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무쉐뜨 [Mouchette] (1967)

giantroot2012. 6. 19. 11:23


로베르트 브레송의 무쉐뜨는 무척이나 간결한 영화다. 상영시간은 78분. 극영화로 치자면 이 짧은 시간동안 무쉐뜨라는 소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무쉐뜨는 가난한 아이이고 병든 엄마와 학대하는 아버지, 냉담한 학교 생활 속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 어느날 무쉐뜨를 비를 피하다가 사람을 죽인 사냥꾼과 기묘한 유대관계를 맺고 집으로 들어오지만 어머니는 병마에 시달리다 곧 죽어버리고 무쉐뜨는 bitch 취급을 받게 된다. 결국 무쉐뜨는 자살을 하게 된다.


이야기로만 따지자면 [무쉐뜨]는 무척이나 멜로드라마틱하다. 거의 19세기 로맨티시즘의 후예이라 할 정도로 극적인 사건들이 무쉐뜨 앞을 가로막고 결말 역시 그렇다. 하지만 원작을 쓴 조르주 베르나노스 (그의 다른 소설로는 [사탄의 태양 아래]와 역시 브레송이 영화화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가 있다.)와 브레송은 이상할정도로 로맨티시즘을 뺴버린다. 우선 이 영화에는 음악이 없다. 영화 내내 우리가 들을 수 있는건 침묵과 그 침묵을 깨트리는 대화, 자연소리, 소음처럼 삽입되는 카니발의 음악이다. 흑백으로 찍혀진 카메라과 편집 테크닉은 신중하고 고요하다. 여기엔 과장이란 요소는 없다. 배경 역시 1960년대 프랑스 시골의 금욕적이고 지루함을 잘 살려내고 있다.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덫에 걸린 새나 강바닥에서 싸우다 화해하는 두 사냥꾼 같은 처연하게 방치된 이미지와 무쉐뜨 본인이다. 전자도 강렬하긴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쉐뜨다. 어찌보면 이 영화의 내용은 지독히 종교적인 순교라고 할만하지만 원작자 베르나노스 (와 브레송)은 무쉐뜨를 평면화하지 않는다. 보통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마음씨 착하고 고결한 이미지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이 심술궃은 표정을 한 소녀는 무표정과 피곤으로 쩌덕쩌덕 찌든 사소한 손짓과 디테일들로 로맨티시즘의 기운을 지워내고 현실을 불러낸다. [무쉐뜨]의 대단한 점은 그 와중에 기이한 마법적인 순간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무쉐뜨가 우는 장면의 마력은 정말이지 위력적이다. 평범하고 불퉁한 소녀가 겪는 심적인 괴로움이 만들어내는 액션에서 종교적인 아름다움을 잡아낸다고 할까. 성모상이 우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충격은 상당하다. 결말을 알고 봤음에도 이 장면의 연출은 정말로 경탄스럽다. 액션 자체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다. 무쉐뜨가 새 옷을 감싸고 자살 시도를 한 끝에 결국 풍덩 빠져 죽는다. 하지만 막상 보면 그 우스꽝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이한 해방감과 묘한 슬픔마저 느껴질 정도다. 로맨티시즘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이 장면의 냉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로맨틱하기 그지 없다. 화면 속에서 주장을 하지 않았던 음악의 등장은 그 기이한 해방감에 가속력을 붙여준다.


베르노나스의 설계도를 삼아 펼처진 브레송의 간결하고도 괴이하지만 슬픈 순교극 [무쉐뜨]은 별다른 치장없이 사람의 영혼과 시선을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다. 이런 브레송의 마법은 다르덴 형제 같은 미니멀한 리얼리즘에서 구원을 추구하는 영화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