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Wire - [Pink Flag] (1977)

giantroot2009. 6. 30. 00:58

나는 펑크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예술로 연주한다.
上記 진술은 너무 오만하다( )
위풍 당당하다( )
위험 천만하다( )
천진난만하다( )
블로그 방문자들(혹은 청자들)은 ( )에 ○표를 쳐 주십시오.

-황지우,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패러디.
1977년 영국으로 돌아가봅시다. 섹스 피스톨즈가 그동안 발매한 싱글들을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로 모아서 청중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동안, 클래시는 첫 앨범을 내면서 펑크의 정치성을 살리면서 그것을 대중화 시키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맨체스터 출신의 버즈콕스는 정치와 상관없이 'Orgasm Addict' 같은 사춘기 감수성을 담은 펑크 팝을 만들고 있었고, 엘비스 코스텔로는 완성도 높은 작곡 기법으로 펑크를 세련되게 다듬고 있었습니다. 수지 앤 더 밴시스는 고딕을 만드려고 화장을 하고 신디사이저를 사기 시작했으며, 조이 디비전은 바르샤바를 결성해, 악기 연주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왓포드 출신의 와이어 (Wire)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분홍 깃발 (Pink Flag)을 올리고 펑크의 예술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섹스 피스톨즈와 음악적인 성격은 공유했지만, 그들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평군 연령대도 높았으며, 출신도 예술 학교라는 엘리트 집단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음악의 지향점에서 극명한 차이가 났습니다. 그 점에서 [Pink Flag]는 펑크의 정신을 담으면서도, 펑크 이후를 예언한 놀라운 작품입니다. 이들은 여기서 "나는 펑크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예술로 연주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보듯, 이들은 지적이였고 펑크의 예술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여기서 이들을 미국의 토킹 헤즈하고 비교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 위에' 다양한 소리의 층위를 쌓았던 토킹 헤즈와 달리 와이어는 반대로 '단순한 구조만'으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앨범에 담겨진 음악은 어떨까요? 모든 곡은 2~3분 안에 끝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도전 정신과 실험, 그리고 훅은 놀랍습니다. 짧지만 강하게 뇌리를 후려치다가, 어느순간 사정없이 질주하는 일그러진 기타, 무자비하면서도 흥겨운 드럼, 그루브감이 넘치는 베이스, 이언 커티스의 시조를 보는 듯한 콜린 뉴먼의 보컬과 쇼맨십 (다만 콜린 쪽이 좀 더 냉소적입니다.), 은유적이면서도 지적인 가사 모두 모두 독특한 맛이 있으며, 와이어의 전설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앨범의 간결하지만 강렬한 충격은 후대 밴드들이 가져갔습니다. 픽시즈, 프란츠 페르디난드 (보컬인 알렉스 카프라노스가 "나에겐 펑크 밴드인 와이어가 팝으로 들린다."라고 말했죠.), 조이 디비전 등 수많은 후배 밴드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래스티카는 'Connection'에서 'Three Girl Rhumba'를 인용(이라 적고 표절이라 읽는다.) 했죠.

비록 이들이 상업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었지만, 이 앨범의 위대함은 그 상업적 실패를 무시할 만큼 대단합니다. 아트 펑크나 포스트 펑크 혹은 실험적인 록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꼭 들어봐야 할 앨범입니다.

P.S.1 이 앨범을 틀었더니, 부모님의 평은 단 한마디로 정리되었습니다. "크라잉넛이네" (...)
P.S.2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EMI는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EMI님하 매너염... 카피 콘트롤을 아예 앨범 커버에 인쇄를 해버리자면 어쩌자는 거에염.
P.S.3 이 리뷰는 weiv와 [죽기 전에 들어야 할 1001가지 앨범]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