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탐미의 성경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The Holy Bible]은 매닉스의 최고 앨범을 꼽으라면 [Everything Must Go]와 함께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앨범이다. 이 두 앨범 이후로 매닉스는 그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만큼 이 두 앨범은 매닉스에게 일종의 금자탑이자 벽으로 자리잡고 있다.
[The Holy Bible]이 담고 있는 감정은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로 즐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매닉스가 그 절망을 표출하는 방식은 철저히 우화적이고 탐미적이다. 조이 디비전, 갱 오브 포, 와이어,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 같은 까끌까끌한 포스트 펑크와 헤비 메탈의 에너지, 글램 록의 능수능란한 코드를 결합한 매닉스의 음악은 영향받은 선배들과 달리 퍽퍽하거나 대책없이 낭만적이지 않다.
'This is Yesterday'나 (조이 디비전의 'She's Lost Control' 인용인게 분명한) 'She Is Suffering'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발라드지만 동시에 절망과 분노로 가득차 있다. 발라드 이외의 곡들에도 아찔한 훅과 멜로디가 신경을 긁는 배킹 속에 섞여 있다. ('Archive of Pain', '4st 7lb') 매닉스가 브릿팝 파고에서 당당히 선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포지션을 확고하게 점했기 때문이다. 가사 역시 여타 다른 브릿팝 밴드들과 달리 역사/사회적인 비판부터 ('If White America Told The Truth For One Day It's World...', 'Revol') 거식증이나 죽음 같은 개인의 분노와 절망 같은 세상사의 어두운 부분들을 날카롭게 헤집는다.
매닉스의 [The Holy Bible]은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추악한 세상의 이면을 너무나 아름답게 폭로하는 앨범이다. 이 앨범이 금자탑이 된 이유도 그 용감함과 아름다움에 있다. 쉬이 잊혀지지 않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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