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7 - [Deeper Into Movie/리뷰] - 뼈 [Ossos / Bone] (1997)
2016/05/29 - [Deeper Into Movie/리뷰] - 피 [O Sangue / The Blood] (1989)
2016/06/24 - [Deeper Into Movie/리뷰] - 행진하는 청춘 [Juventude em Marcha / Colossal Youth] (2006)
2016/07/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반다의 방 [No Quarto Da Vanda / In Vanda's Room] (2000)
일련의 폰타야나스 연작을 거슬러 올라와 도착한 페드로 코스타의 [용암의 집]은 말그대로 연대기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피]와 [뼈] 사이에 놓여져 있는 영화다. 아직은 완벽한 픽션의 영역에서 [피]의 주연이였던 이네스 드 메디어로스가 기용되었지만, 집안과 리스본 시내를 머물던 흑백 카메라가 리스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나 총천연색 카보베르데에 도착했다. 페드로 코스타가 왜 [피]를 만든 후 리스본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고 카보베르데에서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는지는 자료 부족으로 추측할수 밖에 없지만 무언가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였거니, 하고 추측해본다.
[용암의 집]의 시작은 카보베르데에서 분화하는 화산이다. 필름입자가 도드라지게 찍혀진 분화하는 화산과 마그마 다음으로, 카보베르데 주민의 얼굴 클로즈업이 담긴 몽타쥬가 흘러간다.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는 이 시작을 '코스타의 실수'라고 말했지만 [용암의 집]의 도입부는 카보베르데가 품고 있는 이미지를 포착한 뒤, 몽타쥬로 연결해 조용히 폭발시키는 멋진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도입부가 흥미로운 점은 고요함과 뜨거움이 동시에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카보베르데 주민들의 얼굴들은 로베르 브레송을 연상시키는 침묵에 잠겨있지만, 격렬하게 흐르는 영화 음악과 분절된 편집은 그와 대조되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페드로 코스타는 [용암의 집] 도입부를 통해 조용하게 분출하는 카보베르데의 분위기를 영화적으로 무대화하는데 성공한다.
페드로 코스타는 서사를 다룰때 어떠한 설명을 일부러 무시하고 생략과 결과를 통해 정서를 전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페드로 코스타가 묘사하고자 하는 분위기는 무엇일까? 도입부가 지나 짤막하게 등장하는 리스본에서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활기차게 웃으며 일하러 가는 동료 노동자들과 달리, 영화의 중심인 레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의 무표정은 놀랍게도 카보베르데 사람들의 얼굴들을 배치한 초반부 컷과 닮아있다. 여기까지 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용암의 집]은 숨길것도 없이 '유령 영화' 혹은 '좀비 영화'다.
마리아나가 카보베르데에 도착하면서 이런 좀비 영화적인 성격은 강해진다. 영화 속 카보베르데는 분명한 인과관계 없이 흘러가는 느릿한 악몽과 같은 곳이다. 통성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마리아나를 알아보며, 레앙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은 자신은 아이가 50명이나 있다고 말한다. 해변가를 산책하던 마리아나는 왠 소년에게 공격받고, 개는 살해당한다. 자연히 이런 분위기에서 마리아나가 가지고 있는 서구의 지식들은 해체되어간다. 온다던 헬리콥터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등장하지 않고, 레앙을 위해 준비해둔 백신은 그대로 사라져버린다. 낯선 곳에서 마리아나는 철저한 타자다.
하지만 [용암의 집]은 착취적으로 이국을 소모하는 영화는 아니다. 페드로 코스타는 이 악몽을 타자화하지 않고, 카보베르데라는 공간에 대해 묵상한다. 페드로 코스타는 카보베르데를 떠나는 청년들을 보여주면서, 이 느릿한 몽유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폰타야나스가 그랬듯이, [용암의 집]에 등장하는 카보베르데의 느릿한 우울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고 '그냥 살아가는 곳'이다.
