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나 걸려서 도착한) 임을 위한 로큰롤
솔직히 말하면, 최근 매닉스의 행보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Everything Must Go]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 후로 이어지는 모습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밍밍하기 그지 없었거든요. 그 예로 2007년작 [Send Away Tiger]가 나왔을때, 앨범 커버를 보고 "이게 뭐야"라고 외치고 사지 않았으니깐요. 그래서 차기작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성경] (Holy Bible) 시절의 강렬함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에 "흥... 너희들도 과거 팔아먹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는 열거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의 신보의 제목이 정해지고, 앨범 커버가 공개되었을때 '어라? 뭔가 분위기가 저번하고 다른데?'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전 다소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앨범 발매 뒤 호평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올해의 앨범이니 상반기의 로큰롤이니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하나 사서 들어봤습니다.
[성경] 앨범의 심란한 표지 그림을 그렸던 (제 유년 시절을 사로잡고 있는 악몽 중 하나입니다ㅠㅠ) 제니 새빌을 다시 초청한 1,000배 더 심란한 (안 그래도 영국에서는 아동 학대 묘사 관련으로 큰 논란거리가 됬더라고요.) 표지 그림을 지나, 음악을 틀면 [머시니스트] 속 크리스찬 베일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첫 트랙 'Peeled Apples'입니다.
그 뒤로 쏟아지는 음악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굉장히 단순명쾌하면서도 훅이 있는 로큰롤이거든요. [성경] 앨범을 못 들어서 그 앨범하고는 비교하진 못하겠습니다만, [Everything Must Go]보다는 더 거칠고 날이 서있다고는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적어도 이 앨범에는 [Everything Must Go]을 장식했던 몽환적인 오케스트레이션도 없고, 전달하는 감정들도 희망보다 절망 쪽에 가깝습니다.
다행히 이 앨범에 담긴 로큰롤들은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도 아니고, 진부하지도 않습니다. 'Peeled Apples'의 도입부에 들리는 무거우면서도 쌈빡한 베이스 라인, 'Jackie Collins Existential Question Time'의 중독적인 기타 리프, 'Me And Stephen Hawking'의 사정없이 갈겨대다가 완급을 조절하는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집니다. 전체적인 통일성이나 유기적인 흐름도 좋고, 'Marlon J.D.' 같은 댄서블(!!)한 실험곡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노장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피로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앨범의 성공은 누구의 공일까요? 물론 대중음악계의 스탈린이라 불리는 스티븐 알비니 프로듀서의 공도 있습니다. 그의 퍽퍽하면서도 뼈가 드러나는 프로듀싱은 그들의 낭만성과 폭력성을 절묘하게 배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전 멤버이자, 록 계의 가장 미스테리한 최후라 불리는 최후를 맞이한 리치 제임스라는 이름을 빼놓으면 곤란할 듯 싶습니다. 그만큼 그의 모습이 이 앨범에서 많이 어른거리거든요.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의 가사는 그가 남긴 메모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가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Jackie Collins Existential Question Time', 'Virginia State Epileptic Colony', 'She Bathed Herself In A Bath Of Bleach' 같은 곡 제목을 보고 포기했지만 적어도 리치 제임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멤버들이 얼마나 그를 잊지 못했는지, 그 감정이 이 앨범에 어떻게 담겼는지 정도는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닉스가 이 이후로 ENTClic님 말씀처럼 해체를 할지, 아니면 다시 [Send Away Tiger]나 [Lifeblood] 같은 밍밍함으로 돌아갈지 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게 있다면 이 노선은 다시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전 이 앨범이 작년에 사망 인정이 된 리치를 위한 추도사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추도사는 다시 할 수 없듯이, 이런 곡들도 (모르는 거지만) 이것으로 마지막일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조금 슬프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정도라면 15년이나 걸린 지각 추도사치고 강렬한 추도사이니,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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