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마지막 국화 이야기 [殘菊物語 /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s] (1939)

giantroot2016. 7. 27. 00:40

*잔국물어

미조구치 겐지의 [마지막 국화 이야기]는 [우게츠 이야기]와 [산쇼다유] 시절로 대표되는 전후 미조구치 걸작들과 달리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마지막 국화 이야기]는 [기온의 자매]와 더불어 1920년대 중후반부터 감독 생활을 시작한 미조구치의 커리어가 어떤 정점에 달했다는걸 보여주는 영화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가 미조구치 영화를 생각할때 떠올립법한 사회적 인습에서 만들어지는 멜로드라마를 만끽할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마지막 국화 이야기]는 무라마츠 쇼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때는 메이지 시대. 도쿄 가부키 명문가 후예인 키쿠노스케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연기 실력은 형편없다. 본인도 내심 그걸 알기에 고민하던 와중, 동생의 유모인 오토쿠의 조언을 듣고 오토쿠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오토쿠는 신분상 키쿠노스케랑 어울릴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내쫓기게 되고, 키쿠노스케는 이에 집안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연기 실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로 무작정 오사카로 향해 오토쿠랑 살림을 차린다. 세월이 지나고 키쿠노스케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연기에 대한 애정을 잃게 되고 폐인처럼 살아가지만, 오토쿠는 끊임없는 내조를 한다. 그러던 중 오토쿠는 키쿠노스케 집안을 찾아게 되는데...

라는 내용은 사실 흔하디 흔한 예술가와 그를 내조하는 아내라는 평범한 멜로드라마적 세팅이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마지막 국화 이야기]의 뻔하디 뻔한 구조를 비웃을 것이다. 보나마나 마지막엔 비극적인 결말을 통한 카타르시스로 끝나겠지.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그런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전개로만 보자면 [마지막 국화 이야기]는 고풍스럽다 못해 구닥다리식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마지막 국화 이야기]를 보는 현대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감정을 표현하는데에서는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감정을 이입하기엔 미조구치의 카메라가 담는 '공간'과 '관계'가 먼저 인상깊게 들어온다고 할까. 미조구치는 영화 내내 신기할 정도로 배우 얼굴에 카메라를 자주 들이밀지 않는다. 심지어 들이미는 순간에도 미조구치는 이 컷이 무엇을 표현하고 다음 컷을 생각하고 있다는걸 명백히 보여준다. 오히려 미조구치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캐릭터들이 배치된 '공간'이다. 

이런 연출을 통해 만들어진,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오토쿠랑 키쿠노스케가 산책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장면이다. 미조구치의 엄격한 풀 샷과 롱테이크로만 이뤄진 이 장면은 오토쿠와 키쿠노스케의 평면적인 동선과 카메라가 일치하면서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쌓이는 과정을 한 컷만으로 설명해낸다. 또한 스승의 죽음 이후 밑바닥 극단에서라도 활동하기로 마음먹은 키쿠노스케와 그를 지지하는 오토쿠 다음에 4년 후 자막과 함께 비루하게 길가에 앉아서 비를 피하는 키쿠노스케와 오토쿠를 보여주는, 너무할 정도로 냉정한 컷 연결과 설계는 어떠한가? 미조구치가 동원하는 모든 영상 언어들은 등장인물들의 멜로드라마틱한 감정을 확대하기 보다는, 그들이 멜로드라마틱해질수 밖에 없는 '과정'과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미조구치 영화를 얘기할때 '초췌해진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한다. 우리는 [게이샤]에서 구세대 인습에서 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정절을 포기하는 선배 게이샤를 치겨봐야 하고, [수치의 거리]에서는 차례차례 비극을 겪어야 하는 매춘부들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초췌함은 감정적 카타르시스로는 도통 연결되지 않는다. 인물들 역시 쉽게 고꾸라질듯 하면서 그 시스템에 고꾸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고꾸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미조구치는 재빠르게 그 비극을 다른 방향으로 환기시키도록 유도한다.  

오히려 미조구치의 영화에서 멜로드라마적 물기와 카타르시스는 인물의 추락이 패배와 다른 방향으로 환기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마지막 국화 이야기]에서 관객을 울게 만드는 순간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오토쿠의 모습이 아니다. 오토쿠와 키쿠노스케가 마침내 사회의 시선을 견뎌내고 인정받았을때다. 오토쿠와 키쿠노스케가 마지막에 재회했을때 시퀀스는 클라이맥스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길게 묘사되는데, 그 클라이맥스에서 그들은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가 아니라, 마침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물론 멜로드라마적 관습은 그 인정이 얼마 안가 스러질 것이라는걸 예감케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들의 긍지가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는걸 확인하고 안도하게 된다. 또한 이런 긍지를 상대적으로 끝까지 지킨 사람은 바로 오토쿠이다. (미조구치 영화의 주인공들이 주로 여자였던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인습에 따라 헤어져야 했지만 그들은 잠시나마 다시 함께하고 인정 받는다. 그렇기에 미조구치 영화의 패자들은 절대로 비굴하지 않다.   

그렇기에 [마지막 국화 이야기]는 단순히 신분 차를 뛰어넘은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어떤 냉엄한 구조에 저항하는 긍지의 멜로드라마를 담은 영화가 된다. 등장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굴레에 핍박받고 눈물짓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엔 당당하고 결말에 이르면 어떤 숭고함으로 승화된다. 그렇기에 당당하지 못한 우리는 숭고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이런 긍지의 멜로드라마는 전후 미조구치가 만들게 될 [게이샤]나 [치카마츠 이야기] 같은 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국화 이야기]가 미조구치 첫 걸작이라 불릴 수 있다면 그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영화 어법이 일관되게 정립된 첫 영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