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미키오 필모그래피를 봐도 매우 희귀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성인 남녀간의 애정이라던가 여성, 특히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간 나루세 미키오의 작풍과 달리 어린 아이, 그것도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나쁜 놈일수록 더 잘 잔다]랑 동시상영했다는 점, 이후 나루세가 잘 다루던 게이샤나 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다시 이어진걸 보면, 나루세 자신도 이 세계가 자신이 계속 머물 세계는 아니라는건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커리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을이 오다]의 각본은 카사하라 료조가 쓴 [도회지의 아이]를 원작으로 나루세 자신이 개작해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온 후카야 모자를 주인공으로 이뤄진다. (나루세 영화에 종종 출연했던 오토와 노부코가 맡은) 어머니 시게코는 도쿄 여관에 취직해 일을 하기 시작하지만 이내 친척에게 히데오를 맡기고 야반도주를 해버리고, 히데오는 어머니에게 방치당한 채로 삼촌이랑 살아가다가, 미시마 준코라는 동갑내기 소녀랑 친해지게 된다.
상영시간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가을이 오다]는 상당히 소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한 영화를 소품이라 볼 수 있다면) 우선 이 영화에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라던가 [흐르다], [만국], [흐트러진 구름]에서 볼 수 있었던 심각하고 쓸쓸한 감정의 저류는 찾아보기 힘들며 두 아이의 모험은 다소 철없지만 귀여운 감정 교류와 일상의 모험이 중심이 된다. 이야기 구조는 일상 에피소드 위주지만, 나루세와 카사하라는 이런 간단한 서사에 딱정벌레를 잡아 준코에게 주려는 히데오의 모험을 통해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가을이 오다]는 여전히 나루세 식으로 애잔한 영화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어찌할수 없는 환경이나 관계를 세팅해놓고 그 상황이나 관계를 타개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멜로드라마를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이는데, [가을이 오다]는 심각함이 없음에도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다른 나루세 영화 못지 않게 애잔한 영화다. 주인공 소년소녀들은 부모와 어른이라는 존재들 때문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며, 조그마한 저항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철부지 같은 행동으로 치부된다.
[번개]를 필두로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오즈의 가족보다 훨씬 세파에 찌튼, 비틀린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가을이 오다]에서도 그런 나루세 미키오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게코는 아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훨씬 중요시하며 끝내 오빠에게 아들을 맏기고 떠나버리는 가벼운 모습을 보이며, 준코의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속물적인 잣대로 후카야 모자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작 그런 준코의 어머니 역시 오사카 부자의 현지처로 살아가는 모순된 양태를 보이고 있다.
어른들이 어떤 인습에 모습을 보일수록, [가을이 오다]에 등장하는 준코와 히데오는 더욱 의연하게 그려진다. 물론 그들도 아이들답게 삐치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어떤 인습이나 편견에서 자유롭게 순수한 관계를 이뤄나간다. 준코를 위해 딱정벌레를 찾으러 나서는 히데오의 모험과 동선은 어딘가 돈키호테적인 귀여움과 쓸쓸함을 품고 있다.
결국 [가을이 오다]는 예정된 이별로 끝난다는 점에서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진 구름]와 가까이 있는 영화기도 하다. 떠나가는 트럭을 쫓아가려고 하지만 결국엔 홀로 남겨지는 결말부 히데오의 컷에서 나루세 감독의 사적인 감정이 느껴진다면 과잉된 해석일까? 다만 나루세의 유년 시절이 이 영화의 히데오랑 비슷했다는걸 생각해보면, 각본까지 참여한 [가을이 오다]는 다른 의미로 나루세 미키오 본인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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