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뜨거웠던 브라질의 여름을 떠올리며
카에타노 벨로소 형님은 제가 감히 뭐라 말할 분이 아니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마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이 이 사람을 알게 됬다면, 단연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음악 감독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의 공이 클 것이라고. 그만큼 [그녀에게]의 'Cucurrucucu Paloma'가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그 열풍에 따라 2004년 앨범도 라이센스 됬습니다. 하지만 감미로운 발라드였던 'Cucurrucucu Paloma'을 기대하시고 첫 앨범을 들으신다면 다소 당황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샀던 호앙 질베르또 옹의 1973년 동명 앨범 (이하 S/T)가 절제의 미학을 아는 조용한 보사노바 걸작이였다면, 카에타노 벨로소의 첫 S/T (S/T가 세개나 되는데, 이 첫 번째 앨범이 자주 거론됩니다.)는 활기찹니다. 이걸로 브라질 음악을 말하기는 위험하겠지만, 그래도 대충 감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67년 카에타노 벨루소를 위시한 영미 팝에 영향을 받은 신세대 뮤지션들이 등장했을때, 브라질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좌우파 모두 순수한 브라질 전통을 파괴한다고 비난했고, 브라질 대중들도 처음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첫 싱글 'Alegria, Alegria'는 4위에 올라가면서 큰 히트를 기록했고, 이듬해 1968년에 나온 당 앨범 역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전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해 브라질 카니발 축제에는 'Alegria, Alegria'로 가득찼다고 합니다.
음악 성격은... 에 뭐라 해야 될까요? 보사노바 (혹은 남미 음악) 연주자가 전기 기타를 들고 정치적 함의를 담은 사이키 팝을 노래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걸 부르는 목소리는 밥 딜런과 벡을 섞어놓은 것 같고요. 아이고 제 부족한 어휘력이 다 뽀록나네요. 요약하자면, 영미 팝의 영향이 보이면서도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평가 선생들은 이걸 MPB 혹은 뜨로삐까이아(Tropicalia)라고 부르나 봅니다.
지적인 접근은 여기까지 하고, 이 앨범 굉장히 독특합니다. 거의 40년이나 지난 앨범인데, 요새 잘 나간다는 뒤섞기 뮤지션들하고도 한판 붙을 수 있는 신선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앨범의 진취성을 알고 싶으시다면 'Alegria, Alegria', 'Superbacana', 'Soy Loco Por Tí, América' 이 세 트랙을 들어보시길. 영미 팝/록을 브라질 음악적 전통과 오묘하게 융합시킨 이 세 트랙은 부정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Onde Andarás'나 'Clarice' 같은 나른함도 좋습니다. 카에타노 형님은 이 앨범의 목표를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넘어서기'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습니다. 활기차면서도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매혹적이고요.
제가 브라질ㅇ...아니 포르투갈어를 못해서 가사를 해석하지 못하지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번역 가사들을 찾아봤더니 '모호하게 정치적이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작사 방법은 밥 딜런의 영향, 특히 고속도로 51 시절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브리짓 바르도와 코카콜라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왜 안되겠는가 왜 안되겠는가"라고 탄식하는 'Algeria, Algeria', 상징적이면서도 모호한 상황 제시로 체 게바라에게 헌사한 'Soy Loco por Ti, America'등이 그렇습니다.
정리하자면 브라질에도 신중현 비슷한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단순한 사실의 발견부터 창조적인 천재의 예술 작품을 만났을때 느낄 수 있는 충격 모두 느낄 수 있는 걸작 앨범입니다. 브라질은 축구 말고도 자랑할 유산이 많군요. 하긴 자랑할 전통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다만.
P.S.1 저희 형은 저 앨범 커버를 보며 '왜 저 남자는 저렇게 무섭게 째려보냐ㅋㅋㅋㅋ' 그랬습니다. 확실히 저 커버에 나온 벨루소 형님은 좀 무섭습니다. 관심법을 시전하는 것일지도...
P.S.2 제가 구한 CD은 1990년 첫 CD 복각반입니다. 제대로 된 리이슈 반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정보 있으신 분들은 정보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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