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호텔방의 문이 열려 있다. 사노는 그 문을 닫지 않는다. 닫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기다린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영화는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안다.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 순간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패닝한다. 프레임이 벽을 지나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은 같은 방이되 같은 시간이 아니다. 현재 시공간엔 존재할 리 없는 나기가 거기 도착해 있다. 사노의 현재가 끝난 자리에서 나기의 과거가 현재와 접 붙듯이 시작된다. 컷도, 디졸브도, 플래시백을 알리는 명백한 문법적 신호도 없이. 「슈퍼 해피 포에버」에서 죽은 자는 문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대신 카메라가 들인다.
이 패닝은 영화의 제목이 참이 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사실 영화에서 '슈퍼 해피 포에버'라는 약속은 영화의 현재 어디에서도 지켜지지 않는다. 사노가 돌아온 휴양지는 폐쇄를 앞둔 호텔과 쓰러지는 노인, 예정된 소멸들로 채워져 있고, 동시성과 우연과 기적을 설파하는 집단은 등장하자마자 사노의 분노와 냉소에 방치된다. 이 영화에서 기적은 믿음의 대상이 되기 전에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마침내 간호사인 미야타조차 지쳐서 떠났을 때 사노는 찾아오는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이가라시 고헤이는 냉소와 절망에서 영화를 멈추지 않는다. 대신 서사에서 기적을 살려내기보다는, 비서사적인 요소인 카메라 패닝으로 살려내려고 한다. 이 글이 추적하려는 것은 그 이월의 경로다. 문이라는 공간의 경첩, 노래라는 시간의 경첩, 그리고 그 둘을 한 프레임 안에서 수행하는 패닝이라는 동작.
그 경로를 따라가기 전에, 이 영화가 작동하는 방식부터 말해야 한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음악적인 리듬과 구조로 멜랑콜리를 드러내는 영화다. 물론 작중 인물들이 부르는 ‘Beyond the Sea’가 직접적인 라이트 모티프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구조의 층위에서 음악적이고자 한다. 우선 이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규칙과 예외로서 작동하는 영화다. 정확히는 고정이 규칙이고 운동이 예외다. 「슈퍼 해피 포에버」의 샷은 대체로 고정되어 있다. 심지어 ‘슈퍼 해피 포에버’ 단원들과 사노가 대화하면서, 사노가 아내를 잃은 상처를 드러내는 장면처럼 감정적이어야 할 순간에도 이가라시 고헤이는 고정된 풀 숏으로 길게 관찰할 뿐이다.
이가라시 고헤이는 스승 스와 노부히로가 그랬듯이 감정을 사건으로 만들기보다 공기로 머물게 한다. 그렇기에 고헤이는 주로 모두 (혹은 단둘)를 보여줄 수 있는 구도에 머문다. 거리 유지가 이 영화의 윤리이자 박자라면, 그 박자를 깨는 운동 - 사노의 호텔방을 가로지르던 카메라 패닝 - 만이 규칙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에 닿는다. 고정이 애도의 거리라면 패닝은 그 거리를 위반하는 멜랑콜리의 동작이다. 그리고 그 멜랑콜리의 동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자가 화면으로 틈입하고 생기가 돋는다. 이가라시 고헤이는 개별 요소의 반복과 변주로 잃어버린 사노의 현재와 설렜던 나기의 과거를 공명시키고자 한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멜랑콜리를 주제로 다루는 게 아니라 구조로 앓는 영화다. 그리고 그런 멜랑콜리 구조의 결정체인 빨간 모자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작은 잔향과 리듬을 남긴다.
하지만 이 앓음은 이중적이다. 사노는 자신의 멜랑콜리에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얻지 못함에 머물지 않는다. 주관적인 시점에서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설정하면서 이상한 가능성을 불어넣는다. 영화 후반부 사노와 나기의 시간과 시선이 매듭지어졌을 때,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영역과 시선으로 이동한다. 바로 과거 나기가 얘기를 나눴던 베트남인 호텔 종업원 안이다. 영화의 결말은 처음 등장했던 사노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철저히 안의 시점으로 따라가고 마무리 짓는다.
흥미로운 점은 멜랑콜리와 자기연민의 이중성을 드러냈던 사노, 닫혀버린 과거로서 애틋하게 다뤄졌던 나기랑 달리 안이라는 캐릭터는 어느 순간에도 속하지 않고 일상적인 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안은 바캉스 영화에서 바캉스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캐릭터이다. 심지어 ‘Beyond the Sea’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안은 바캉스를 온 여행객이 아닌, 호텔 종업원이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같은 노래가 사노와 나기에게는 과거의 설렘과 현재의 멜랑콜리를, 안에게는 노동의 현재를 가리킨다. 'Beyond the Sea'는 시간의 경첩이면서 동시에 (사회경제적) 위치의 경첩이다.
하지만 이가라시 고헤이는 이미 사노의 시점에서 바캉스라는 상황과 배경을 소멸시킨 상태다. 그렇기에 안 역시 영화가 설정한 소멸에서 피해 갈 수 없다. 안 역시 좋은 호텔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남은 추억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가모노 조메이의 '호조키’에 등장하는 '흘러가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인용에서 얼핏 볼 수 있는, 사물의 덧없음과 유한함을 얘기하는 일본 전통 미학인 모노노아와레하고도 맞닿아있다. 하지만「슈퍼 해피 포에버」가 이런 감성을 다루는 법은 특이하다. ‘Beyond the Sea’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 인용과 동남아 여성 캐릭터로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슈퍼 해피 포에버」는 단순히 일본 전통 미학 구현을 넘어서 일본 바깥의 세상과 상황에서 일본 전통 미학은 어떻게 재현되는가라는 문제를 건드린다.
이때 고헤이는 미스터리 전개에 의외성을 도입한다. 논리적인 해결책이 아닌 시적 해결책인데 안이 그 모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안은 계속 모자를 쓰고 다닌다. 안은 그 모자를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모자가 안을 따라 베트남에 갔으리라 암시한다. 그렇게 모자를 쓴 안이 지금까지 넘을 수 없었던 차단막을 넘어가 바다 너머를 보면서 「슈퍼 해피 포에버」는 끝이 난다. 안의 결말은 그 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의 소멸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낙관적인 멜랑콜리가 가득하다.
이 결말에서 고헤이는 상실을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차원까지 승화시킨다. 일본인 남성의 개인적 상실이 자기기만과 고통 끝에 불분명한 끝으로 이어진다면, 베트남인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실은 일본인 여성의 부재한 존재를 이어받아 바다 너머 새로운 모험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슈퍼 해피 포에버」의 결말은 바캉스라는 상황과 상실의 멜랑콜리를 반복과 이중성의 구조로 다루면서, 모자의 모험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묻는다. 그 질문을 통해 고헤이는 간결한 방식으로 일본적 정서가 국경 밖에서도 울릴 수 있는가를 조용히 시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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