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살펴보면 소위 물장사하는 여성들 (게이샤나 마담)을 다루는 영화들의 비중이 꽤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이 생각보다 포괄하는 폭이 다양하다는걸 생각해보면 (이전에 리뷰했던 [가을이 오다]라던가.) 물장사하는 여자들을 다루는 영화의 비중이 높다는건 나루세 미키오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곧장 말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과 관련된 멜로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며, 물장사 연작들은 그런 관심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쿄 뒷골목 시대에 뒤떨어진 게이샤들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줬던 [만국]이나 [흐르다]랑 달리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의 배경은 도쿄 긴자 '라일락'이라는 바다. 다카미네 히데코가 맡은 케이코는 남편을 잃고 긴자 바에서 마담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성기는 지나간데다 자기보다 어리고 예쁜 후배 마담은 자신의 손님을 가로채 승승장구하고, 바 주인은 케이코를 닦달한다. 케이코의 꿈은 자신의 바를 차리는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 때문에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케이코를 바라보는 매니저 코마츠가 있다.
편의상 물장사 여인 연작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은 여러모로 [만국]이나 [흐르다]랑 차별점들이 많다. 먼저 이 영화는 2.35:1 화면비를 사용한 영화다. 나루세 미키오는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처럼 테크닉을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나 이후 찍은 시네마스코프 비율 영화들을 ([가을이 오다], [흐트러진 구름]) 보면 그가 영화적 테크닉을 교활하게 활용할줄 아는 감독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진 도입부는 그 점에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걸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자조적인 나레이션 위로 일본 건물 계단 특유의 좁디좁은 계단에서 케이코는 양옆의 벽에 짓눌려 탈출할 구석을 찾지 못하고 오르락 내리락하는걸 반복한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에서 시네마스코프 비율은 그야말로 탈출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케이코라는 인물 자체도 [만국]이나 [흐르다]의 게이샤들하고는 다르다. 물론 한 물 갔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마담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케이코에겐 [만국]이나 [흐르다]의 게이샤들과 달리 동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케이코 주변의 마담들은 케이코를 이용할 생각을 품고 있거나 시스템의 피해자가 되어 퇴장하거나,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 배경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에서 케이코가 겪어야 하는 수난은 오로지 케이코 혼자 겪어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수난의 끝은, 돈을 위해 정조를 포기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손님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것에서 극에 달한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 가정은 개인을 얽매는 굴레이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애증의 존재로 그려질때가 있는데,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에서도 그 부분은 여전하다. 케이코가 냑향해 요양하는 시퀀스가 그렇다. 서사상으로는 긴자로 대표되는 중심 서사와 한발 짝 떨어진 시퀀스지만, 케이코는 긴자로 대표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다가 이 집에서조차 케이코는 소아마비 조카를 위해 자신의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을 일부 포기해야만 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애정으로 묶여있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 시퀀스에서 낱낱이 해부한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에서 연대의 대상을 이성인 매니저 코마츠 켄이치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코마츠는 케이코가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연대엔 연정도 있지만, 영화는 코마츠가 케이코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이유를 세상을 헤쳐나가면서도 어떤 품위를 잃지 않는 당당한 태도라 설명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연대가 파탄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는 상당히 매몰찬 편이다. 결국 코마츠조차도 케이코의 변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로 남는 셈이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는 그 점에서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여성 수난사를 일종의 시지포스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의 결말은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긍정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케이코가 그 수렁에서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겠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코마츠를 연기한 나카다이 타츠야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에게서 어떤 긍정의 힘을 발견했던 것 아닐까. 그렇기에 영화를 끝맺는 케이코의 영업용 웃음은 그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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