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Sun Ra - [Space is the Place] (1973)

giantroot2011. 2. 15. 20:12

선 라라는 이름은 스테레오랩과 요 라 텡고의 [Summer Sun]이라는 앨범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를 느껴서 뭘 듣을까 찾아보다가 너무 막막해서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음반이 5000장을 넘어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다가 최근에야 이 앨범이 가장 구하기 쉬운 대표작으로 꼽아서 지르게 되었습니다.

같이 산 허비 행콕의 [Crossings]와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기어이 정형적인 틀을 벗어나려고 별의별 발악을 해대는 프리 재즈 앨범입니다. 하지만 선 라는 어느 정도 연주라는 테마를 유지하려는 흔적이 보였던 허비 행콕보다 더욱 기상천외하고 탈재즈적입니다. 21분 짜리 대곡이자 앨범의 심장을 구성하고 있는 'Space is the Place'는 그야말로 난잡한 소리의 난장입니다. 파피사 신시사이저의 뿅뿅 거리는 소리로 출발해 'Space is the Place'라는 슬로건을 의미없이 중얼거리는 디바들, 고삐가 풀려서 미쳐 날뛰는 색소폰,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리듬 등이 청자의 귀를 떠다닙니다. 다른 곡 제목처럼 이 앨범은 말 그대로 소리의 바다('Sea of Sounds')입니다. 이게 음악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 기괴한 소리들을 찬찬히 듣다보면 선 라가 인도하는 우주에 도달하는게 인상적인 곡입니다.

다른 곡들은 좀 더 편한 편입니다. 하지만 기이한 매력은 여전히 포기 하지 않고 있는데, 하드 밥 풍의 아름다운 피아노 간주에 여러 소리 층들이 쌓이는 'Images', 위로 치솟을려다가 갑자기 쭉 내려앉아버리는 랙타임 풍 관악기가 탈력적인 바이브을 만드는 'Discipline', 'Space is the Place'의 소규모 리프라이즈인 'Sea Of Sounds', 괴팍한 유머 센스로 마무리하는 'Rocket Number Nine'이 그렇습니다. 이 곡들은 타이틀 트랙의 에너지를 보조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과 여러 외적 이미지들을 통해 드러나는 선 라의 우주는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그가 음악에서 주창하는 우주는 과학적인 의미의 우주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영적, 선적 우주에 가까운데, 특히 고대 이집트 문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주를 소개합니다. 그가 자신을 대중에게 노출하는 방식이 지금 자넬 모나네나 카녜 웨스트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점은 여러모로 생각해볼만 합니다. 민권 운동과 연관을 맺으며 탈인종의 길을 모색했던 그의 지향이 지금 흑인 세대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다는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 앨범은 쉬운 앨범은 아닙니다. 고도로 계산된 카오스에 가까웠던 허비 행콕의 [Crossings]과 달리, 선 라의 이 앨범은 계산마저 제거해버린 말 그대로 무작위적인 카오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카오스엔 놀랍도록 생생한 에너지와 초현실적인 심상들로 가득합니다. 선 라라는 기인의 재능을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앨범 아닐까 싶습니다.

P.S. 그래도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술 걸치고 들으시면 됩니다. 해봤는데 정말 완벽하게 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