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피에타 [Pieta] (2012)

giantroot2012. 9. 14. 14:31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제목이 원래 가지고 있던 특정한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를 뜻하는 '피에타'는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예술적 주제다. 남을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한 '아들' 예수의 숭고함과 그걸 알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의 비극적인 대비는 여러모로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영화 [피에타]에는 얼핏 보면 그런 숭고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채업을 하면서 주인공 '아들' 이강도의 삶은 그야말로 암담하고 폭력이적이다. 그는 숭고함은 커녕 밑바닥에 끝없이 자신을 구르는 남자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 부분을 할애해서 보여준다. 이런 삶도 어머니를 자청하는 미선의 (이름이 있지만 끝내 불려지지 않는다.) 등장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선은 한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피에타]는 뒤늦은 속죄극이라 할만한 영화다. 강도는 악함에 전염되어 죄책감도 모르는 '짐승새끼'이다. 김기덕은 그의 짐승성을 그가 채무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날것을 그대로 잡아먹는 장면들로 체화해낸다. 이런 짐승성은 미선에게 자신의 살덩어리를 먹이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동시에 강도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첫장면의 자위 시퀀스와 미선 겁탈 시퀀스, 후반부에 수음 시퀀스는 이 사람이 제대로 된 여자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걸 암시한다. 그렇게 등장한 미선이 엄마 행세를 하면서 강도에게 들어서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미선은 한마디로 강도에게 이상화된 '어머니'다. 미선은 강도에게 날것 대신 음식을 해주고 밖으로 나가 밥을 사먹인다. 그리고 나무를 심어달라고 한다. 처음엔 이상한 여자라고 거부하던 강도는 미선의 막무가내적인 애정에 점점 사람이 바뀐다. 무척이나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모성 찬양 신화처럼 보이지만 이런 애정엔 항상 위태위태한 구석이 있다는걸 강도는 알고 있었다. ("불안해. 갑자기 사라질것 같아서.") 그 말 그대로 미선은 갑자기 사라진다. 강도는 미선을 찾아나서는데 여기서 영화는 잠시 템포를 늦추고 미선의 진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예측가능한 수준이긴 하지만 미선의 사연은 제법 흥미로운 해석틀을 만든다. 그녀의 행동들과 생각의 기반은 전통적인 모성 찬양 신화이라 하기엔 너무나 극단적이다. 되려 무섭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마더]하고도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 와중에서 김기덕은 진실을 모르는 강도를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 채무자들과 대면시킨다. 채무자들은 욕을 쏟아붓지만 강도는 그 욕을 묵묵히 듣는다. 여기서 [피에타]는 속죄극이라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강도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속죄의 길을 찾아냈지만 이미 그는 그 죄의 늪에 깊숙히 빠져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헤어나올수 없었다. 따라서 그런 강도가 맞는 결말은 파국이다. 김기덕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평생을 짐승으로밖에 살아오는 법을 몰랐던 악인이 용서받을수 있는 길은 예수처럼 자기 희생일지도 모른다. 라고 질문을 던진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올랐지만, 강도는 자신의 죄를 위해 골고다의 언덕에 올랐다는게 다르달까.


[피에타]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에 테크닉이 깔끔하지는 않다. 주지하다시피 김기덕은 기본적으로 영화 학교 같은데서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며 스스로 독학하며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이 때문에 장면장면을 보면 거칠거칠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카메라 테크닉. 기본적으로 편집도 안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깔끔하지 않은 테크닉은 영화의 기묘한 매력을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을 꼽으라면 동물들과 관련된 장면이다. 상징들이 투박하지만 매력적이다. 그리고 기묘하게 뒤틀어진 로케이션들 역시 앙상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확연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대사의 톤은 조금 심각하다. [피에타]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기계상들과 깡패라는 한국 하층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런 배경이라면 대사가 가지고 있는 현실감 같은게 상당히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피에타]의 대사는 위태위태하게 흔들린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나 배경하고 톤이 잘 맞지 않거나 종종 거슬리게 심리 설명조로 변하는 부분이 있으며, 장면이나 인물들 심리에 걸맞지 않는 대사가 갑자기 튀어나오곤 한다. (특히 자살하려는 노인을 막는 강도의 "죽으면 보험 처리가 복잡해집니다" 대사는 이전 장면들의 잔인한 모습과 다르게 너무 급작스러워서 캐릭터 붕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영화는 배경이나 소재와 어울리지 않게 인공성에 빠지며 (비슷한 소재를 다룬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와 비교해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응당 가져야 할 정서적 힘도 잃곤 한다. 특히 이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배우는 바로 주연 이정진인데, 전반적으로 대사 때문에 캐릭터가 풀파워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건 저예산과 관계없이 조금만 세심한 터치가 있었다면 훨씬 나아졌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피에타]는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먼저 조민수는 그 아쉬운 대사들 속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으며 명연기를 펼친다. 조민수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적게 드러내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위엄을 풍기며 관객을 압도할줄 안다. 특히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때 냉장고를 보며 그 기묘한 냉정함을 흐트러트리며 펑펑 우는 장면은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냉정하게 따지면 민폐지만) 끔찍하지만 기묘한 평안함은 분명 독특한 미를 가지고 있다.


[피에타]는 걸작, 이라고 하기엔 조금 약할지도 모른다. 일단 연기를 다루는 테크닉이 종종 거친 것을 넘어서 위태로운 수준이라는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전작들처럼 말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렸다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민수의 연기와 앙상한 미장센에 힘입어 모성 신화를 뒤틀어 만들어낸 이 기묘한 속죄극은 쉽게 무시할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 진짜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작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모성에 대한 영화의 접근은 여러 분분한 해석을 만들기엔 충분하지만....


P.S. 김기덕이 의도한것은 100% 아니고, 어쩔수 없긴 하지만 영화에 담긴 서울 청계천의 암담한 미장센은 여러모로 서구 관객들의 별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깐 '동양 소국의 암울하고도 이국적인 풍경' 이런 식으로 오리엔탈리즘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고 할까. 사실 이건 비단 김기덕만의 문제도 아니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