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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

giantroot2009. 11. 5. 23:12
예언자
감독 자크 오디아르 (2009 / 프랑스)
출연 타라 라힘, 닐스 아레스트러프, 아델 벤체리프, 레다 카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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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출옥하다: 감옥이라는 이름의 학교 A School Named Prison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예언자]를 본다는 것은 마하 3으로 얻어터지는 것과 거의 비슷한 경험입니다. 건조하지만 강렬한 폭력 묘사도 그렇지만, 이 영화의 파워와 포스는 정말 '후덜덜'합니다.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자 제 머리는 풀파워로 너덜너덜해진것 같았습니다.

만약 캐릭터 만들기를 공부하기 위해서 프랑스 영화 한 편을 골라야 한다면, [예언자]는 훌륭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캐릭터의 입체적인 변화를 굉장히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말릭은 뭐 가지고 있는 것은 돈 쪼가리와 단벌 옷 밖에 없는 별다른 빽이나 연이 없는 사람이고 실제로 생각하는 것도 미숙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미숙한 생각과 행동과 달리 노력도 하고 성실한 면모도 있기도 하죠. 그런 사람이 감옥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을 타라 라힘이라는 배우가 잘 연기하고 있습니다. 치기 어려보이는 모습에서 대담한 마피아지만, 어딘가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복잡한 과정을 타라 라힘 연기자분께서는 섬세하지만 육중한 표현으로 소화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초반부하고 후반부의 변화가 거의 괴리감 수준입니다.)

 
비단 타라 라힘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는 좋은 연기자들의 좋은 연기가 많습니다. 아마 가장 잊지 못할 캐릭터라면 코르시카 마피아 두목인 세자르 루치아니일 것인데, 이웃집 노인의 인자한 외모지만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악, 말릭에게 폭력적인 가부장와 보호자라는 다중적인 역할을 거침없이 표현하는게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어가 "아이고 항복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허윽 숟가락;;;) 그 외 다른 조연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데다, 이야기도 상당히 복잡한 편인지라 결말 부분에 '엥?' 싶었던 감도 있었습니다.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니(+해석) 이 영화는 별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채 버려진 인간이 어떻게 험난한 세상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지에 대한 영화이더라고요. 영화의 대부분이 감옥에서 벌어지는 코르시카인과 타 인종들 간의 파워 게임을 집중되어 있는데, 그 비중 때문에 [예언자]의 감옥은 하나의 소우주처럼 보입니다. [더 클래스]의 학교처럼 치열한 다툼과 암약, 협잡이 난무하는 곳이죠. 말릭은 그 소우주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 낸 뒤 거기서 승리합니다. 이 때문에 말릭의 성공은 하나의 신화처럼 보입니다.


물론 말릭의 성공은 감옥이라는 이름의 사회를 학교로 영리하게 이용한 사람의 신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민자들에게 별다른 기회를 주지 않고 범죄의 길로 내모는 사회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초반에 사르코지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물론 거기서 그는 이민자를 탄압하는 행동를 저지르고 계십니다. 이런 점들에서 이 영화는 [대부]나 [아메리칸 갱스터]하고 비슷한 테제를 지니고 있지만, 이 영화는 좀 더 싸늘하고 냉철합니다. 프랑스 영화스럽다고 할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의외로 프랑스 영화의 한계점이였던 장광설이나 피로함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거친 욕설과 사근사근함을 넘나드는 대사도 잘 쓰여졌고, 관객을 마하 펀치를 두들겨대는 박력도 리드미컬합니다. 영화적 자의식이라는 부분도 좀 있긴 하지만, 꽤 효과적으로 써먹고 있습니다. 페이스 조절도 잘 되어 있고 이야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한마디로 빈틈 없는 날렵함과 고급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꽤나 독하게 관객을 밀어붙이는 영화지만 안식처같은 순간들도 있습니다. 말릭이 죄책감의 괴로워하는 환상 장면, 예언의 능력이 드러나는 부분, 비행기를 타며 창 밖을 보는 말릭의 표정, 바다를 거니며 신발의 모래를 터는 장면, 의형 아이의 대부가 되어 아이와 함께 놀기... 이 장면들은 말릭이라는 캐릭터의 순수함과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관객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줍니다. 오디아드는 이 장면들을 통해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 전통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데스쁠랑 슨샘은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음악 감독 중 한 분인데... 이 영화에선 브라이언 이노나 맥스 리히터 같은 앰비언트 신시사이저와 몽롱한 현악 같은 재료들을 적은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시규어 로스나 토크 토크(어떤 장면인지는 기억은 안나는데 썼다고 합니다.) 같은 기존 음악들을 활용한 장면의 음악 구성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시규어 로스 음악이 등장하는 부분의 편곡은 정말 절묘하더라고요.

[예언자]는 여러분들이 상상할수 있는 최상급의 범죄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대부]나 [이스턴 프라미스],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같은 지방 하나 없는 다크 포스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위대한 범죄 영화가 세상과 삶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다면, [예언자]는 그 위대한 범죄 영화 계보에 들만한 영화입니다. 비록 감동과는 살짝 거리가 멀지만 숨 멎는듯한 순간들은 그 거리를 채우기에 충분합니다. 2009년 칸느의 선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여지없는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입니다.

P.S.1 meff에서 봤습니다. 극장 환경이 썩 좋지 않은지라(스크린은 존내 거대했을 뿐이고, 맨 앞 자리였을 뿐이고, 극장 안이 더웠을 뿐이고), 마지막에 가서는 꽤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영화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입하기 힘들더라고요. 개봉하면 다시 보러갈 생각입니다.
P.S.2 자크 오디아드 감독의 음악 취향은 포스트락 쪽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레딧 보니 토크 토크가 두 곡씩이나 들어가 있더라고요. 토크 토크 팬인가?
P.S.3 정식 수입됬습니다. 다만 자막 번역이 홍주희였던걸로... 아 망했어요.
P.S.4 모티브가 프리즌 브레이크라고 하더라고요. 오홍... 오디아드 감독님은 미드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