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이 등장하는) 스웨덴 식 부조리극
전 로이 안데르센이라는 사람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스웨덴 감독이고, 첫 영화인 [스웨덴 식 러브 스토리]가 상당히 주목을 받았지만, 작품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고 오랜만에 만든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는 정보 정도? 사실 수상작이라는 사실이 좀 끌려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뭐랄까 참 할말이 없더군요. 굉장히 기묘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부조리극입니다. 먼저 배경 설명이 일절 없고 '종말 직전의 스웨덴 도시'라는 상황을 무식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연기들도 '사실적'이라는 단어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종종 마임을 연상 시킬 정도로 행동폭이 큰 대신 대사가 적고 간결합니다. 굉장히 연극적인 화면 구성도 그 예로 들 수 있고요. (여력이 되신다면 영화 보시면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부분을 세어 보시길.) 그리고... 유머가 포진해 있습니다. 인간적이기 보다는 부조리극 특유의 씁쓸한 유머지만 말입니다.
전반적인 연출 기조는 예상하신대로, 미장센 중심입니다. 한 화면에 굉장히 많은 상징과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힘든 타입의 연출이지요. 우선 만드는 사람에게는 정확한 계산과 타이밍, 그리고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 속에서 다양한 의미들을 찾아해야 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지요. 여차하면 자의식 과잉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재앙이 되버리지요.
하지만 이 점에서 영화는 꽤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심히 봐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후반부에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앞으로 갈려고 아우성 치는 장면은 진짜 강렬합니다. 화면 구도, 구성도 훌륭한데다가, 판에 박은 상징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안겨주거든요. 혼란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도피감이 이렇게 멋지게 승화된 장면은 보기 드물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물질에 대해 집착하는 현대인이라는 상징도 놓치지 않고 있고요.
굉장히 많은 정보량과 주제를 가지고 있는 영화여서 주제를 정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다만 어설프게나 정리를 해보자면 믿음 없는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위로와 그 해결 방책 정도 될까요? 주인공은 사무실을 불 지르고 과거의 망령들을 외면하지만, 동시에 초라하고 지친 모습이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그런 악조건 속을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방향을 제시합니다. ("예수도 평범한 사람이였다.") 거기서 예외가 되는 인물이라면 100살 된 나치 부역 장군 정도일까요? 볼일 보는데 사람들이 들어와서 생일 축하 하는 장면에서는 비웃음 마저 느껴지더군요.
독특한 분위기로 가득찬 수작이긴 하지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선 관객과 쇼부 보자는 그 원신-원컷 자세도 조금 힘든데다 상징까지 끼여드니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담백하지만 골 때리는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PS. 스폰지 카페에 가보니 로이 안데르손의 근작 [유 더 리빙] 개봉이 확정 됬더군요. 2008년 6월 12일에 개봉합니다. 보러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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