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giantroot2009. 3. 1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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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사랑, 사랑, 사랑.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빛나게 하는 것이기도 하며, 인간이 얼마나 쪼잔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비록 남녀간의 애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관계는 대부분 사랑과 신뢰로 이어져 있기 마련이다. (직업적 관계나 악연은 제외하자. 하긴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긴 하지만...) 여튼 사랑이 무엇이든, 그것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데는 선수다.

참 로맨틱하게 적어놓긴 하지만 (쓰면서 토가 올라올...뻔 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은 로맨틱함에 푹 절여져 있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지성미와 낭만, 기발함을 갖추고, 사랑과 관계를 성찰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은, 어느 연애 영화와 비슷하다. 조엘이라는 남자가 발렌타인 데이 때 회사를 빼먹고, 무작정 교외로 간다. 그 곳에서 클레멘타인이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다. 홀딱 반한 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둘은 서로에게 기시감을 느끼고, 생판 모르는 남자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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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기까지 보여주고 시간을 뒤로 돌린다. 알고봤더니 조엘은 이미 클레멘타인과 사귄 적이 있었고, 둘은 이미 헤어진 뒤다. 그녀를 잊을 수 없던 조엘은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영화는 SF와 판타지로 방향을 튼다. 조엘이 잠든 사이, 기억을 지우기 위해 일군의 사람들이 도착한다. 그들은 조엘의 머릿 속을 들여다 보면서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다. 그 사이 조엘은 자신의 뇌내망상 속을 떠돌아다니며 뒤늦은 후회에 빠진다.

서로를 맹비난하며 헤어진 그들이였지만, 처음부터 그들이 서로에게 질렀던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엔 그들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했으며, 그 맹세을 충실하게 지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곧 서로에게 질리고,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상처주고 받았으며, 결국엔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뒤늦은 후회에 빠진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인간은 진 삼국무쌍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존재다. 그런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불확실성과 격렬한 감정을 자신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이런 격렬함에 지쳐 인위적으로 통제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 한다. 기억 조작 클리닉 스태프들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여기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 앞에서는 쩔쩔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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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인위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영화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녹음했던 테이프를 듣는다. 그것을 들은 그들은 격렬한 좌절감에 휩싸이지만, 예전과 달리 침착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것은 달콤한 사랑의 승리이기도 하고, 한층 성숙해진 두 사람의 성장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공은 찰리 카우프만의 것이다. 그는 굉장히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이야기를 MTV적 감수성에 맞게 풀어낼 줄 안다. 사실 철학적인 언어를 그대로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다수에게 전달하도록 번역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찰리 카우프만은 그것을 해냈다. 그는 복잡한 인간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양배추 자르듯, 명쾌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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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미셸 공드리의 공을 빼놓는다면, 그에게 큰 모욕이 될 것이다. 그의 수공업적인 몽상은 이미 다양한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는 이를 토대로 찰리 카우프만이 멋지게 써내린 환상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한다. 보고 있노라면 즐겁다. 미셸 공드리는 헐리우드가 일찍 폐기처분 시켜버린 미니어처와 스톱모션 특수효과를 다시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 캐리의 피곤에 쩔은 남자 연기와 케이트 윈슬렛의 격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자 연기를 훌륭하게 다듬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터널 선샤인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영화다. 아마 그 사랑스러움은 찰리 카우프만과 미셸 공드리가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다뤘기 때문에서 오는 거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둘의 합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내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P.S.1 굉장히 즐겁게 쓴 리뷰다. 영화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즐겁고 쉽게 쓴 적은 오래간만인 것 같다.
P.S.2 욘 브리온 만세!! (그냥 팬심으로... 실제로 좋은 스코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