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37

피에타 [Pieta] (2012)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제목이 원래 가지고 있던 특정한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를 뜻하는 '피에타'는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예술적 주제다. 남을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한 '아들' 예수의 숭고함과 그걸 알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의 비극적인 대비는 여러모로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영화 [피에타]에는 얼핏 보면 그런 숭고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채업을 하면서 주인공 '아들' 이강도의 삶은 그야말로 암담하고 폭력이적이다. 그는 숭고함은 커녕 밑바닥에 끝없이 자신을 구르는 남자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 부분을 할애해서 보여준다. 이런 삶도 어머니를 자청하는 미선의 (..

初恋の嵐 - [初恋に捧ぐ] (2002)

빛나는 첫사랑이 남긴 백조의 노래를 너에게 바친다 일본 시모키타자와 밴드 하츠코이노 아라시 (첫사랑의 폭풍)의 [첫사랑에게 바친다]는 아련한 제목과 달리 아련함만 있는 앨범은 아니다. 앨범을 걸자마자 나오는 곳은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첫사랑에게 바친다'다. 제법 경쾌한 베이스 라인과 로킹한 모던 록 기타, 반짝반짝거리는 실로폰이 인도하는 이 곡은 하지만 어딘가 짠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그대의 눈물이 잊혀지지 않아/첫사랑에게 바치는 넘버") 그 곡이 끝나자마자 나오는 곡은 바로 그 유명한 '真夏の夜の事 한여름밤의 일'이다. 피아노 한 대로 차분하지만 쓸쓸히 분위기를 만들어가다가 현악 연주와 사이키델릭한 맛이 은은하게 배어있는 퍼즈 기타가 합세해 거대한 감정적인 파고를 불러일으키는게 제법인 곡이다. ..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케빈에 대하여]의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한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와 그녀가 쓴 소설을 각색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는 이 제목을 통해 케빈을 우리들의 주목 대상으로 놓는다. 그래서 그 주인공 케빈은 어떤 인물인가? 케빈은 여행가로 유명했던 에바의 아들이자, 고등학교에서 학살극을 펼쳐 소년범이 된 인물이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케빈에 대하여]는 [엘리펀트]나 [볼링 포 콜롬바인], [인 블룸]처럼 콜롬바인 학교의 비극에서 비롯된 학교 학살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저들과 정 반대로 나간다. 학살극이 있었던 그 순간, 학살범과 피해자들의 모호하고도 복잡한 심리와 행동들을 엮은 [엘리펀트]나, 단도..

Dennis Wilson - [Pacific Ocean Blue] (1977)

비치 보이즈의 멤버였던 데니스 윌슨의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 앨범 [Pacific Ocean Blue]는 펑크의 해에 태어난 앨범이였지만 펑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앨범이다. 오히려 펑크가 파괴하고 싶어했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동시에 [Pacific Ocean Blue]는 그 파괴하고 싶어했던 것에 대한 환멸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모순되어있고 자기분열적인 걸작인것이다.이 앨범은 구조상으로 보면 비치 보이즈가 기틀을 잡은 웨스트코스트 팝스의 구조에 충실하다. 데니스는 가스펠 합창단, 신시사이저, 혼섹션, 소리 콜라주 등 풍윤한 소리들로 덧대어 장중하면서도 복잡한 팝을 만들어낸다. 야심만만하게 열어제치는 'River Song'은 앨범의 가치를 증명하기 충분한 멋진 곡이다. 하지만 이 앨..

The Velvet Underground - [The Velvet Underground] (1969)

걸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와 [White Light/White Heat]로 록이 태동하자마자 그 대안을 벌써 만들어버린 벨벳 언더그라운드였지만, 그들의 그런 '반항에 대한 반항'를 기억하면서 [The Velvet Underground]를 들으면 당혹스럽기 그지 없다. 이 앨범엔 그런 변태적인 공격성이 거의 사라져 있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벨벳은 여전히 벨벳이기 때문에 'The Murder Mystery'나 'What Goes On'에선 여전히 그들 특유의 신랄한 미니멀리즘 로큰롤(과 비트 문화)이 잘 드러나 있다. 다만 전작과 달리 그게 중심인 앨범은 아니다. 음악으로 보자면 [The Velvet Underground]는 '복고적'이다. 미니멀한 코드는 대부분 파격을..

