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혐오 [Repulsion] (1965)

giantroot2009. 6. 26. 01:48


혐오
감독 로만 폴란스키 (1965 / 영국)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로만 폴란스키, 발레리 테일러, 제임스 빌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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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혐오, 그리고 진액

Arborday님이 주최하신 상영회에서 본 혐오 (반항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더군요.)는 로만 폴란스키가 한창 젊었을때 만들었던 영화였습니다.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상당히 모더니즘 영화스럽다', '폴란스키가 저런 영화를 만들었던 때도 있구나.'였습니다.

영국 런던, 캐롤이라는 카트린느 드뇌브의 얼굴과 몸을 가진 수줍은 젊은 여자가 살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만 해도 과도한 수줍음과 비사교성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그녀는 언니가 여행을 떠나자, 점점 광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컴컴하기 그지 없습니다.

캐롤이 드러내는 광기는 상당히 끔찍합니다. 물론 행위 자체도 무섭기도 그지 없지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진액도 불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녀가 왜 그런 과정에 도달했는지는 영화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추측할 단서들은 영화 내내 제시됩니다. 

아마 그녀의 광기는 성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됬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반한 남자와 집주인을 살해하는 것이나, 강간 환상이 그렇죠. 이런 성에 대한 광기와 강박증을 통해 폴란스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다소 모호합니다. 전 페미니즘적인 내용으로 해석했지만, 다른 해석도 충분히 나올 법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폴란스키도 그렇게 명확한 뜻을 의도한 것 같지 않고요. 하지만 그 모호함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끔찍해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해석도 붙지 않은 가장 순수한 인간의 광기가 가지고 있는 힘은 상당하기 때문이죠.

이 강렬함은 폴란스키의 연출에서 비롯됩니다. 꿈과 현실이 교차되는 와중에, 대담하게 밀어붙이는 그의 연출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벽에서 뻗어나오는 손들의 환영은 데이빗 크로넨버그와 데이빗 린치가 폴란스키의 연출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공포 연출이 고전적으로 보였다면, 폴란스키가 만든 연출이 영화계의 공식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효과적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겁먹은 모습과 광기를 넘나드는 카트린느 드뇌브의 위태로운 아름다움과 연기도 강렬함에 한 몫 더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게, 이 영화의 터치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풍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모더니즘 영화를 닮은 부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초반부에 캐롤의 일상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나죠. 캐롤을 묘사하는 이 영화가 덜 공포 영화스러웠다면, 아마도 이런 점들 때문일 것입니다. 정작 폴란스키는 자신이 공포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말입니다.

[혐오]는 불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성과 강박증, 살인이 섞여있는 끈끈한 광기의 진액을 뒤집어 쓴다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불쾌함은 단순히 혐오감을 자극하는 게 아닌,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상영회가 끝나고 난뒤 시행된 뽑기에 당첨되서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거기다가 Arborday (김시광) 님에게 싸인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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