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도쿄 소나타 [トウキョウソナタ / Tokyo Sonata] (2008)

giantroot2009. 3. 2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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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4번 "가족"

전주

구로사와 키요시의 [도쿄 소나타]는 일단은 드라마 키요시 계열 작품이다. 드라마 키요시 작품들은 항상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었으며, 이번 영화의 소재 역시 가족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전작들처럼 무너진 가족을 다시 만드려고 발버둥 치거나 ([인간 합격]), 타인들이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대안 가족을 맺지 ([밝은 미래]) 않는다. 오히려 있던 가족이 무너져간다.

일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 사사키 가. 하지만 그런 평온한 모습은 영화 시작 5분만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아버지가 잘린 것이다. 게다가 두 아들들은 저마다 폭탄을 들고 있고, 어머니도 텅 비어있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결국 큰아들이 집을 떠나고, 이를 기점으로 가족은 걷잡을수 없는 카오스로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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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가족의 붕괴

[도쿄 소나타]는 사실 드라마의 외투를 두르고 있지만, 속은 호러 영화다. 여기서 호러 영화는 단순히 腸器(창자) 자랑이나 사다코가 등장하는 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차마 직시할 수 없는 진실을 깨닫게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영화" 쪽에 가깝다. 좁은 의미의 호러 영화에서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던 구로사와 키요시는, 이 영화에서 평범한 가족의 붕괴를 한 치의 자의식 과잉 없이 그려낸다.

사사키 가족의 붕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 되어있다. 아버지인 류헤이는 일본 (한국도 다를 바 없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을 받아들이며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지만 영화 시작 5분만에 회사에서 퇴출당한다. 신자유주의의 효율성과 능력 중시 및 세계화로 인한 다국적 인력 채용에 떠밀린 것이다. 그에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에 머리가 굵은 장남 타카시는 이런 아버지와 일본의 '소시민적 세계관'에 반항하며, 일본의 또다른 아버지인 미국의 하수인이 된다. 그 속에서 어머니인 메구미와 차남 켄지는 자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며 방황한다. 그나마 켄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라도 찾았지, 메구미는 이도 저도 아니다.

결국 영화 중반부에 들어서면, 호러 키요시 영화의 후반부처럼 한계점에 도달한 소우주가 붕괴되어버린다. 메구미와 켄지는 집에 염증을 느껴 떠나버리고, 타카시는 (드러나진 않지만) 군대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시험받는다. 류헤이는 아예 사고를 당한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턱하고 옥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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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악장 재건

하지만 영화는 파멸에서 결말 짓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도망간 그 곳에서도 별다른 탈출구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묵묵히 밥을 먹는다. 3개월 후, 그들은 바뀐 자신을 조금 인정하게 되고 켄지는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가족들은 퇴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비록 다소 생기없는 (어쩌면 유령같은) 결말에 다의적인 해석을 남기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결론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로사와 키요시는 이 가족이 자신들의 문제로 붕괴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국 그들을 감싸 안고,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낸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회로]나 [큐어]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여전히 비참한 현실에 대해 절규하고 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가 그렇듯, [도쿄 소나타]는 가족의 분열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구성원들의 고통을 이해할 줄 아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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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악장 구로사와 키요시의 도약

무척이나 암담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영화의 매무새는 굉장히 말끔하고, 보편적이다. 이야기 전개는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고, 후반부의 강도 에피소드는 역대 키요시 영화 중 가장 웃긴 에피소드일 것이다. (물론 그 웃음은 뼈가 있는, 씁쓸한 웃음이다.) 단언하건데 [도쿄 소나타]는 지금까지 나온 키요시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키요시 특유의 터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평범한 컷과 불가해한 폭력이 담긴 컷의 연결로 인한 충격 효과, 호러 키요시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사소한 것들을 이용한 서사 전개, 귀신이 등장할 법한 스산한 분위기 조성 (실제로 그 비슷한게 한 두번 등장하긴 한다.), 잘 짜여진 미장센 등 그동안 키요시 팬들을 열광시켰던 요소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자는 아버지 류헤이 역을 맡은 카가와 테루유키일 것이다. 당당하지 못하면서, 권위는 세우고 싶은 이 시대의 가장들의 얼굴을 완벽하게 체득한 그의 모습은 영화의 사실성을 살려주고 있다. 물론 아내 메구미 역의 고이즈미 쿄코 역시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묘한 고독감을 느끼고 있는 가정주부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야쿠쇼 코지 역시 등장 시간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도쿄 소나타]는 키요시가 또다른 세계로 훌쩍 넘어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여전히 다수의 대중이 사랑할 법한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키요시에게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의 경계는 거의 의미가 없어졌구나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의 팬으로써, 그의 도약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P.S.1 으윽... 그동안 쉽게 썼더니, 신이 천벌 내린게 틀림없다. 글 쓰기 어려웠다.
P.S.2 원 시나리오는 호주 작가 맥스 매닉스가 쓴 시나리오라고 한다. 얘기를 듣자하니, 처음부터 원작자가 일본 가족으로 설정하고 쓰긴 했지만 그외엔 키요시 감독과 사치코 작가가 꽤 많이 바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