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바다 (죽음)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신작 [씨 인사이드]가 공개 됬을때, 적잖이 당황했다. 유일하게 본 [디 아더스]의 어둑한 분위기와 많이 다른 영화였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라니! 내가 아는 아메나바르 감독은 미스터리에 능한 감독이였다. 당장 가서 확인하고 싶었으나 수입이 지체되는 바람에 뜻을 잃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어느날 [씨 인사이드]가 한국에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늦장 개봉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능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수능이 끝나고 형 따라 국전에 갔다. [씨 인사이드] DVD 할인한다는 말이 눈이 뒤집혀져 사들고 왔다.
우선 이 이야기는 스페인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의 어느 마을, 1968년 라몬 삼페드로는 바닷가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을 다치는 바람에 목 아래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후 20여년이 지나 글을 쓰며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소망은 단 한 가지, 안락사이다.
이 영화는 안락사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선택과 삶의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라몬이 그토록 죽음을 주장하는 이유는, 그의 삶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결정은 오랜 시간동안 심사숙고해서 나온 결론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그의 선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나온다. 그 중에서도 그를 둘러싼 두 여자의 행동이 이 영화의 큰 핵심 주제인데, 먼저 그를 돕는 변호사 훌리아를 보자. 훌리아 역시 라몬처럼 고칠 수 없는 병으로 고통 받는 나머지 죽고 싶어한다. 하지만 막판에 그녀는 라몬과 함께 죽자는 약속을 어긴다. 반대로 로사는 그가 살고자 바라고, 그를 설득하지만, 마지막에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를 도와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고, 그 선택을 한 사람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의 형처럼 라몬의 선택이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난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비난보다는 그 사람의 선택을 이해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형수인 마누엘라를 통해 나타난다. 그녀는 평범한 주부지만 그의 선택을 비난하는 신부에게 일갈한다. 무턱대고 비난하는 당신은 정말 입만 살은 인간이라고.
이와 별개로 영화는 삶의 권리란 과연 어떤것인가?('삶을 포기하는 것도 삶의 권리인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이 주제는 안락사라는 소재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는데, 영화는 이에 대해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접근법이 상당히 좋았는데, 우선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할 수 있었던게 주 요인이였던 것 같았다. 이런 접근방법에 대해 '모호하다'라고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확실한 입장 표명은 생각할 여지를 많이 축소했을듯 싶다.
[씨 인사이드]의 연출과 플롯은 지극히 단순하다. 아메나바르가 직접 쓴 시나리오는 특별히 잔기교를 부리지 않고 주제에 충실하며, 연출 역시 자신의 색깔을 강조하는 대신, 이야기와 배우 사이에 숨어서 그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아주 무채색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니다. 라몬의 상상 장면 및 바다 장면들은 아메나바르의 미적 집념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죽음을 다룬 영화지만, 전반적으로 시적이고 아릅답다.
좋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역시 압권은 주연인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35세에 이 영화를 찍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연륜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뜨겁다"라고 말했을때, 그의 표정은 칼을 가슴에 콱 박는 것처럼 처연하다. 베니스 영화제가 이 영화에게 남우주연상을 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될 만큼 멋졌다. 그 외 조연들의 연기들도 좋았다.
[씨 인사이드]는 아메나바르가 점점 거장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걸 증명 시켜준 영화다. [조디악]처럼 그의 시각적 스타일과 성숙한 성찰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으며,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오래간만에 가슴과 지성을 동시에 흥분을 주는 영화를 찾아서 기쁘다. 그리고 저 위의 리뷰는 그냥 주절주절 헛소리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이 영화가 던지는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취하고 있더라도 영혼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PS. 이번 부제는 新居昭乃 (Arai Akino)라는 일본 가수의 곡에서 따왔다. 영화에 잘 어울리는 곡 제목이다.
PS2. 앞으로 리뷰에 사진을 넣어 볼까 한다. 가독성이 좋아질 듯 싶다;;
'Deeper Into Movie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0) | 2008.07.21 |
---|---|
크래쉬 [Crash] (1996) (4) | 2008.06.07 |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 [Sanger Fran Andra Vaningen/Songs From The Second Floor] (2000) (0) | 2008.05.11 |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24 Hour Party People] (2002) (0) | 2008.05.01 |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0) | 2008.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