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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바보 [Heritage] (2023)

이종수의 《부모 바보》는 카모플라쥬 내지는 마트료시카처럼 자신의 서사와 정체성을 위장한다. 가족 간 문제와 복지의 사각지대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제재와 도입부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 영화만의 특수성을 지녔다고는 보기 힘들다. 오히려 다르덴 형제나 켄 로치 영향 아래 있는 한국 사회파 영화들이 이미 많이 다뤄왔던 소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바보》는 이런 사회 문제를 직설적인 이미지와 맥락으로 구체화해 어떤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완강히 거부한다. 우리가 《부모 바보》를 보면서 생각해야 할 지점은, 이정홍의 《괴인》이 그렇듯이 차라리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뿜어내는 낯섦과 불쾌함, 불만족이 서사의 안정성과 영화 구조를 뒤흔들어놓는 과정과 결과다. 《부모 바보》는 그 점에서 손에 ..

곰이 있다고 우기는 현실 앞 디지털 시네마의 밀수로: 2010년대 이후 자파르 파나히 작가론

영화란 기본적으로 포드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는 산업이다. 적어도 대다수의 관객이 기꺼이 표를 살 영화들은, 배우와 감독, 스태프의 영역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고, 통제가 이뤄진 공간 속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하지만 컴퓨터를 시점으로 디지털 캠코더와 휴대 전화가 등장하면서 현장에서의 영화 촬영과 편집은 서서히 그 문턱을 낮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도그마 95의 위악성을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낮아진 문턱을 제일 민감하게 알아차렸던 국가는 다름 아닌 이란이다. 이미 많은 감독이 디지털 캠코더의 조악한 기동성으로 제2의 프리 시네마/시네마 베리테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지만, 이란은 그 어디보다도 카메라를 자유롭게 놓고 촬영할 수 없었던 국가였기에 훨씬 그 가능성에 맹렬히 매달렸다. 시작은 2002..

미완의 우주에서 온 빛과 색채, 형상의 숙명론: 가보르 보디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잡문

1970년대 헝가리 영화 감독 가보르 보디는 헝가리 영화사의 어떤 저주와도 같은 이름이다. 그는 한창 나이인 30대 말에 의문사했다. 보디 본인은 자신의 영화를 우주적인 것과 연관지어서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르자면 그가 사망한 순간, 그의 우주는 그 시점부터 멈춰섰고 다시는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3편의 극영화와 그보다 많은 비디오 아트와 단편을 보고 가보르 보디가 상상했던 우주의 총체성을 가늠해야 한다. 우선 우주적이라는 설명에도 알 수 있듯이, 보디는 영화의 몸통인 필름이 현실에 종속된 매체라는 믿음이 없다. 초월하지 않는 현실은 우주보다 대지에 가깝기에, 그는 자꾸 현실을 초월하려는 방법을 찾으러 애쓴다 이때 보디는 라슬로 모호이너지의 성취를 이끌어들이고 있다. 모호이너지는 초기 멀티미디..

신성한 나무의 씨앗 [دانه‌ی انجیر معابد / The Seed of the Sacred Fig] (2024)

모하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고 팝콘을 사 들고 갈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긴 러닝타임, 감독이 (자파르 파나히 근작들처럼) 몰래 영화를 만들어야 했고 고국을 떠야 했다는 사실, 주연인 여자 배우 소가 히잡을 벗고 정부를 비판하는 비디오를 찍었다가 감옥을 갔다 왔고 또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2022년 이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루고 있는 정치 영화라는 점을 알면 경건하고 숙연하게 자리에 앉아서 화면을 응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후반부는 그 점에서 당혹스러운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화면 위에 흘러가는 상황은 카체이스와 추격, 총격이고 샷들의 장력은 장르 영화적 긴장을 부추긴다. 등장인물들이 맥락적으로 매우 정치적이라..

흔적과 초월로서의 디지털 멜랑콜리 모험 영화: 긴츠 질발로디스의 [플로우]와 미겔 고메스의 [그랜드 투어]를 중심으로

영화 역사에서 큰 변화가 몇 차례 있었다고 가정해보면 아마도 가장 최근에 있었던 큰 격변은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을 들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과 컴퓨터가 영화 제작 과정에 포함되면서, 필름이 현실의 무언가를 포착한다는 개념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필름 없이도 컴퓨터 속 데이터를 통해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역시 등장했다. 손 그림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만든 3D 모델링을 활용하는 풀 CG 3D 애니메이션은 명백히 컴퓨터로만 가능한 영상물이었다. [토이 스토리]는 그 점에서 산업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영상의 개념에 질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실사 영화에서도 디지털은 유물론적인 기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카메라들은 점점 더 소형화되어, 프리..

2024년 12월 3일 10시 27분 이후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2016.11.29 - [I'm Not There/생각] - 20161126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2024년 12월 3일 10시 27분 윤석열 내란수고의 계엄령 선포 이후,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추운 거리로 나섰고 촛불과 응원봉, 깃발을 들었다.그렇기에 새해인 2025년 대한민국은 좀 더 밝은 곳이 되리라. *2024년 12월 29일, 그날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당나귀 EO [EO] (2022)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당나귀 EO〉는 번쩍거리는 붉은 조명 아래에 있는 두 피사체에서 시작한다. 움직이는 것은 사람 카산드라이며 엎어져 움직이지 않는 것은 서커스 당나귀 EO다. 카산드라는 당나귀에서 인공호흡을 하듯 숨을 불어넣는 행동을 하고, 그 순간 EO는 되살아나는 척 연기한다. 붉은 조명이 꺼지고 관중들이 환호한다. 다시 붉은 조명으로 점멸하고, 저속 촬영된 샷에서 카산드라는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그다음 샷에서 EO는 가만히 있지만, 카메라는 EO 주변을 회전하고 마침내 EO의 얼굴이 좌우로 반복해 흔들리는 장면을 포착한다. 이 오프닝에서 스콜리모프스키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당나귀라는 동물을 영화적 주체로 삼을 수 있을까? 그저 감독인 자신이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을 통해 영화적 주..

파벨만스 [The Fablemans] (2022)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는 지금껏 경력에서 암시로 머물렀던 영역에 성큼 들어선다. 바로 자신의 ‘가족사’다. 스필버그는 지금껏 가족 이야기를 다뤄왔지만, 정작 자기 가족으로 영화로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스필버그의 복잡한 가정사에 대한 한 단면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스필버그는 기본적으로 가족 간의 정에 대해 호의적이고, 혈육 가족과 유사 가족이 제공하는 안정적인 해피 엔딩으로 인도하는 감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간의 불화와 불안정한 관계에 대해 파헤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스필버그가 가족애를 얘기할수록 거기엔 어떤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순수한 나머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모성애의 갈구와 좌절, 충돌과 염원을 다룬 [A.I],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