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221

무뢰한 [The Shameless] (2015)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익숙한 구조에서 출발한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쫓다가 범죄자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 형사, 범죄자, 범죄자 애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지 같은 [무뢰한]를 이루고 있는 익숙한 구조에 대해 구구절절히 늘어놓는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고 그 디테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드러나는가이다. 이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무뢰한]은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액션 영화가 될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무거운 분위기의 멜로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을 통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무뢰한]이 장르를 통해 설정한 인물들의 동기는 이렇다: 주인공인 정재곤에..

가을이 오다 [秋立ちぬ / The Approach of Autumn] (1960)

[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미키오 필모그래피를 봐도 매우 희귀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성인 남녀간의 애정이라던가 여성, 특히 게이샤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간 나루세 미키오의 작풍과 달리 어린 아이, 그것도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나쁜 놈일수록 더 잘 잔다]랑 동시상영했다는 점, 이후 나루세가 잘 다루던 게이샤나 성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다시 이어진걸 보면, 나루세 자신도 이 세계가 자신이 계속 머물 세계는 아니라는건 인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가을이 오다]는 나루세 커리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을이 오다]의 각본은 카사하라 료조가 쓴 [도회지의 아이]를 원작으로 나루세 자신이 개작해 만들어졌다. 이야기는 ..

반 고흐 [Van Gogh] (1991)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는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첫 피알라의 영화다. 196-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대 누벨바그하고는 약간 한 발자국 떨어져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든 모리스 피알라는 1989년 [사탄의 태양 아래서]로 프랑스 영화계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온 이단아였다. 그가 [사탄의 태양 아래서] 직후 만든 [반 고흐]는 오베르라는 마을에 정착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빈센트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시절이지만, 피알라는 이 시절을 멜로드라마적으로 과잉해서 그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영화엔 스타 배우라고 할만한 캐스팅도 드러나지 않으며, 1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장면 없이 반 고흐의 후반부 인생을 다룬다.영화의 시작은 푸른 캔버..

디판 [Dheepan] (2015)

2009/11/05 - [Deeper Into Movie/리뷰] -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2013/05/21 - [Deeper Into Movie/리뷰] - 러스트 앤 본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 (2012)2014/02/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 / The Beat That My Heart Skipped] (2005)스리랑카 내전과 타밀 타이거라는 반군 단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의 도입부에서 어떤 절망감을 읽어내긴 어렵지 않다. 자크 오디아르는 저널리즘적인 설명은 일부러 배제한 ..

인정 종이풍선 [人情紙風船 / Humanity and Paper Balloons] (1937)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은 일본 외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원래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본 영화들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영역이긴 하지만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이 알려지지 않은데에는 역사적 비극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은 젊은 나이에 중일전쟁 때문에 징집되었고, 전사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27편의 영화 중 지금 볼 수 있는 건 3편뿐이다. [인정 종이풍선]은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이 마지막으로 남긴 사무라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시대극 영화다. 야마나카 사다오는 이 영화 이전에도 외팔이 무사 탄게 사젠을 주인공으로 삼은 [백만냥의 항아리]라는 사무라이 영화를 만든 바 있다. 그리고 사라진 영화들 중에서도 사무라이 영화는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믹했던 전작과 달리 [인정 ..

이민자 [The Immigrant] (2013)

2013/08/08 - [Deeper Into Movie/리뷰] - 리틀 오데사 [Little Odessa] (1994) 2014/02/23 - [Deeper Into Movie/리뷰] - 투 러버스 [Two Lovers] (2008) 제임스 그레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이 범죄물을 만든 것은 단지 투자가 잘 되서였다고 밝힌 바가 있다. 확실히 그는 범죄물을 만들때에도 어떤 멜로드라마적인 중력으로 인물들을 축축히 젖어들게 하는데 훨씬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족을 떠난 큰아들은 범죄자로 다시 돌아와 화해를 시도하지만 모든 걸 잃고 홀로 남겨지거나 ([리틀 오데사]), 아버지를 고발하거나 ([더 야드]) 잃고 ([위 오운 더 나잇]) 범죄 세계의 고리를 끊었던 주인공에서 우리는 그레이만의 쓸쓸한 멜로드라..

피 [O Sangue / The Blood] (1989)

2014/05/17 - [Deeper Into Movie/리뷰] - 뼈 [Ossos / Bone] (1997)많은 이들이 칭찬했듯이 페드로 코스타의 [피]의 도입부는 간결하고 인상적이다. 천둥 소리와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두 사람. 떠나지 말라는 청년의 간청에 불구하고 늙은 남자는 청년의 뺨을 때린 뒤, 어두운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다. 분명 로케이션 촬영임에도 이 장면은 마치 매트 페인팅한 배경을 배우 뒤에다 세워놓고 찍은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인공적이면서도 어떤 화려함이 일체 배제된 이 장면에서 페드로 코스타는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놓기보다는 재구성할 의도로 이 영화를 찍었다는걸 선언한다.[피]의 세계는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자주 다루던 '아버지가 부재한 세계의 아이들'에 대한 얘기다. 아..

더 홈즈맨 [The Homesman] (2014)

(누설이 있습니다.) 배우 토미 리 존스의 감독 생활은 현재까지 서부극의 영역에 천착해 있다. 엘머 크레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한 감독 데뷔작 [라스트 카우보이]는 늙어가는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였고, 감독으로써 재능을 확인시켜준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은 [바벨]과 [21그램]으로 유명한 기예르모 아리아가가 써내리고 죽은 멕시코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텍사스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현대에 이식된 서부극이었다. 본인이 텍사스 출신이기도 한 토미 리 존슨은 자신의 연출작에서도 그 강건하면서도 내적으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사는 '미국인'의 전형을 연기해왔다. 그 점에서 [더 홈즈맨]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탕아와 같은 영화다. 글렌던 스와트와웃의 동명 소설을 ..

러브 앤 머시 [Love & Mercy] (2014)

러브 앤 머시 (2015)Love & Mercy 8.4감독빌 포래드출연존 쿠색, 폴 다노, 엘리자베스 뱅크스, 폴 지아마티, 제이크 아벨정보드라마 | 미국 | 121 분 | 2015-07-30 한 사람의 생을 다루는 전기 영화 같은 경우 보통 여러가지 방향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관계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감독의 필터를 통해 해석되는 스타일의 영화. 전자 같은 경우엔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전기 영화들이 있고 후자 같은 경우엔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나 거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가 있을것이다. 일단 빌 포래드 감독의 브라이언 윌슨 전기 영화 [러브 앤 머시]는 일단은 전자에 속하는 영화다. 보통 전기 영화는 몇몇 시간대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보여주거나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피의 복수 [復仇 / Vengeance] (2009)

피의 복수 (2014)Vengeance 5.5감독두기봉출연조니 할리데이, 임달화, 황추생, 실비 테스튀, 임가동정보액션, 범죄 | 홍콩, 프랑스 | 108 분 | 2014-04-24 두기봉의 [피의 복수]를 보게 된 관객들은 기시감이 든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였는데, 라고. 홍콩 영화니깐 홍콩 느와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윽고 자니 홀리데이가 연기한 코스텔로가 등장하면서 두기봉은 그 기시감의 정체를 분명히 한다. 두기봉은 [피의 복수]를 통해 홍콩 느와르와 장 피에르 멜빌를 비롯한 프렌치 느와르의 세계로 올라가겠다고 선언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피의 복수]는 [더 울버린]처럼 서양인이 동양에서 고생하는 하부 장르에 속해 있지만, [더 울버린]과 달리 두기봉은 처음부터 자신이 그 장르에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