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Antony And The Johnsons - [The Crying Light] (2009)

giantroot2009. 6. 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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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빛

미국 뉴욕 출신 뮤지션 안토니 헤거티의 밴드, 안토니 앤 더 존슨즈는 2005년 [I Am A Bird Now]를 발매하면서 LCD 사운드시스템 (재미있게도 2008년, 이 둘은 헤라큘라스 앤 러브 어페어로 간접적으로 만난다.)과 함께 2005년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으로 손꼽히게 됬다. [I Am A Bird Now]는 카뱌레 풍의 컨템포러리 팝과 전위주의를 기조로 안토니의 쓸쓸하면서도 격정적인 목소리와 아름다운 가사가 돋보이는 앨범이였다. 안토니는 이 앨범을 통해 원초적 육성의 매력을 인디 록/팝계에 다시 끌여들었다. 그리고 4년간의 침묵 끝에 새 앨범 [The Crying Light]를 들고 왔다.

일본의 부토 무용수 오노 카즈의 1977년 사진 (공교롭게도 [I Am A Bird Now] 표지의 캔디 달링의 사진하고 3년 차이다.)을 앨범 표지로 삼은 신보 [The Crying Light]는 전작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미묘한 변화와 실험이 돋보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원초적인 육성이 담긴 컨템포러리 팝이라는 기본적인 노선과 정서는 변하지 않았지만, 질감과 구조는 많이 변했다.

우선 빈 공간이 두드려졌던 전작과 달리, 이 앨범은 그 빈 구석을 꽤 적극적으로 채워넣고 있다. 특히 현악 연주가 상당한 비중으로 늘어났는데, 전작에서 현악의 비중이 50%였다면, 이번 작에서는 70%로 늘었다. 물론 뉴욕 전위주의하고 연관관계가 있는 안토니답게, 현악 연주는 안전한 길을 가지 않는다. 이런 비타협적인 선택 때문에 이번 앨범의 현악의 활용은 다채로워졌다. 이 앨범의 현악 연주는 'Everglade'처럼 차분하게 연주하다가도, 'Her Eyes Are Underneath The Ground'나 'The Crying Light'처럼 웅웅거리는 음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안토니는 이를 위해 현악 편곡자로 아방가르드 클래식 연주자인 (필립 글래스와 작업한) 니코 멀리를 초빙했는데, 결과물은 흡족스럽다. 그외 'Aeon' 같은 곡에서는 전자 기타를 도입하고 있다.

이런 음악의 변화에 따라 안토니의 보컬도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구성지고 쓸쓸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만, 격정적으로 폭발하는 순간을 줄이고 음악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첫 싱글인 'Another World'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에코를 먹인 피아노와 쓸쓸한 울음 같은 높은 기악 연주와 현악 연주가 안토니의 무심하면서도 슬픈 목소리와 엉킨다. 안토니는 이 곡에서 튈려고 하기 보다는 천천히 주변 풍경 속으로 녹아든다. 이 곡에서 보듯 전반적으로 앨범이 침잠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런 침잠이 과연 효과적일까? 전작의 격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했다면, 이 앨범이 전작에 비해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히 이 앨범에서 폭발하는 순간은 적어졌다. 그렇다면 이 앨범이 음반 매장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나긋나긋한 컨템포러리 앨범인가. 그렇지 않다. 곡의 짜임새는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으며, 앨범 전반에 깔린 침잠과 고요에는 황혼 속에 스며드는 빛처럼 알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비록 'Hope There's Someone'처럼 충격적인 싱글은 없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앨범이다. 안토니는 진정 창조적이면서도 독특한 뮤지션이다.

점수: 4.5/5

P.S 부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동명 영화에서 가져왔다.
P.S.2 가을/겨울이 되면 더 좋게 들릴 음반 같다. 물론 여름밤에 들어도 좋은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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