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37

사울의 아들 [Saul fia / Son of Saul] (2015)

라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은 2015년 칸 영화제의 센세이션 중 하나였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중에서도 회색지대인 시체 처리반 ‘존더코만도’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비극을 재현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했다는 평가와 도덕 판단이 부재한 듯한 시선과 더불어 역사의 비극을 영화 연출의 첨단으로 나가기 위해 착취한것 아니냐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그렇다면 [사울의 아들]은 어떤 식으로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영화가 현대 영화 중에서 어떤 전통에서 출발했는지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영화는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논쟁에 휩싸였다. 무수한 영화들이 나왔지만 이 논쟁의 첨단에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알랭 레네의 [밤과..

아쿠아리우스 [Aquarius] (2016)

[아쿠아리우스]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것은 인물보다도 브라질 동남부 해안도시 헤시피의 옛날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다. 흑백으로 이뤄진 이 사진들이 배치된 이유는 명백하다: 클레베 멘돈사 필로에겐 어떤 인물보다도 헤시피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그는 헤시피라는 공간이 거쳐왔던 역사를 짧게라도 좋으니 관객들이 학습하길 바란다. 이런 욕망에는 매우 향토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필로의 고향은 바로 헤시피이며, 그의 전작 [네이버링 사운즈] 역시 헤시피가 배경인 영화다. 낡은 엽서 같은 사진들에서 시작한 영화는 다음 시퀀스에서 곧 인물로 좁혀들어간다. 하지만 필로는 곧장 시놉시스를 보고 상상할법한 클라라의 현재로 들어오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클라라의 과거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필로는 클라..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

시작은 이렇다: 황야 저 멀리서 마차가 달려오고 일련의 도적 무리들이 튀어나와 돈을 요구한다. 카우보이 세 명이 멀리서 그 과정을 지켜본다. 익숙한 서부극의 설정이다. 하지만 다음 샷. 도적들은 마차에 있던 승객과 마부의 호주머니를 털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도적들은 짜증내며 그들을 내보내고 지켜보던 카우보이 세 명은 다시 길을 떠난다. 서부극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뭔가 기대가 어긋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의 악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카우보이들은 악행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바람 속의 질주]는 무언가 중요한 동기와 열정 자체가 배제되어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바람 속의 질주]는 하지도 않은 일을 오해받은 사람들의 얘기다. 번과 웨스, 오티스는 어떤 대단..

자객 섭은낭 [刺客 聶隱娘 / The Assassin] (2015)

고백하자면, 허우샤오셴의 차기작이 [자객 섭은낭]이 무협 영화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꽤 당황했다. 내겐 허우샤오셴은 꽉 짜여진 한 샷의 미장센과 느린 리듬으로 흐름과 순간을 드러내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움직임’이 주인 무협 영화를 만들다고 했을 때 마이클 베이가 허우샤오셴 영화를 찍는 소식을 듣는 것만큼 당혹스러웠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함께 본 영화다. 물론 부모님은 허우샤오셴 영화를 잘 몰랐고, 실제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금세 졸기 시작했다. 이 개인적 경험은, [자객 섭은낭]이 취하고 있는 방법론이 일반적인 무협 영화랑 차이가 있다는걸 잘 드러내고 있다. 샷 구도로 보자면 [자객 섭은낭]은 그의 전작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무협 영화의..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クロラ / The Sky Crawlers] (2008)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는 극도로 인공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애니 속 세계는 대리전이 실제 전쟁을 대체했다. 그리고 대리전을 담당하는 것은 영원히 늙지 않는 킬드레라는 10대 소년소녀들이다. 10대 소년소녀들은 전투기를 몰아 상대편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안심하면서 평화를 유지한다. 절대로 현실적이라 할 수 없는 이 기본전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스카이 크롤러]는 [공각기동대]보다도 훨씬 더 사변적인 세계를 밀어붙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분위기는 모리 히로시의 동명 원작의 공이 컸을거라고 본다. [스카이 크롤러]는 구조의 애니메이션이다. 먼저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구축되어 있는지를 파악한 뒤 대립항적인 두 공간의 차이를 강조한..