흥미롭게도 [용암의 집]엔 [행진하는 청춘]의 모티브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레앙은 벤투라처럼 카보베르데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온 공사 노동자이며 [행진하는 청춘]에 등장했던 렌토의 "용암으로 만든 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연서는, 레앙과 아내(로 추정되는 인물) 간의 연서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등장한다. 그렇다면 렌토는 레앙의 또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명확한 대답은 나오지 않지만, 적어도 [행진하는 청춘]에서 희망을 점차 잃다가 우발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렌토의 모습은 [용암의 집]에 등장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좀비 레앙에서 이어진 것은 명백하다.
레앙이 카보베르데인들의 생기 잃은 모습을 집약해 보여준다면, [얼굴 없는 눈]으로 유명한 에디트 스콥이 맡은 이디스는 훨씬 복잡한 의미를 내포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살리자르 정권의 상흔을 지니고 카보베르데의 섬에 정착한 이디스는, 꽤나 모호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디스의 아들이 말하길, 이디스는 마리아나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마리아나가 살리자르 정권 이후 세대라는걸 생각해보면 마리아나에 대한 이디스의 거부감은 자신을 버리고 망각한 포르투갈에 대한 거부감일것이다. 그렇기에 이디스는 인종과 관계없이 카보베르데인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코스타 감독은 이디스가 카보베르데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았던 포르투갈과 카보베르데 간의 묘한 관계를 암시한다. 좀 더 확장하자면 [얼굴 없는 눈]에서 가면만 쓰고 세상과 유리되어 성에 갖혀 살아가던 크리스티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라 할수도 있을것이다.
이디스와 마리아나의 엇갈린 운명은 그래서 흥미롭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리아나는 카보베르데의 일원이 되어간다. 이디스의 아들과 충동적으로 자는 것부터 시작해, 깨어난 레앙을 보고도 리스본에 있을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페드로 코스타는 마리아나가 붉은 원피스에서 무채색의 옷을 갈아입는걸로, 마리아나가 카보베르데에 정착했음을 명백하게 한다. 마리아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는 용암의 집 밖에서 돌을 던지며 분해하는 장면이다.
반대로 완벽하게 정착한듯한 보였던 이디스는 영화 마지막에 카보베르데를 떠나 포르투갈로 향한다. 그의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암시에도 불구하고 이디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마냥. 이디스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처럼 페드로 코스타는 [피]처럼 침묵을 택한다. 그저 문턱에 걸쳐 잠든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는 컷을 통해, 경계선상에 있던 마리아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암시를 남길 뿐이다.
[피]가 인공적인 상징과 고도로 계산된 영화광적인 이미지들을 서사를 배치하는 전형적인 아트하우스 영화였다면, [용암의 집]은 추상적인 내러티브를 기반에 두면서도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을 도입해, 카보베르데인과 그 곳의 풍경을 그대로 포착/채집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단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카보베르데인들이 축제를 벌이는 시퀀스은 외지인인 페드로 코스타가 영화를 위해 조작했다기보는, 촬영날 우연히 일어났던 카보베르데인들의 축제 속으로 코스타가 들어가서 찍은것처럼 보인다. 어찌보면 후작들이 인물 다큐멘터리스러웠다면 [용암의 집]은 인류학 다큐멘터리스럽다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용암의 집]은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자연 풍광이 가져다 주는 미적 쾌감을 영화적 동력으로 삼는 페드로 코스타 영화기도 하다. 붉은 색 태양과, 검은색 화강암, 갈색 토양이 어우러진 카보베르데의 풍광은 마치 황야같이 보이는데 어찌보면 [용암의 집]을 만들면서 페드로 코스타는 서부극을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시공간이 모호해진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마리아나의 클로즈업을 담은 컷이라던가 거의 흑백 호러 영화를 연상케하는 해변가 시퀀스는 [피]에서 보였던 영화광적인 매료가 담겨있기도 하다.
[용암의 집]은 이후작들에 비해 독해할 수 있는 많은 상징이 표면에 드러나 있는 영화기도 하다. 이것은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하는데, 적어도 [반다의 방] 이후 작들에 있던 자기고백에 담긴 아름다움은 [용암의 집]엔 없다. 반대로 정교하게 계산된 촬영이라던가 [피]보다는 덜 관습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편한 서사 전개는 [반다의 방]을 보면서 졸았던 사람이라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관객의 자유겠지만 적어도 [용암의 집]에 드러난 표면은 이후 페드로 코스타 영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원점이라 할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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