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허우샤오셴의 차기작이 [자객 섭은낭]이 무협 영화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꽤 당황했다. 내겐 허우샤오셴은 꽉 짜여진 한 샷의 미장센과 느린 리듬으로 흐름과 순간을 드러내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움직임’이 주인 무협 영화를 만들다고 했을 때 마이클 베이가 허우샤오셴 영화를 찍는 소식을 듣는 것만큼 당혹스러웠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함께 본 영화다. 물론 부모님은 허우샤오셴 영화를 잘 몰랐고, 실제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금세 졸기 시작했다. 이 개인적 경험은, [자객 섭은낭]이 취하고 있는 방법론이 일반적인 무협 영화랑 차이가 있다는걸 잘 드러내고 있다. 샷 구도로 보자면 [자객 섭은낭]은 그의 전작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무협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기 보다는, 자신의 세계에서 무협 영화의 문법을 해석하는 쪽을 택한다.
재미있게도 [자객 섭은낭]의 ‘액션’ 샷 자체는 허우샤오셴 기준에서는 컷을 잘게 나누는 편에 속한다. 황금 가면의 여성과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라던가 자객들에게 습격받는 섭우후 일행을 보여줄 때 허우샤오셴은 무리하게 액션에다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왔던 샷의 언어를 접목시키진 않는다. 가끔 롱 샷으로 액션을 보여줄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객 섭은낭]의 ‘액션’은 허우샤오셴식 유장한 리듬을 잠시 깨트리는 효과로 기능한다. 습격받는 섭우후를 섭은낭이 난입해 구하는 시퀀스는 임강 특유의 일렉트로닉 사운드트랙과 겹쳐저 일반적인 무협 영화 언어랑 닮아있다.
그럼에도 허우샤오셴의 유장한 언어는 그 ‘액션’마저도 품어안는 모습을 보인다. [자객 섭은낭]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액션 자체보다는 액션의 시작점과 끝점에 있다. 상술한 황금 가면의 여성과 섭은낭이 자작나무숲에서 칼싸움을 벌이는 시퀀스에서 허우샤오셴은 대결 장소로 다가가는 두 여자의 모습을 특유의 롱 샷으로 그려낸다. 그들이 마침내 서로에게 다가섰다고 생각했을 때 허우샤오셴이 선택한 다음 샷은 맑은 하늘을 둘러싼 나무다. 필로우 샷의 기법으로 찍힌 이 나무는, 두 사람의 대결이 어떤 순리에 따라 이뤄진다는 느낌마저 준다.
사실 이 장면에서 허우샤오셴이 대결을 마무리짓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열심히 싸우던 두 사람은 갑자기 대결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 떠나간다. 마치 그동안 싸웠던 것은 아무 일도 아니였다듯이 말이다. 대결을 마무리짓는 방식도 차분하기 그지없지만, 대결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그 흐름이야말로 [자객 섭은낭]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그들은 왜 그렇게 싸우다가 갑자기 멈추고 돌아서는건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자객 섭은낭]의 액션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장면이 두 장면 밖에 나오질 않는데, 도입부의 암살 장면과 아버지가 이끄는 사신 일행을 습격한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장면이다. 나머지 장면은 황금 가면의 여인과 대결처럼 싸움이 중지되고, 아무렇지 않게 은낭이 유유히 사라지는걸로 끝난다. 이 중지와 사라짐이야말로 [자객 섭은낭]의 매력과 영화적 리듬, 나아가 섭은낭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초라고 본다.
