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데드 링거 [Dead Ringers] (1988)

giantroot2009. 3. 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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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데드 링어스, 데드 링어즈


마음과 영혼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데드 링거] 엘리엇와 베벌리 두 쌍둥이 형제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성공적인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가던 그들에게 클레어라는 여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들은 점점 자신의 삶이 균열되어가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파멸로 향한다.

엘리엇과 베벌리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사생활과 감정들을 서로 공유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며,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사생활은 개인의 영역이노라고 사회에서 학습한 보통 관객들에게는 도무지 친숙해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영화 끝에 도달하면, 적어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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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그 원인이 무척이나 진실하고 처절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남매가 있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형제/자매/남매의 관계는 운명 공동체라 할 정도로 서로간의 애정과 신뢰로 얽혀 있다. "설마, 우리 형/언니/누나/오빠는 저한테 마구 욕을 퍼붓는데요."라고 물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는 왠만한 악연으로 꼬이지 않았다면, 그건 츤츤대는 거라 봐도 무관하다.

대부분의 형제는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인격체로 분리가 된다. 나의 형과 나는 분명 형제이지만 서로의 관심 분야는 무척 다르며,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엇과 베벌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꾸는 장난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바꾸던 바꾸지 않던 그들은 그렇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들은 다른 이의 정체성을 연기하는게 직업인 클레어가 정작 자신의 존재는 확고하게 서 있다는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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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에서 비극은 싹을 틔우게 된다. 즉 그들은 육체와 욕망은 나눠져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정신은 나눠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1) 그렇다고 해서 클레어가 제안한 것처럼 서로 다른 개체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늦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은 무척 슬프고도 섬뜩하다.

[데드 링거]는 명확한 장르로 구분가능했던 [비디오드롬]나 [플라이]와 달리 확실하게 "이 장르다!"라고 규정하기엔 미묘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하우스 풍의 메디컬 드라마이기도 하고, 약한 신체 훼손과 섬뜩한 살인도구가 등장하는 호러물이기도 하고, 우울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다루는 미스테리 물이기도 하다. 크로넨버그는 이 다양한 이야기와 감정들을 차갑고 클리니컬한 터치로 다룬다.

좋은 예술품이 그렇듯, [데드 링거]는 '오묘하다'. 그 오묘함은 절대로 뭐라 말로 분석할 수 없다. 보고 느껴야지 알 수 있는 오묘함이다. 사실 크로넨버그 영화들 리뷰에서 항상 언급했듯이, 크로넨버그는 나 같은 엉터리 리뷰어를 끙끙거리게 하는 고약한 사람이다. 보고 있으면 머리속에 주제와 감정들이 강렬하게 파고드는데, 정작 리뷰를 쓸때는 어떻게 써야 할지 막히는 것이다. 이런 젠장! 하지만 그렇기에 크로넨버그에게 경외심을 느낀다. 그는 진정 똑똑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 수술 도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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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넨버그가 그동안 B급 영화를 만들면서 쌓아온 "에둘러 말하지 않고 관객의 뇌와 지성을 헤집어버리는, 하지만 절대 싸보이지 않는" 연출로 멍석을 깔아놓는 동안, 제레미 아이언스는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아니 멋진 수준이 아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는 진정 문화 유산급에 들 만한 연기다. 엘리엇과 베벌리라는 두 존재를 하나의 존재처럼 연기했다가, 다른 면모를 보여주다가, 그 사이를 방황하다가... 남들 리뷰 표현 따라갈까봐 여기서 컷. 하지만 보면 안다. 그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제레미 아이언스의 원맨쇼가 중심인 연기 배정이긴 하지만, 히로인 격인 쥬느비에브 비졸드의 연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역은 작은 편이지만, 현실의 여성을 훌륭하게 살려낸 연기라 할까.

개인적으로 크로넨버그의 걸작은 아직도 [폭력의 역사]라 생각한다. 짧고 강렬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폭력의 역사]에 비해 템포가 살짝 느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 없이 [폭력의 역사]가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데드 링어스]는 그를 진정한 의미의 거장이 되게 만들어 준 첫번째 작품이다.

*1 그런 점에서 영화 포스터의 카피는 영화의 핵심을 잘 건드린 편이다.

P.S.1 리뷰를 꼭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쓴 리뷰다. 조금 덜 딱딱하게 쓰고 싶었지만 글쎄...
P.S.2 부제는 조이 디비전의 'Hearts and Soul'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