Real Motion/리뷰 2016.11.20

완전범죄 [Indagine Su Un Cittadino Al Di Sopra Di Ogni Sospetto / Investigation of a Citizen Above Suspicion] (1970)

[완전범죄]의 시작은 흐름이 있는 모호한 파편이다. 아마 처음 보는 관객들은 왜 남녀가 아파트로 몰래 숨어들어가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가 도착적인 섹스 끝에 여자를 살해했을때조차도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할 수가 없다. 마침내 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수사 사건으로 현장에 불려갔을때 관객들은 [완전범죄]가 어떤 흐름으로 흘러갈지 갈피를 잡게 된다. [완전범죄]는 범죄를 숨기려고 하는 경찰 수사관의 얘기다. 관객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 경찰인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하거나 들킬 생각이 전혀 없다. 수사관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이 세 전제는 오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데스노트]나 김성훈의 [끝까지 간다]랑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완전범죄]는 [데스노트]나 [끝까지 ..

해안가로의 여행 [岸辺の旅 / Journey to the Shore] (2015)

2013/08/26 - [Deeper Into Movie/리뷰] - 절규 [叫 / Retribution] (2006) 죽은 남편이 돌아와 여행을 제안한다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본 뼈대는 판타지 장르에서는 참신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도입부는 신비롭다. 장을 보고 팥죽을 만들던 주인공 미즈키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미즈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남편 유스케가 서 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듯이.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엔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안다. 심지어 친절하게 유스케는 자신이 실종되었다는걸 죽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 장면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화에서 이전 프레임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당혹감과 경외감을 느낀..

하모니움 [淵に立つ / Harmonium] (2016)

[하모니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건 스즈오카 부부의 딸 호타루의 풍금에 맞춰 울러퍼지는 메트로놈의 음이다. 그리고 음에 맞춰 조각조각난 타이틀 '늪에 서다'라는 타이틀이 붙어졌다가 다시 사라진다. 마치 규칙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산산조각나 사라지는 것처럼 맞춰진 오프닝 시퀀스는 불길함을 안기기 충분하다. 후카다 코지는 당돌하게도 다음 시퀀스로 오즈 야스지로가 세계 영화계에 남긴 유산 중 하나인, '가족이 밥을 먹는 장면'을 이어간다. 하지만 [하모니움]의 밥을 먹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불편함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밥상에서 나누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죄에 관한 대사도 그렇지만, 침침한 조명과 다소 스산한 기운이 스며든 스즈오카 가족의 식탁엔 활기참이나 친밀함은 없다. 오즈의 밥상을 의도적으로 ..

자니 기타 [Johnny Guitar] (1954)

2012/10/12 - [Deeper Into Movie/리뷰] -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1956)니콜라스 레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두려움 없는 과잉이 만들어내는 살 떨리는 세계로 초대받는 것과 다름 없다. 평범해보이는 서사는 인물의 심리에 따라 비대하게 부풀어오르고, 멜로드라마틱한 과장을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낯설게 보인다. 걸작 [실물보다 큰]에서 레이의 과잉은 완벽해보이는 50년대 미국 중산층 사회의 어둠을 꿰뚫고 있었다. 제임스 메이슨의 과잉 연기는 시네마스코프에서 미친듯이 부풀어올랐고 레이는 그 과정을 강한 그림자와 비틀린 구도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언해피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50년대 미국을 해부하는 사이코 스릴러/멜로드라마였다. 일견 평범한 서부극으로 ..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 [女が階段を上る時 / When A Woman Ascends The Stairs] (1960)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살펴보면 소위 물장사하는 여성들 (게이샤나 마담)을 다루는 영화들의 비중이 꽤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사실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이 생각보다 포괄하는 폭이 다양하다는걸 생각해보면 (이전에 리뷰했던 [가을이 오다]라던가.) 물장사하는 여자들을 다루는 영화의 비중이 높다는건 나루세 미키오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곧장 말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과 관련된 멜로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며, 물장사 연작들은 그런 관심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도쿄 뒷골목 시대에 뒤떨어진 게이샤들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줬던 [만국]이나 [흐르다]랑 달리 [여자가 계단을 오를때]의 배경은 도쿄 긴자 '라일락'이라는 바다. 다카미네 히데코가 맡은 케이코는 남편을 잃고 긴자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