다시 영화 도입부를 보자. 임무에 실패하고 돌아온 섭은낭을 스승인 가신 공주는 ‘너의 무예는 출중하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구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자객 섭은낭]을 보면 섭은낭의 캐릭터가 그 대사와 반대로 상당히 담백한 느낌이다. 심지어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계안과 섭은낭의 관계도 그렇다. [자객 섭은낭]의 시놉시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허우샤오셴이 전계안을 향한 섭은낭의 애틋한 감정을 그려내는 샷을 집어넣을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그런 샷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허우샤오셴은 섭은낭이 전계안과 마주 싸울때도, 전계안의 후처인 호희를 살려줄때도 정확하게 할 일만 하게 하고 거기에 그 이상의 감정을 덧붙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관계엔 멜로드라마적인 물기가 없다. 은낭과 계안의 친밀했던 시절은 계안의 대사과 소도구로만 단편적으로 드러날뿐, 현재 시점에서 은낭은 계안에게 더 이상의 감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본다면 섭은낭이 왜 전계안을 죽이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보통 액션을 가로막는건 멜로드라마다. 인물의 감정이 과다해지면, 캐릭터의 액션은 그 과다해진 감정을 처리하고 나서야 겨우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직전 샷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멜로드라마가 발생하면 캐릭터는 다음 샷에서 예정했던 액션을 행할 수 없게 된다. 단적인 예로 그 유명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의 폭로를 듣는 장면이 있다. 루크가 전의를 상실한 채 울부짖는 것도, 갑작스럽게 등장한 감정의 장애물이 이전 샷에 넘처 흘렀던 전의를 가로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자객 섭은낭]에 그대로 적용하면 섭은낭은 지체없이 전계안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허우샤오센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계안과 은낭이 만나서 칼싸움을 벌이는 시퀀스를 보라. 여기서도 은낭은 계안을 죽일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은 듯이 여유롭게 싸움을 벌이다가 홀연히 싸움을 중단하고 사라진다. 무언의 협박인걸까? 적어도 계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은낭의 심리는 그렇지 않다는게 확실해진다.
이해의 실마리는 [자객 섭은낭] 도입부에서 제시된다.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 도입부에서 섭은낭이 죽여야 할 남자가 아들과 놀아주는 걸 보고 죽이지 못하는 시퀀스를 처음 봤을 때, ‘저 사람이 전계안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심지어 그게 아니라는 걸 안 뒤로도 약간 집중이 안 돼서인지 전계안하고 초반부 섭은낭이 죽이지 못했던 관료와 혼동하곤 했다.
그러다가 영화가 끝날 무렵에 은낭의 스승이 초반부의 “너의 무예는 출중하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구나”라는 대사를 다시 말할 때 의아함을 느꼈다. 초반부에 이 대사는 분명 살해 대상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살해하지 못했던 섭은낭을 질책하는 의미였다. 그리고 섭은낭은 이때 아버지와 관련된 이유를 댄다. 이후 장면을 보자. 가신공주의 말을 들은 섭은낭이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섭은낭이 한창 걸어가는 샷이 보여준 뒤, 갑자기 샷이 넘어가면서 가신공주를 섭은낭을 공격하고 섭은낭이 반격한다. 하지만 섭은낭은 가신공주를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섭은낭이 그대로 떠나가고 가신공주는 섭은낭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어디론가 떠나는 섭은낭을 보여주면서 영화를 끝낸다.
요컨대 허우샤오셴은 어떤 구조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첫 번째 구조에서 섭은낭은 ‘가족’이라는 코드를 발견하고 죽이는 것에 망설였다. 그렇기에 섭은낭은 두 번째 구조에서 다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를 시험받는다. 만약에 이것이 반복된다고 한다면 섭은낭은 두 번째 구조인 전계안에게서 ‘가족’라는 코드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두 번째 구조가 막 시작했을 무렵 재미있는 샷 연쇄가 하나 등장한다. 전계안이 가신들과 업무를 보는 샷 다음, 섭은낭이 숨어서 전계안을 감시하는 듯하는 샷이 등장한다. 그 다음 샷에서 허우샤오셴은 갑자기 전계안이 아들과 함께 노는 샷을 집어넣는다. 전계안이 업무를 보는 샷과 아들과 함께 노는 샷 사이에 등장한 섭은낭의 샷은 두 샷이 주관적인 시점에서 촬영했다는걸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이 세 샷의 연쇄과정은 관료로써 전계안과, 가장으로써 전계안을 섭은낭의 시점 샷으로 드러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허우샤오셴이 다음으로 던져주는 단서는 푸른 난초에 대한 얘기다. 이 이야기는 처음 들었을 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푸른 난초 이야기와 섭은낭이 겪는 일련의 임무들 사이엔 ‘가족의 죽음’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는걸 알았다. 푸른 난초 얘기는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섭은낭이 거쳐야 하는 암살 임무는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로 남기는 행위다. 