무쉐뜨 [Mouchette] (1967)

로베르트 브레송의 무쉐뜨는 무척이나 간결한 영화다. 상영시간은 78분. 극영화로 치자면 이 짧은 시간동안 무쉐뜨라는 소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무쉐뜨는 가난한 아이이고 병든 엄마와 학대하는 아버지, 냉담한 학교 생활 속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 어느날 무쉐뜨를 비를 피하다가 사람을 죽인 사냥꾼과 기묘한 유대관계를 맺고 집으로 들어오지만 어머니는 병마에 시달리다 곧 죽어버리고 무쉐뜨는 bitch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무쉐뜨는 자살을 하게 된다. 이야기로만 따지자면 [무쉐뜨]는 무척이나 멜로드라마틱하다. 거의 19세기 로맨티시즘의 후예이라 할 정도로 극적인 사건들이 무쉐뜨 앞을 가로막고 결말 역시 그렇다. 하지만 원작을 쓴 조르주 베르나노스 (그의 다른 소설로는 [사탄..

소카베 케이이치 탐사 04 ([24時])

2010/10/09 - [Headphone Music/잡담] - 소카베 케이이치 탐사 01 ([MUGEN], [東京], [キラキラ!]) 2010/11/15 - [Headphone Music/잡담] - 소카베 케이이치 탐사 02 ([愛と笑いの夜], [サニーデイ・サービス]) 2010/12/28 - [Headphone Music/잡담] - 소카베 케이이치 탐사 03 ([本日は晴天なり]) 서니 데이 서비스가 가장 바빴던 시기를 꼽으라면 저 사랑과 웃음의 밤 이후부터 이 24시까지 아닐까 싶습니다. 거의 몇개월 단위로 앨범을 세 장이나 냈기 때문입니다. 지치지 않았나 걱정될 정도였는데 안그래도 24시 제작할 무렵엔 꽤나 심적인 부담이 강했다고 하더라고요.한마디로 24시는 굉장히 방만한 앨범입니다. CD 1장에 1..

돌아가는 펭귄 드럼 [輪るピングドラム / Mawaru-Penguindrum] (2011)

브레인즈 베이스, 킹 레코드, 마이니치 방송. 총 24화x25분. 화면비 1.78:1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시리즈 구성/각본: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이카미 타카요伊神貴世 캐릭터 원안: 호시노 릴리星野リリィ 캐릭터 디자인: 니시이 테루미西位輝実 컨셉 디자이너: 나카무라 쇼코中村章子, 시바타 카츠키柴田勝紀 아이콘 디자인: 오사카베 와타루越阪部ワタル 음향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야마다 요우山田陽 음악: 하시모토 유카리橋本由香利 프로듀서: 이케다 신이치池田慎一, 마루야마 히로오 丸山博雄 캐스트: 키무라 스바루木村昴 (타카쿠라 칸바 / 펭귄 1호), 키무라 료헤이木村良平 (타카쿠라 쇼마 / 펭귄 2호), 아라카와 미호荒川美穂 (타카쿠라 히마리 / 크리스탈의 공주 / 펭귄 3호), 미야케 ..

Real Motion/리뷰 2011.12.24

Eels - [Beautiful Freaks] (1997)

생각해보니 1990년대는 컷 앤 페이스트가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사에 대두됬던 시절이였던 것 같습니다. 힙합이 슬금슬금 기어올라 성공을 거두면서 힙합 장르 바깥쪽 뮤지션들이 이 방법론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죠. 벡이 그랬고, 플레이밍 립스가 그랬고, 이번의 일즈가 그랬습니다. 다양한 리듬과 루프, 효과음, 장르 혼합, 다소 금기시 되던 샘플링을 하면서 그들은 익숙한 고전의 문법을 새로운 느낌으로 재창조해서 장르를 신선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둘 다 중견 뮤지션이 됬지만 꾸준히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군요. 일즈는 조금 밀리는 것 같지만. 제 생각엔 이런 백인 락/팝 뮤지션이 컷 앤 페이스트를 접근하는 방식은 비치 보이스와 브라이언 윌슨, 반 다이크 팍스 같은 60년대 미국 사이키..

헤비 레인 [Heavy Rain] (2010)

(치명적인 누설은 없지만 할 예정인 분들은 읽지 않는게 좋습니다.) 2010년에 나온 퀀탁 드림의 PS3 전용 어드벤처 게임 [헤비 레인]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전작 [인디고 프로퍼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빙의한 NPC에 따라 진행 방법이 달라지는 설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메시아라는 게임도 있었지만.)와 장르를 넘나드는 대담함으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신선함을 안겨줬던 오미크론이란 게임 이후 만든 [인디고 프로퍼시]는 1990년대 잠시 부흥했다가 별다른 재미를 못 보고 사라진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와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야심을 지닌 게임이였고 실제로 그 야심을 이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게임이 시도했던 3D 시네마틱 시퀀스와 게임플레이의 유기적인 결합은 게임 제작자들..

Fight Test/리뷰 201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