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19

도살자 [Le Boucher / The Butcher] (1970)

[도살자]의 시작은 평온한 마을 전경 쇼트 직후 사소한 실수를 배치한다.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준비하던 일꾼들 중 한 사람이 실수로 음식을 엎지른다. 이윽고 바삐 일하는 주방에 들어가면서 샤브롤은 삼각형으로 세워진 케이크 위의 신랑 신부와 진짜 신랑 신부를 매치 컷으로 이어붙인다. 고기에 대한 수다가 이어진 뒤, 관객들은 고기를 준비한 포폴이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그런데 이 남자 앞으로 오는 건 따로 준비된 식칼과 포크에 푹 찔린 고기다. 심지어 그 다음 샷에서 샤브롤은 잘려지는 고기의 질감이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한다. 사전 정보 없이 들어온 관객이더라도 이 장면에서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샷에서 고기는 맛있다기 보다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브롤은 아무렇지..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Les Glaneurs Et La Glaneuse / The Gleaners and I] (2000)

아네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제목을 듣고 그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이삭줍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다룰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 실제로 바르다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는 지점 역시 밀레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는 직접 보거나 시놉시스를 읽지 않는 한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이 다큐멘터리는 미술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가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탐구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바르다가 그 그림을 보면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삭을 줍는다'라는 행위다. 버려진 이삭을 줍는다는 행위는 상품 가치를 잃은 잉여 생산물을 주워서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수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2015/01/18 - [Deeper Into Movie/리뷰] - 나의 아저씨 [Mon Oncle / My Uncle] (1958)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전설로 남은 작품이다. 왜 타티는 성공적이였던 [나의 아저씨] 후속작을 만들지 않고 8년동안 이 영화를 만들며 침묵을 지켜왔는가? 적어도 그가 반복하는걸 싫어했다는건 명백했다. 그래도 [플레이타임]은 성공을 믿고 만들어냈다고 하기엔 너무나 무모한 영화다. 타티가 [플레이타임]를 위해 만들려고 했던 장소는 건물 몇 개가 아닌, 그 자체로 완성된 도시였다. 하나의 세계를 그대로 담은 세트로 만든다는 시도는 도무지 정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무리 비물질인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영화는 물질로 구성된 세계를 설계해 담아야 하는 매체다..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 The 400 Blows] (1959)

만인이 인정하는 영화사의 고전을 리뷰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발굴도, 동시대적으로 뛰어난 영화를 평가하는 것과는 다르게 굳건한 비평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블로그가 참신한 해석을 노리는 그런 블로그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어반복은 흥업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얘기할때도 비슷한 얘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시초 중 하나로 감독의 자전적인 성장기를 다뤘으며, 현장 로케이션으로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으로 불어넣어..." 이런 얘기를 리뷰에다 늘어놓는건 따분한 일이다. 물론 이 영화가 선취한 영화적 테크닉은 그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다. 전후 네오 리얼리즘에서 영화의 길을..

반 고흐 [Van Gogh] (1991)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는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첫 피알라의 영화다. 196-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대 누벨바그하고는 약간 한 발자국 떨어져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든 모리스 피알라는 1989년 [사탄의 태양 아래서]로 프랑스 영화계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온 이단아였다. 그가 [사탄의 태양 아래서] 직후 만든 [반 고흐]는 오베르라는 마을에 정착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빈센트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시절이지만, 피알라는 이 시절을 멜로드라마적으로 과잉해서 그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영화엔 스타 배우라고 할만한 캐스팅도 드러나지 않으며, 1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장면 없이 반 고흐의 후반부 인생을 다룬다.영화의 시작은 푸른 캔버..

디판 [Dheepan] (2015)

2009/11/05 - [Deeper Into Movie/리뷰] -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2013/05/21 - [Deeper Into Movie/리뷰] - 러스트 앤 본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 (2012)2014/02/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 / The Beat That My Heart Skipped] (2005)스리랑카 내전과 타밀 타이거라는 반군 단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의 도입부에서 어떤 절망감을 읽어내긴 어렵지 않다. 자크 오디아르는 저널리즘적인 설명은 일부러 배제한 ..

나의 아저씨 [Mon Oncle / My Uncle] (1958)

나의 아저씨 My Uncle 9감독자크 타티출연자크 타티, 장 피에르 졸라, 아드리안느 세르반티, 루시엥 프레지스, 베티 슈나이더정보코미디 | 프랑스, 이탈리아 | 117 분 | -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것은 개다. 우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놀고 있는동안 한 남자가 등장해 그들과 놀아주는걸 보게 된다. 타티는 이 장면에 대사를 넣지 않는다. 대신 키가 큰 멀대같은 남자가 자전거를 출근을 하고 일상을 즐기는 장면을 넣는다. 그러면서도 귀신같이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타이밍들을 조절해 어떤 이완과 수축으로 이뤄진 하나의 장관을 만들어낸다. 느긋할 정도로 헐렁하고 순진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조밀하게 짜여진 [나의 아저씨] 도입부는 곧 ..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Vous n'avez encore rien vu / You Haven't Seen Anything Yet] (2012)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2012) You Haven't Seen Anything Yet 8.8감독알랭 레네출연사빈느 아제마, 마티유 아말릭, 안느 콩시니, 랑베르 윌슨, 삐에르 아르디티정보드라마 | 프랑스 | 115 분 | 2012-11-22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때 유령을 찍는 요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 영화가 그런 오해를 사게 만든 이유는 다른 흐름을 가지고 흘러가는 시공간을 현실의 시공간에 불러들인 첫번째 매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가 누려왔던 매체(활자나 그림)엔 그런 유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시공간을 기록하는 매체'는 '마법'이나 '사후세계'처럼 이성 너머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영화는 이성 너머에 있던 가..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

예언자 감독 자크 오디아르 (2009 / 프랑스) 출연 타라 라힘, 닐스 아레스트러프, 아델 벤체리프, 레다 카텝 상세보기 예언자 출옥하다: 감옥이라는 이름의 학교 A School Named Prison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예언자]를 본다는 것은 마하 3으로 얻어터지는 것과 거의 비슷한 경험입니다. 건조하지만 강렬한 폭력 묘사도 그렇지만, 이 영화의 파워와 포스는 정말 '후덜덜'합니다.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자 제 머리는 풀파워로 너덜너덜해진것 같았습니다. 만약 캐릭터 만들기를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 영화 한 편을 골라야 한다면, [예언자]는 훌륭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캐릭터의 입체적인 변화를 굉장히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말릭은 뭐 가지고 있는 것은 돈 쪼가리와 단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