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수의 《부모 바보》는 카모플라쥬 내지는 마트료시카처럼 자신의 서사와 정체성을 위장한다. 가족 간 문제와 복지의 사각지대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제재와 도입부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 영화만의 특수성을 지녔다고는 보기 힘들다. 오히려 다르덴 형제나 켄 로치 영향 아래 있는 한국 사회파 영화들이 이미 많이 다뤄왔던 소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바보》는 이런 사회 문제를 직설적인 이미지와 맥락으로 구체화해 어떤 해결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완강히 거부한다. 우리가 《부모 바보》를 보면서 생각해야 할 지점은, 이정홍의 《괴인》이 그렇듯이 차라리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뿜어내는 낯섦과 불쾌함, 불만족이 서사의 안정성과 영화 구조를 뒤흔들어놓는 과정과 결과다. 《부모 바보》는 그 점에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낯섦과 불쾌함이 어떤 식으로 사회 문제로 형상화되고 기괴하게 뻗어나가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영화다.
《부모 바보》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영화다. 이종수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을 먼저 설정한 후, 그 인물들이 품고 있는 불가해함과 당혹감을 포용하고 원인을 찾아보려는 선의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인물들이 '왜' 이러는지 밝히는 게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부모 바보》의 미스터리는 그렇게까지 정교하거나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부모 바보》의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고도로 장르화된 존재가 아니며, 이종수 역시 그 비밀로 장르적인 유희를 벌일 생각이 없기에 하나씩 정석적으로 공개해 나간다. 《부모 바보》의 미스터리는 양파 껍질처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벗겨내 영화 속 감정과 긴장을 증폭하는 역할로서 작동한다.
하지만 작동 과정이 상당히 입체적이기 때문에 《부모 바보》는 조금은 독특한 감정선을 띄게 된다. 일단 미스터리에 접근해 해결하려는 탐정이자 주인공인 사회복지사 진현의 선의부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숙 생활을 하는 사회복지 요원 영진과 수급을 못 받으며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 순례에게 주는 그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며, 종종 무의식적인 우월감마저 종종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작 그 역시 부조리한 체계에 어쩔 수 없이 속해 있다는 게 드러난다. 그는 제일 적확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있어 보이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진 못하며 자신 역시 불만족에 빠져있다. 진현의 불만족은 2020년대 안정적이지만 공허하게 살아가는 한국 청춘이 대다수 겪는 불만족과 무력함의 대변이기도 하다.
《부모 바보》의 불편함은 어떤 근본적인 불능과 무력감에서 나온다.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은 당장의 무언가만을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갑갑한 상태에 빠져있다. 그 상태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에게 손톱을 세워대고 상처를 준다. 그런데 그 불능과 무력감이 서사 내에서 상처 주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게 구조화되고 확장되어 영화 전반의 심리와 분위기를 옥죄어간다는 점에서, 여타 한국 사회파 독립 영화들의 선명성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이 모호한 분위기를 질문으로 구체화하려면 이 영화의 제목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 바보》라는 제목엔, 부모를 원망하는 듯한 또는 놀리는 듯한 음습한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다. 그 음습한 감정을 손 글씨로 체화한 타이틀 로고가 스크린을 덮어버리는 타이틀 시퀀스는 그 점에서 명확하고 세련되게 디자인되었다. 단어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퍼져나가듯 잠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원망과 달리 기묘하게도 《부모 바보》엔 실제 부모가 스크린상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아들을 버린 영진 아버지는 영화 내내 나오지 않고, 진현의 부모는 추상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부모의 위치에 있는 순례는 사실 양어머니에다 양아들과는 전화로만 관계를 나누고 그마저도 붕괴한다. 