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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복수 [復仇 / Vengeance] (2009)

giantroot2015. 8. 19. 10:30


피의 복수 (2014)

Vengeance 
5.5
감독
두기봉
출연
조니 할리데이, 임달화, 황추생, 실비 테스튀, 임가동
정보
액션, 범죄 | 홍콩, 프랑스 | 108 분 | 2014-04-24

두기봉의 [피의 복수]를 보게 된 관객들은 기시감이 든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였는데, 라고. 홍콩 영화니깐 홍콩 느와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윽고 자니 홀리데이가 연기한 코스텔로가 등장하면서 두기봉은 그 기시감의 정체를 분명히 한다. 두기봉은 [피의 복수]를 통해 홍콩 느와르와 장 피에르 멜빌를 비롯한 프렌치 느와르의 세계로 올라가겠다고 선언한다. 내용으로 보자면 [피의 복수]는 [더 울버린]처럼 서양인이 동양에서 고생하는 하부 장르에 속해 있지만, [더 울버린]과 달리 두기봉은 처음부터 자신이 그 장르에 속해있다는걸 명백히하고 그걸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피의 복수]를 진지하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것은 두기봉이 [피의 복수]에서 장르를 구현하는 방식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먼저 두기봉과 각본가 위가휘는 코스텔로에게 기억 상실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코스텔로를 돕는 홍콩인 동료들 콰이, 페이 록, 추가 복수의 대상 아래에서 일하는 부하라고 정해놓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복수엔 묘한 서스펜스가 작용한다. 두기봉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1. 코스텔로가 기억을 잃기 전에 복수를 행할수 있는가? 2. 콰이 일행은 복수 대상인 조지 펑에게 충성을 다할 것인가?

2.에 대해서는 두기봉은 망설임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두기봉이 암흑 세계를 그려내는 법칙은 명확하다. 아무리 암흑가에 있다고 해도, 그들의 보스 조지 펑은 암흑가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잘못을 저질러버렸다. 성문화된 법이 아니라 어떤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부하 관계라도 그들은 서로 전쟁을 치르게 된다. 반대로 코스텔로와의 관계는 처음엔 분명 계약으로 시작했지만 뒤로 갈수록 그 관계가 훨씬 친밀한 쪽으로 변해간다. 두기봉은 분명히 이 부분에서 무수히 명멸했던 무협지에 등장하는 강호의 도를 논하고 있다. 조지 펑은 한마디로 강호의 도를 어지럽힌 사람이기에 가까워도 처단해야 하며, 반대로 외부인이자 타자인 코스텔로의 복수는 그 강호의 도에 따라 정당화된다.

초반부 코스텔로가 콰이 일행이 청부살인을 하다가 만나고 묵인하는 장면은 어찌보면 그 강호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코스텔로는 그 낯선 세계에 대해 예의를 표했기 때문에 (물론 그가 그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자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강호의 세계에 존중받을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일본의 무사도에 매혹되어 있었다는걸 숨김없이 보여주면서도 인물 관계와 무사도를 수행하는 방법론 자체는 외부인이 가진 현대적인 도덕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던 [더 울버린]과 달리 [피의 복수]의 세계에 적용되는 윤리는 내부인들에게 이미 익숙한 가치고 외부인들도 인식하고 따라야하는 곳이다. 현대적인 법이나 계약관계조차 그 윤리에서 고개를 숙인다. (경찰들이 초반부에 등장했다가 존재감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두기봉은 익숙하게 지나쳤던 장르를 관객들이 다시 재점검하도록 이야기와 미장센을 구성한다.  코스텔로는 그 점에서 복수의 주체면서 동시에 그 세계의 관찰자/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강호의 세계가 현대적인 법률 문제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 코스텔로와 홍콩인 동료들이 코스텔로 사위와 손자들을 죽인 해결사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두기봉은 이상할 정도로 정중하다. 두기봉은 해결사에게도 캐릭터와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써 이 강호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그렇게 서로 당위성을 지닌 두 집단 간의 긴장감을 그려낸다. 요컨데 무림 고수들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려한 총격 장면은 그런 무림 고수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1.이 던진 질문을 상기해보자. 이 경우 문제는 미묘해진다. 두기봉은 계속 코스텔로의 복수가 이 기억상실로 망가질거라는걸 분명히 상기시키면서 전개하다가 절반 정도 왔을때 코스텔로의 기억을 빼앗아버린다. 이때 [피의 복수]는 단순히 복수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억와 죽음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자가 복수를 잃어버렸다면, 남은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로 돌아가는가? 두기봉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코스텔로는 잠시 주역에서 물러나게 되고, 콰이, 페이 록, 추가 복수의 주체로 올라서게 된다. 그런데  콰이, 페이 록, 추가 복수를 하게 된 이유는 2.하고 밀접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들은 계약준수를 얘기하지 않는다. 코스텔로가 가지고 있던 유지를 그들이 대신 이어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마치 코스텔로가 죽은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복수를 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죽고 만다. 

남겨진 코스텔로가 마치 어린 아이 같은 상태로 묘사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바닷가의 아이들이 모여있는 식당에서 천진난만하게 놀면서 밥을 먹는 코스텔로의 모습은 영화의 장르마저 달라진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콰이 일당이 죽고 난 뒤 영화는 다시 복수로 돌아가게 된다. 이때 두기봉은 코스텔로가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 코스텔로를 찾아오는 환상 장면을 풀 샷으로 집어넣는데, 이 장면은 영화 내내 이어졌던 비정한 전개와 달리 유달리 시적이고 우울한 로맨티시즘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외적으로 보면 이 유령들은 프렌츠 느와르와 홍콩 느와르에 대한 애정과 바램이 강력하게 들어가 있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정이야말로 [피의 복수]를 만드는 창작자 두기봉의 자세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아이들과 식당 주인의 도움을 받아 이뤄지는 코스텔로의 복수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세트 피스로 이뤄져 있다. 스티커와 좁은 골목, 극명한 명암으로 이뤄진 조명 설계 등 코스텔로가 복수하는 장면은 쓰레기 더미를 굴려가지고 싸우는 콰이 일행의 총격전과 더불어 두기봉 특유의 스타일이 만개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두기봉은 페킨파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걸 명백히 한다. 두기봉은 복수가 코스텔로에서, 콰이 일당으로, 다시 아이들과 식당 주인들의 도움을 받은 코스텔로로 넘어가는 과정을 구조화하면서 독특한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복수가 끝난 뒤 영화는 다시 그 동심과 평화의 세계에 코스텔로를 배치하는걸로 그 운동을 마무리짓는다. 살아남았지만 친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코스텔로는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되고 평안을 찾게 된다. 혈연으로 이어진 친가족 대신 비혈연적이고 수평적인 트랜스내셔널리즘적인 대안가족에 대한 긍정인가? 두기봉은 이런 의문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거기다가 배치하는걸로 만족할 뿐이다.

[피의 복수]는 두기봉의 걸작이라고 하기엔 종종 과잉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스패로우]처럼 하늘하늘 가벼우면서도 할말 다 하는 영화는 아니고 두기봉 자신의 야망과 덕심이 제대로 폭주한 영화라고 할까. 하지만 두기봉은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도 홍콩 내 흥행 영화를 만들어내는 자의식이라곤 거의 없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피의 복수]에 보이는 독특한 구조와 이미지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두기봉이 만들어내는 자의식 없는 흥행 영화들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걸 알 수 있다. 단지 그는 그 자의식 없는 흥행 영화들을 보면서 놓칠수 있는 의미들과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배치해 관객들이 이 장르를 즐기면서도 이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