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단상

미완의 우주에서 온 빛과 색채, 형상의 숙명론: 가보르 보디의 영화 세계에 대한 잡문

giantroot2025. 10. 8. 04:40

1970년대 헝가리 영화 감독 가보르 보디는 헝가리 영화사의 어떤 저주와도 같은 이름이다. 그는 한창 나이인 30대 말에 의문사했다. 보디 본인은 자신의 영화를 우주적인 것과 연관지어서 얘기했는데, 그 말을 따르자면 그가 사망한 순간, 그의 우주는 그 시점부터 멈춰섰고 다시는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3편의 극영화와 그보다 많은 비디오 아트와 단편을 보고 가보르 보디가 상상했던 우주의 총체성을 가늠해야 한다. 우선 우주적이라는 설명에도 알 수 있듯이,  보디는 영화의 몸통인 필름이 현실에 종속된 매체라는 믿음이 없다. 초월하지 않는 현실은 우주보다 대지에 가깝기에, 그는 자꾸 현실을 초월하려는 방법을 찾으러 애쓴다

 

이때 보디는 라슬로 모호이너지의 성취를 이끌어들이고 있다. 모호이너지는 초기 멀티미디어 예술가로서, [회화, 사진, 영화]라는 저서에서 카메라는 최첨단 기술의 총아가 빛에 기반한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열였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눈을 초월한 곳, 조작 가능한 이미지가 지닌 가능성은 모호이너지가 사진에 주목했던 이유였다. 모호이너지는 사진을 옹호하는 이런 이론을 주창하면서 자신의 사진/영화 작업에서 감광면을 이용한 이미지, 다양한 추상적인 오브제 배치 등 사진 이미지가 포착한 형상에 파격을 가하면서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했다. 

모호이너지는 이런 논지를 펼치면서 인간은 자연현상과 인간 정신의 표상을 포착하길 원했다고 지적한다. 보디가 멀티미디어 예술가로서 노선을 정하며 모호이너지에 영향을 받았다면 동적 이미지가 품고 있는 새로운 도구 빛, 나아가 조작의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매체의 정체성을 넘나드려는 연출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보르 보디가 극영화와 비디오 아트 두 영역에서 활동한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보디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두 개의 몸이 필요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방가르드 영화/비디오 아트에서 보디는 모호이너지의 방법론과 미학을 시대적 변화에 맞춰 재해석하고 심화하는데 주력했다. 이 아방가르드 노선을 따르는 초기작 [네 개의 바가텔]에서 후기작 [오컬트 철학] 이 두 작품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동시에 닮아있다. 왜냐하면 영화 이전의 역사적인 이미지를 끌어들여, 이미지의 조작성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빛과 색채의 개념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고 감각에 도취되어 있는지의 차이일 뿐이다.

반대로 극영화에서 보디는 좀 더 복잡하게 이 방법론을 추구했다. 간단히 말해 보디는 극영화를 만들어가면서 한 가지 명제에 도전한다. 빛과 색채, 형상로 대표되는 자연 현상들이 필름 속에서 벌이는 순수 영화적인 희롱과 경외감이 어떻게 극영화의 서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다. 보디는 이런 도전을 통해 서사를 체감하는 감각을 뒤틀어갔으며, 궁극적으로는 서사를 따라 영화적 요소를 감각하는 관객의 감정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주목했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초현실주의지만, 보디의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에는 해방감보다는 기묘한 숙명론이 있다. 이 현실을 초탈해도 어떤 극점에 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끝내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막막함. 그래서 보디가 선호하는 인물들은 정신의 고결함 내지는 위대한 야심을 추구하거나 시간과 존재를 초월하려고 하지만, 끝내 자신이 속한 역사와 사회의 맥락과 벽에 좌절하는 인물들이다. [아메리칸의 엽서]에서 조국에서 추방된 군인들, [나르키소스와 프시케]의 섹스에 솔직한 로마니 여성 귀족 시인과 자신의 대작을 이해받지 못하는 평민 시인, [개의 밤노래]의 펑크 문화 향유자와 가톨릭 신부 간의 기묘한 혼종 정체성을 지니고 산골에 도착한 사기꾼 남자가 그렇다.   

이때 이 인물들 정신이 뿌리박아야할 세상은 예술가의 조작임을 드러내는 빛의 유희와 추상적으로 구성된 이미지들 속에 명료성을 잃고 사라지거나 뒤틀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갑자기 나타나는 빛이나 파편적인 이미지에 끌리거나 잠식된 모습을 보여준다. 보디 영화에 색채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빛의 감각은 단순히 음영의 수준을 뛰어넘어 명백히 원색적으로 강렬해지며,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감각과 분위기는 안료적이라기 보다는 철저히 빛에 기반하고 있기에, 상술했던 모호이너지의 관점에서 되새길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보디 극영화 속 인물들은 빛과 색채의 희롱 내지는 아름다움을 만나 취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 그것이 인물들의 소망이자 욕망이다. 하지만 그런 초월적인 도취와 깨달음은 역사와 사회의 개입으로 갑작스레 중단되고 패배한다.

 

이때 그들은 [나르키소스와 프시케] 한 인물의 빈정거림처럼 패배에 대한 보상으로 역사를 고소해야하지만, 역사는 고소될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패배를 인정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끊임없이 도망다녀야만 한다. 보디는 역사와 시공간이 동적인 이미지 속 예술가의 손에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덧없고 무상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한 개인의 사상과 결과물이 변화해버릴 정도로 강력하고 유혹적이며, 동시에 파괴적인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작품을 내놓을수록 장뤽 고다르가 그랬듯이, 모든 영상적 요소가 가벼워지고 흐릿해지며, 어디든 카메라를 놓을 수 있는 비디오 이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화에 들여오기 시작한다. 빛과 색채, 형상을 향한 도취와 깨달음 추구가 필름적인 것에 좌절했기에 전혀 다르게 형상화해내는 새로운 매개체가 필요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보디는 과거의 잔재와 현재의 억압이 틈입함에도 기어이 바로 이 순간의 펑크 정신이 십자가를 떠나가던 [개의 밤노래]를 제외하고는 과거 내지는 역사에서 출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때 귀환은 미학적인 전쟁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보디는 역사의 재현 강박성을 풀고, 빛-편집으로 종종 지칭되곤 했던 후처리적인 요소들로, 시대가 요구할법한 조건에 기반한 이미지나 ([아메리카의 엽서]), 반대로 완전히 모든 걸 초월해버리는 빛과 이미지를 창출하고 조작해 ([나르키소스와 프시케], [개의 밤노래]) 인간이 품고 있는 사상, 나아가 야심으로 이뤄진 이미지의 명멸과 흐름을 그려내고자 했다. 보디가 모호이너지보다 미학적으로 더 밀고 나갔던 부분이 있다면, 영화 이전의 예술이 지닌 역사성 내지는 이미지적인 특질을 끌어들여 재인식하고, 그 특질을 이용해 서사가 다가오는 감각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작품을 내놓을수록 그 확장은 서서히 ‘비디오’라는 미래적인 이미지에 담긴 에너지를 상상하고 표현하는데 이르렀다. 불행히도 이런 실험은 때이른 죽음으로 미완으로 끝났다. 보디는 어쩌면 동료였던 졸탄 후사리크가 [촌트바리]에서 예견했듯이, 보디 역시 자신의 영화들 속에 담긴 도취와 덧없음의 숙명론에서 미완으로 끝날 자신의 삶과 예술을 예견했던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