그걸 알듯이 첫 번째 구조에서 은낭은 암살을 실행하려고 하다가, 문듯 중단한다. [자객 섭은낭]의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한다는걸 생각해보면 이 중단은 사실상 영화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나는 [자객 섭은낭]은 일종의 아버지 살해 모티브를 채용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엔 섭은낭이 상징적인 부모를 떠나가는 얘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섭은낭이 ‘아버지’로 삼는 대상은 실제 아버지인 섭우후나 어머니가 아닌, 가신공주다. 실제 부모는 섭은낭과 대립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섭은낭을 지켜보거나 섭은낭에게 도움을 받고 후회할 뿐이다. 혈육을 향한 이런 덤덤한 섭은낭의 태도는 전계안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덤덤한 태도랑 연관되어 있다. 즉 섭은낭은 고향의 인물들에게는 크게 애착이 없거나 (전계안) 덤덤하기 그지 없다. (부모)
하지만 가신공주 같은 경우, 훨씬 복잡하다. 사실 잘 따져 보면 이 영화의 모든 사건들은 섭은낭과 가신공주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가신공주가 시킨 임무를 실패한 섭은낭이 위박에 와서 또다른 임무를 실패하고 대결 끝에 떠나가는 얘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섭은낭과 가신공주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는 허우샤오셴이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기 때문에 추론을 해야 한다. 단서를 엮어보자면 가신공주는 당나라 사람이며, 섭은낭이 받은 암살 임무들은 전부 당나라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임무라는 수준 정도는 추론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섭은낭이 전계안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멜로드라마적 감정이라기 보다는 다른 판단이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에 섭은낭이 가신공주에게 자신이 전계안을 죽이지 않을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당위성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있다. 섭은낭은 ‘아들들이 어리기 때문에 전계안을 죽이면 위박이 다시 혼돈에 빠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섭은낭은 대체 어떤 과정으로 전계안을 죽이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된 걸까? 심지어 섭은낭 자신은 전계안의 부성애라던가 그런데 관심을 쏟는 것 같지 않는데 말이다.
다시 아버지 살해 모티브로 돌아가자면, 섭은낭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가신공주에 대한 반항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구조에서 섭은낭은 가신공주의 비판을 아무런 말없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러 위박에 온다. 하지만 두 번째 임무도 실패한 후 섭은낭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가신공주의 임무 자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회상이자 도입부인 첫 번째 구조에서 본편인 두 번째 구조로 넘어갔을때랑 두 번째 구조가 매듭지어졌을 때 섭은낭의 심리는 변했다. 그 사이 섭은낭은 무슨 일을 겪었는가?
그 답은 상술한 액션의 중지가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가에 답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구조에서 아이와 아버지를 본 섭은낭은 ‘주저함’을 안고 액션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 구조에서 처음으로 액션의 중지가 일어나는 장면은 전계안과 섭은낭의 대결이다. 여기서 섭은낭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전계안을 아무렇지 않지 않게 피하며 그를 가볍게 제압한다. 이때 은낭은 갑자기 액션을 멈추고 그 공간을 빠져나간다. 명백한 기회였음에도 여기서 은낭은 계안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걸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후다. 다시 호희에게 돌아온 전계안은 은낭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고백한다. 계안의 고백이 끝난 직후 다음 샷에서 허우샤오셴은 수평 트래킹으로 커튼 사이에서 숨은 은낭이 그들을 훔쳐보는 샷을 집어넣는다. 이때 은낭은 마치 ‘드러난’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듯이, 그들를 관조하는듯한 모습이다. 이처럼 은낭이 숨어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이미지는, [자객 섭은낭]에서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 대한 은유기도 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위박 사람들을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은낭이 커튼 밖을 나와 잠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음 샷은 그런 은낭의 위치를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은낭은 자신을 죽이고 양지에 침투해야 하는 그림자다.
그 다음 은낭이 다시 등장하는 장소가 좀 재미있다. 은낭이 다시 등장하는 장소는 탁 트인 숲 속이다. 은낭의 아버지 섭우후가 호위하는 당나라 사신들이 암살 부대에게 습격당하는 동안 은낭은 한창 액션이 벌어지는 공간에 아무런 징조 없이 불쑥 나타난다. 물론 은신의 이미지를 동반한 채 말이다. 대체 은낭은 어떤 논리로 계안의 침실에서 숲 속으로 넘어왔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은낭은 갑자기 뛰어들어 싸움을 정리해버린다.
