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162

자니 기타 [Johnny Guitar] (1954)

2012/10/12 - [Deeper Into Movie/리뷰] -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1956)니콜라스 레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두려움 없는 과잉이 만들어내는 살 떨리는 세계로 초대받는 것과 다름 없다. 평범해보이는 서사는 인물의 심리에 따라 비대하게 부풀어오르고, 멜로드라마틱한 과장을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낯설게 보인다. 걸작 [실물보다 큰]에서 레이의 과잉은 완벽해보이는 50년대 미국 중산층 사회의 어둠을 꿰뚫고 있었다. 제임스 메이슨의 과잉 연기는 시네마스코프에서 미친듯이 부풀어올랐고 레이는 그 과정을 강한 그림자와 비틀린 구도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언해피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50년대 미국을 해부하는 사이코 스릴러/멜로드라마였다. 일견 평범한 서부극으로 ..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 The 400 Blows] (1959)

만인이 인정하는 영화사의 고전을 리뷰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발굴도, 동시대적으로 뛰어난 영화를 평가하는 것과는 다르게 굳건한 비평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블로그가 참신한 해석을 노리는 그런 블로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어반복은 흥업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얘기할때도 비슷한 얘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초 중 하나로 감독의 자전적인 성장기를 다뤘으며, 현장 로케이션으로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으로 불어넣어..." 이런 얘기를 리뷰에다 늘어놓는건 따분한 일이다. 물론 이 영화가 선취한 영화적 테크닉은 그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전후 네오 리얼리즘에서 영화의 길을..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 [女が階段を上る時 / When A Woman Ascends The Stairs] (1960)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살펴보면 소위 물장사하는 여성들 (게이샤나 마담)을 다루는 영화들의 비중이 꽤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이 생각보다 포괄하는 폭이 다양하다는걸 생각해보면 (이전에 리뷰했던 [가을이 오다]라던가.) 물장사하는 여자들을 다루는 영화의 비중이 높다는건 나루세 미키오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곧장 말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과 관련된 멜로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며, 물장사 연작들은 그런 관심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쿄 뒷골목 시대에 뒤떨어진 게이샤들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줬던 [만국]이나 [흐르다]랑 달리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의 배경은 도쿄 긴자 '라일락'이라는 바다. 다카미네 히데코가 맡은 케이코는 남편을 잃고 긴자 바..

호프만 이야기 [The Tales of Hoffmann] (1951)

마이크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감독에 속한다. 그 얼마 안 되는 인지도도 [분홍신]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하지만 마이크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는 앨프리드 히치콕이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영국에 남아서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호프만 이야기]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분홍신]의 성공에 고무되어 만든 영화라는게 분명한데, 발레나 오페라 같은 무대 예술을 스크린에 올리려고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요정낭만주의의 대표주자 E.T.A 호프만이 원작을 쓰고 자크 오펜바흐가 오페라로 각색한 [호프만 이야기]는 몇가지 각색에 불구하고 꽤나 충실하게 이식되어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 호프만은 린돌프와 사귀고 있는 스텔라라는 발레리..

용암의 집 [Casa De Lava / Down to Earth] (1994)

2014/05/17 - [Deeper Into Movie/리뷰] - 뼈 [Ossos / Bone] (1997)2016/05/29 - [Deeper Into Movie/리뷰] - 피 [O Sangue / The Blood] (1989)2016/06/24 - [Deeper Into Movie/리뷰] - 행진하는 청춘 [Juventude em Marcha / Colossal Youth] (2006)2016/07/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반다의 방 [No Quarto Da Vanda / In Vanda's Room] (2000)일련의 폰타야나스 연작을 거슬러 올라와 도착한 페드로 코스타의 [용암의 집]은 말그대로 연대기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피]와 [뼈] 사이에 놓여져 있는 영화다..

반다의 방 [No Quarto Da Vanda / In Vanda's Room] (2000)

2014/05/17 - [Deeper Into Movie/리뷰] - 뼈 [Ossos / Bone] (1997)2016/05/29 - [Deeper Into Movie/리뷰] - 피 [O Sangue / The Blood] (1989)2016/06/24 - [Deeper Into Movie/리뷰] - 행진하는 청춘 [Juventude em Marcha / Colossal Youth] (2006)페드로 코스타는 [용암의 집]과 [뼈]를 제작할때 자신이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이 맞지 않다는걸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뼈]를 제작할때만 하더라도 페드로 코스타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35mm 혹은 16mm 필름만이 더 큰 세계로 나갈수 있는 통로였으며 아직 국제적인 입지가 단단하..

진흙강 [泥の河 / Muddy River] (1981)

오구리 코헤이는 기본적으로 과작의 영화작가다. [진흙강]과 [가야코를 위하여] 이후 그는 6년-9년 텀을 두고 조심스럽게 영화를 내놓고 있다. 그가 등장했던 1980년대 일본 영화계는 산업 기반의 붕괴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와중에 이타미 주조는 경박하기까지 한 템포의 풍자 코미디 영화로 흥행을 이끌고 있었고, 신인 감독들은 로망 포르노를 통해 색정적인 얘기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연출론을 조심스럽게 숨겨넣고 있었다. 하지만 오구리 코헤이는 [진흙강]을 통해 그런 흐름과 상관없다듯이, 마치 네오 리얼리즘이나 고전기 일본 영화들을 연상케하는 1.33:1 흑백 화면의 전후 일본 배경 성장물을 들고 나타났다. 당연히 저예산에 흑백 화면으로 제작된 [진흙강]은 가히 페드로 코스타의 [피]만큼이나 불시착한 영화였..

무뢰한 [The Shameless] (2015)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익숙한 구조에서 출발한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쫓다가 범죄자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 형사, 범죄자, 범죄자 애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지 같은 [무뢰한]를 이루고 있는 익숙한 구조에 대해 구구절절히 늘어놓는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고 그 디테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드러나는가이다. 이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무뢰한]은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액션 영화가 될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무거운 분위기의 멜로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을 통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무뢰한]이 장르를 통해 설정한 인물들의 동기는 이렇다: 주인공인 정재곤에..

가을이 오다 [秋立ちぬ / The Approach of Autumn] (1960)

[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미키오 필모그래피를 봐도 매우 희귀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성인 남녀간의 애정이라던가 여성, 특히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간 나루세 미키오의 작풍과 달리 어린 아이, 그것도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나쁜 놈일수록 더 잘 잔다]랑 동시상영했다는 점, 이후 나루세가 잘 다루던 게이샤나 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다시 이어진걸 보면, 나루세 자신도 이 세계가 자신이 계속 머물 세계는 아니라는건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커리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을이 오다]의 각본은 카사하라 료조가 쓴 [도회지의 아이]를 원작으로 나루세 자신이 개작해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

반 고흐 [Van Gogh] (1991)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는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첫 피알라의 영화다. 196-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대 누벨바그하고는 약간 한 발자국 떨어져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든 모리스 피알라는 1989년 [사탄의 태양 아래서]로 프랑스 영화계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온 이단아였다. 그가 [사탄의 태양 아래서] 직후 만든 [반 고흐]는 오베르라는 마을에 정착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빈센트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시절이지만, 피알라는 이 시절을 멜로드라마적으로 과잉해서 그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영화엔 스타 배우라고 할만한 캐스팅도 드러나지 않으며, 1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장면 없이 반 고흐의 후반부 인생을 다룬다.영화의 시작은 푸른 캔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