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Can - [Ege Bamyasi] (1972)

giantroot2009. 10. 20. 23:20
1970년대 독일 급진주의자들의 이지적인 폭력

최근에 도착한 캔의 [Ege Bamyasi]를 들으면서, 전 동시대 감독인 베르너 헤어조크의 작품 등에서 보이는 이지적 폭력을 다시 느꼈습니다. 인성이 배제된 자연의 폭력성과 광기, 그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표현할줄 아는 지성적인 접근이 공존한다고 할까요. 여튼 이 앨범은 그 뽀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 앨범의 중핵이 되는 요소를 설명하자면 고도로 응축된 연주와 휭크와 재즈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제 3의 무엇으로 되버린 뒤틀린 그루브입니다. 이 요소들은 모두 다모 스즈키와 노이즈로 대표되는 광기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지성은 브레인차일드인 홀거 츄카이가 클래식과 슈톡하우젠을 공부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슈톡하우젠의 원시적인 전자 음악론 역시 이 앨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캔의 정수에 가장 쉽게 다가설수 있는 트랙일 'Vitamin C'를 볼까요. 슬며서 등장해서 사라지는 스네어 드럼와 미니멀한 휭크 기타, 신시사이저, 다모 스즈키의 동물같은 울부짖음을 들으면 몸이 부르르,하고 떨립니다. 음악적 오르가즘이라고 해야 할까요.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게 그리 많지 않은 2트랙으로 녹음됬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이 적은 트랙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다니!

사실 전 긴 곡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텔레비전의 'Marquee Moon'를 듣고 컬쳐 쇼크를 경험한 뒤 긴 곡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앨범의 'Soup'는 아직 남아있던 편견을 부숴버리는 놀라운 곡입니다. 초반부에 혼을 빼놓은 뒤, 노이즈와 즉흥 연주의 세계로 바운드해서 넣는데 장난 아니더라고요.

음악사적으로 보면 [Ege Bamyasi]는 [Tago Mago]의 노이즈 광란과 [Future Days]의 앰비언트 그루브 사이에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 두 앨범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수록곡 'Spoon'(이걸 인기 TV 드라마 주제가로 썼다고라고라고라...)의 독일 내 성공을 생각해보면 이 앨범은 그동안 이뤄낸 성과를 중간 점검 및 대중화한 앨범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비슷하게 대중성을 지향했던 후기 캔은 정작 그 포스를 잃고 음악 산업에 투항했다는 인상이 강하다면 이 앨범은 음악 산업과 독일 사회에 저항[각주:1]하는 이지적인 폭력과 대중적 요소를 모두 놓치지 않은 앨범으로 기록될 듯 싶습니다.
  1. 과언이 아닙니다. Can이라는 약자는 communism, anarchism, nihilism의 약자라고 하네요. 실제로도 좌파 아나키스트 집단 출신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