계안의 침실에서 어떻게 숲으로 넘어왔는가는 사실상 무의미한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에서 섭은낭의 심리가 변화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액션 시퀀스가 변두리 공간이나 한밤중 같은 잘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진행된다면, 이 장면만은 액션이 밝은 공간에서 진행된다. 또한 사실상 전계안을 돕는 행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계안을 향한 은낭의 심정이 변했다는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최초의 시퀀스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은낭과 섭우후 일행이 여관에 머무르며 얘기를 나누는데, 이 장면에서 섭우후가 하는 말은 ‘가신공주가 널 데려가지 말았어야 했다.’다. 우후는 분명하게 은낭이 가신공주에게 가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은낭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왔을때 은낭은 마장 소년 앞에서 ‘파랑새의 춤’에 대한 얘기를 한다. 마치 중간에 아무 일도 없이 미처 대답하지 못한 걸 말하듯이 말이다.
은낭의 대답은 ‘위박엔 그녀와 같은 사람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조정을 떠나 위박으로 갔다.’로 이 이야기를 맺는다. 이 말은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위박 출신인 은낭이 당나라 사람으로 그려지는 가신공주에게 갔다는 사실은, 가성공주의 이야기의 거울쌍인 셈이다. 즉 은낭은 가성공주의 과거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돌려 말한 셈이다.
이 시퀀스 다음에 나오는 액션 장면은 금빛 가면을 쓴 여인과 대결이고, 도술에 걸린 호희를 구하고 잠깐 전계안과 맞붙다가 사라지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설명없이 등장한 금빛 가면을 쓴 여인 장면은 섭은낭의 임무와 연관이 있으며, 동시에 계안과 대척되는 세력에 속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허우샤오셴이 액션을 배치하는 방식은 친절하진 않지만 분명한 어떤 흐름과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샷이 쌓이면서 섭은낭의 심리와 액션의 방향은 변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섭은낭과 가신공주의 대결이다.
다른 아버지/어머니 살해 모티브 작품들과 달리, 허우샤오셴은 ‘살인’을 하지 않음으로써 살해 모티브를 수행한다. 가신공주도 살아남고, 섭은낭도 살아남는다. 다만 그들은 이별을 할 뿐이다. [자객 섭은낭]이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영화 속 액션 장면 중에서 액션의 중단이 일어나는 그렇다면 제일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섭은낭은 왜 가신공주의 명을 거슬렀는가?
이는 가신공주가 당나라 출신이며, 전계안 암살이 위박의 자치를 뒤흔들고 당나라에게 유리했다는걸 생각해보면 섭은낭의 행위는 자치권을 빼앗으려는 것에 대한 반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객 섭은낭]은 양안 관계라는 소재를 은유하는 영화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허우샤오셴은 가신공주로 대표되는 중국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것일까?
양안 관계에 대한 허우샤오셴의 정확한 대답은 알수 없겠지만 [자객 섭은낭]은 엔딩으로만 보자면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늙은 할아버지가 성인이 된 소년에게 얘기를 하는 샷으로 끝났던 [연연풍진], 끝내 실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실내 속 관계의 반복을 보여주는 [해상화], 살아남은 자들의 밥상을 앞에 두고 역사적 사실들을 담은 자막을 병기하며 끝났던 [비정성시], 눈 내리는 유바리 시를 보여주는 샷으로 막을 내렸던 [밀레니엄 맘보]... [자객 섭은낭]이 선택한 결말 샷은 무협 영화의 전통적인 결말인 산하 너머로 사라지는 인물이다. 모든 일이 끝난 섭은낭은 마장 소년과 함께 아름다운 산하를 거쳐 어디론가 사라진다.
지금까지 허우샤오셴 영화의 결말은 모든게 끝나고 남겨진 것들의 쓸쓸함이라던가 애잔함을 강조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자객 섭은낭]의 결말 샷은 애잔하기 보다는 오히려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이라도 이 샷의 홀가분한 아름다움은 도통 잊기 힘들 것이다. 섭은낭은 이 샷에서 온전히 자신의 결정으로 위박을 떠나 어디론가 향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섭은낭도 허우샤오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가신공주에게서도, 전계안에게서도 해방되어 떠나가는 섭은낭의 뒷 모습 샷엔 우리가 쉽사리 꿈꾸지 못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바로 ‘자유’ 말이다. 섭은낭의 이 모습은 직전에 등장한 여전히 책임에 짓눌린 전계안의 샷하고 대조된다. 이 ‘자유’야말로 허우샤오셴이 [자객 섭은낭]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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