이종수는 스크린상에서 부모의 물질적 부재를 영화의 중심축으로 삼아버리면서 왜 '부모가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데 부모 바보라는 제목이 이들을 대표해 버렸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종수가 생각하는 부모는 차라리 아이와 어른의 관계다. 하지만, 이 아이와 어른은 혈육보다는 사회적 관계다. 이 단계에서 이종수는 딱히 그 관계성을 애매모호하게 둘러댈 생각이 없다. 직장 상사들과 진현, 영진 간의 내리갈굼에서 《부모 바보》는 명징하게 이게 한국 사회의 나이 차에 기반한 서열과 권력의 문제라는 걸 확실히 한다. 한마디로 《부모 바보》는 상징적 가족으로 은유 되곤 하는 사회적 관계 속 내리갈굼과 무관심의 구조화야말로 불능과 무력감의 부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부모 바보》가 데뷔작이라는 걸 감안하고 볼 때 비범한 부분이 하나 있다. 한마디로 이종수는 이것들을 서사로 풀어내는데만 그치지 않고, 하나의 샷으로서 잡히지 않는 총체적인 불만과 부조리를 결정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 바보》는 이 단계에서 샷과 몽타주의 반복과 더불어 시네마와 비디오 간의 질감 문제를 은밀하게 끌어들이는 영화다. 《부모 바보》의 영화로서 샷들은 상황의 변화 앞에서도 반복적인 경향이 크다. 어떤 지점에서는 조너선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보였던 엄정하고 기계적인 카메라-눈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모 바보》의 단조롭게 반복되는, 고정된 풀 샷 위주의 구도는 불편함을 자극한다. 진현이 고정된 채 누리는 자유와 안정이 상징적인 부모들의 불만과 짜증, 은밀한 수동 공격, 자유와 안정 아래의 허상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현이 도움을 주는 장면들 역시 고정된 채 반복되는 샷에서 서서히 불편해진다. 대체로 장면들은 투 샷으로 이뤄져 있는데, 영진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며 진현은 도움을 줘야 할 타자에게 시선을 안정되게 주지 못한다. 가끔 영화는 한 사람의 푸념을 길게 털어놓으면서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이탈하는 순간을, 치기 어린 특수효과로 처리하기도 한다. 《부모 바보》의 구도와 편집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 앞에 놓인 무기력함을 얘기한다. 이미 영화라는 체계가 정해져 있고 인물들 역시 거기에 복속하기에 체계에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 이때 이종수가 정한 캐릭터는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성취했거나 수행하길 요구받는 사회적 위치나 다름없으며 거기에 속하는 순간 초인적인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 무기력함 앞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이미지는 영진이 비디오카메라가 포착한 샷들이다. 이 비디오카메라가 영진의 영화학과 동기 남편이 일상의 버거움 때문에 포기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비디오카메라의 영화 속 위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산층 가정의 홈비디오를 담아야 할 기기가 홈에서 벗어나는 순간 샷들은 일상 내지는 현실과 한없이 추상적으로 변모해 멀어져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결코 영화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영진을 못마땅하게 보는 '부모'들은 영진의 비디오카메라를 성범죄 도구로 의심하고,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던 진현은 그 이미지를 보지 못한다. 그렇게 고립된 비디오 이미지는 영화 내내 해소되지 않고 뚝 하고 끊긴다.
《부모 바보》의 마지막은 그 점에서 매우 냉소적이다. 순례는 부모로서 실패를 대리 아들인 진현에게 부모로서 쏟아내고 억지 화해를 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해소한다. 하지만 진현은 그렇게 다친 마음을 더 이상 영진에게 풀지 못한 채 멍하니 남겨진다. 미스터리의 전모는 대략 밝혀지지만, 완전한 해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말에서 보이는 이종수의 냉소는 정말로 냉기가 올라온다. 진현의 집에서 영진이 비디오로 찍은 의자 다리 아래 깔린 얼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때 얼음은 녹고 있으며, 의자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비디오 이미지조차 부자유스러움과 위태로움을 보여주며 끝나는 《부모 바보》는 그 점에서 가족 관계의 실패와 불편함, 불만족을 실제 가족 없이 이미지들의 충돌과 불협화음으로 보여주는 이상하게 흥미로운 영화다.
'Deeper Into Movie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성한 나무의 씨앗 [دانهی انجیر معابد / The Seed of the Sacred Fig] (2024) (0) | 2025.07.20 |
|---|---|
| 당나귀 EO [EO] (2022) (0) | 2024.12.31 |
| 파벨만스 [The Fablemans] (2022) (1) | 2023.12.10 |
| TAR 타르 [Tár] (2022) (0) | 2023.07.10 |
| 포제서 [Possessor] (2020) (0) | 2023.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