원을 끊어버리고, 조 보이드도 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닉 드레이크는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이 앨범은 자신의 집과 사운드 테크닉 스튜디오를 오가며 닉 드레이크와 프로듀서 존 우드 단 둘이서만 작업하게 됩니다. 다 만들고는 레이블에게 마스터 테이프를 휙 던지고 가버렸고요. (그래도 마그리트 풍의 앨범 커버는 여동생이 그려줬다고 합니다.) 닉 드레이크 자신도 곡 쓰는데 열의를 잃어버렸는지, 이 앨범은 세 앨범 중 가장 러닝 타임이 짧습니다. 곡도 4분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점 때문에 이 앨범은 두 앨범과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됬습니다. (첫 트랙 'Pink Moon'의 간소한 피아노 제외하면)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진행되는 이 앨범은 여러모로 그의 영웅이였던 버트 얀시의 동명 데뷔 앨범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 내밀함이 닉 드레이크 자신의 개성에 투영되면서 만들어내는 음예한 아우라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첫 앨범의 균형과 두번째 앨범의 풍성함과 다른 앙상한 매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사라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그 동안의 가장 어두운 면모를 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Parasite'나 'Things Behind The Sun' 같은 곡 제목은 좌절, 나아가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From The Morning'은 그래도 그래 내일의 태양은 뜰꺼야 라는 심정으로 마무리하지만 이 앨범 이후 닉 드레이크의 운명을 알면 비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앨범의 놀라운 점은 정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작업한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천재성이라는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범인들은 도저히 접근하지 못할 고고한 경지가 느껴진달까요. 닉 드레이크의 음악 생활은 짧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내놓은 앨범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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