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로나의 침묵 [Le Silence de Lorna / The Silence of Lorna] (2008)

giantroot2009. 6. 27. 16:16
로나의 침묵
감독 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2008 / 벨기에,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출연 아르타 도브로시, 제레미 레니에, 파브리지오 롱기온
상세보기

침묵과 속죄 뒤에 찾아온 잊혀지지 않는 불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의 [로나의 침묵]은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범죄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장르적인 서스펜스 대신, 인물들이 도덕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겪는 격렬한 심리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에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식당을 꾸리길 원하는 알바니아인 로나는 최근에 원하던 벨기에 시민권을 얻은 상태다. 하지만 그 시민권은 위장 결혼을 전문적으로 하는 범죄 집단의 음모로 얻어진 시민권이다. 게다가 로나와 위장 결혼을 한 중독자 클로디는 곧 범죄 집단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혼하는 것 보다 살해하는 것이 범죄 집단에게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로나는 클로디의 재활을 도우면서 그에게 점점 끌리기 시작하고, 그녀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로나가 겪는 격렬한 심적 변화는 도덕적인 문제로 가득차 있다. 클로디는 사실 인생의 패배자이지만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며, 로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로나는 회의감에 빠진다. 과연 내가 이 남자에게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인가? 이 남자가 과연 주변 사람들 말처럼 약만 하다 죽을 인간인가? 이를 위해 로나는 클로디를 비정한 사회 구조와 범죄집단에서 구해내려고 한다.

여기서 다르덴 형제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클로디와 로나가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 뒤 장례식 준비를 하는 로나를 보여주며, 클로디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다. (물론 급했던 범죄 집단이 저지른 것이다.) 이 급작스러운 죽음은 로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자신의 양심이 버림받는 상황을 겪은 로나는 양심에 대해 침묵하고 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로나는 클로디의 생사보다도 자신에게 더욱 절박한 도덕적 양심과 관련된 문제에 빠지게 된다. 로나의 선택에 대해서는 다루진 않겠지만, 그녀의 선택이 지독히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선택을 통해 다르덴 형제는 일말의 양심과 인간애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다르덴 형제의 연출은 뼈를 앙상하게 드러낸 사실주의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장식도 없이 그저 묵묵히 배우와 그 배경들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간단해 보이는 연출이지만, 거기서 드러나는 내공과 힘은 상당하다. 로나가 병원에서 우는 장면은 어떤 장식도 붙어있지 않지만, 그 때문에 로나의 감정에 적극적으로 이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처 도달한 결말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어떤 경지에 오른 것 같은 감동과 성찰을 안겨준다. 물론 여기에는 아르타 도브로시를 비롯한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솔직히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 유명한 [로제타], [아들]도 못 보았다. 하지만 이 영화로 미뤄볼때, 저 두 영화가 분명 위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나의 침묵]은 도덕과 사회가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앙상한 사실주의과 아름다움으로 풀어낸 영화다. 지금 우리는 도덕을 지켜야 할 의무 앞에서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P.S.1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먹은 곰국은 상당히 맛있었다.
P.S.2 위드시네마가 수입한 영화들은 모두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포스터나 홍보 전단 디자인이 상당히 부실해서 안타까웠는데, 이번 [로나의 침묵]이나 [세비지 그레이스]에서는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화려한 디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깔끔한 퀄리티를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