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giantroot2008. 7. 21.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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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벗어난 정신


0.밥 딜런, 그는 누구인가?

밥 딜런, 그는 누구인가? 라고 물으면 우리는 사전적인 정의를 내릴것이다. 저항 가수, 대중 음악의 음유 시인, 포크 가수 등등...

하지만 그런 단어들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까? 그렇게 간단히 정의 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데, 그런 것들로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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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밥 딜런 없는 밥 딜런 영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는 괴상한 영화다. 명색이 밥 딜런 전기 영화인데, 밥 딜런이라는 인물은 코빼기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밥 딜런의 생애를 토대로 만든 허구의 인물 6명을 내세워 "이게 밥 딜런의 생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통 평범한 관객으로는 황당할 일이다. 아니 밥 딜런 영화를 보러 갔는데 밥 딜런은 안 나오다니!

하지만 이는 한 사람 속에 담겨져 있는 슬로건과 정의를 꺼내서 하나하나 파헤치기 위한 토드 헤인즈의 고도의 전략이다. 그는 이 영화 내내 밥 딜런에 대한 대중들의 사전적인 이미지를 꺼내서 그것을 분석하고 영상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즉 토드 헤인즈가 이 영화에서 내세운 전제는 이렇다: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숲의 구성요소인 나무를 이해해야 한다.

종종 주요 캐릭터가 실제 살아 숨쉰다긴 보다, 감독이 정한 치밀한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전략에서 나온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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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퍼즐 조각에 대한 설명

먼저 처음 등장하는 흑인 꼬마 우디 거스리(*1)는 밥 딜런이 왜 음악을 선택하게 됬는지, 왜 프로테스트 음악을 하게 됬는지 설명하는 캐릭터이다. 그 다음 프로테스트 포크 시절을 대변하는 잭과 포크 록 시절을 대변하는 쥬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세 캐릭터는 밥 딜런의 음악적 커리어를 대변하는 캐릭터이며, 음악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부분이다.

문제는 그 뒤다. 로비야 실제 밥 딜런의 평탄치 못했던 결혼 생활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빌리와 아서는 그야말로 밥 딜런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들만이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며, 영화의 숨겨진 주제를 맡고 있다. 이 세 캐릭터는 밥 딜런의 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의 난해함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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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 퍼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일반 영화가 지니고 있는 줄거리가 거의 없다. 장 뤽 고다르처럼 아예 "내러티브 그거 먹는건가요? 우걱우걱"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다르의 실험 정신에 영향을 받은 듯 엄청난 정보량을 담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난삽하게 어질러져 있다. 심지어 토드 헤인즈는 페이크 다큐까지(*2) 능청스럽게 집어넣고 있다. 이 정도면 퍼즐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행히도 이 퍼즐에는 약간의 실마리가 주어져 있다. 실제 사건의 언급, 6명의 각기 다른 밥 딜런의 공통점, 밥 딜런의 음악 기타 등등.

이 실마리를 쫓아 빌리 더 키드라는 캐릭터를 보자. 이 캐릭터는 아서와 더불어, 실제 밥 딜런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 캐릭터다. 아서가 밥 딜런의 예술가적인 기질을 설명해 준다면, 빌리 더 키드는 밥 딜런의 핵심에 근접한 캐릭터다. 그는 말 그대로 무법자이며 은둔자이다. 그는 고속도로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주민들을 대신해 정부에 저항한다.

여기서 주목할 장면이 있다. 빌리 더 키드가 정부 관료에 대해 항의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빌리 더 키드는 이야기 하기 전에 가면을 쓴다. 가면은 자신을 숨기는 도구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밥 딜런의 음악? 아님 밥 딜런의 위악과 은둔?

어찌되었든,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밥 딜런의 진짜 모습은 자유와 반항을 추구한 한 사람의 모습 아니였을까 싶다. 사회의 부조리와 관습, 프로테스트-포크라는 정형화된 틀, 권위주의적인 관료제, 인종차별, 속세의 굴레... 밥 딜런의 저항은 음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고, 그 저항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자유였다. 하지만 이런 자유의 추구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가정의 파탄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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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 쉽게 다가설 수 없다.

기술적으로 이 영화는 완벽한 영화다. 무심하지만 시크하게 내던져지는 밥 딜런에 대한 수많은 파편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치밀하게 세공되어 있으며,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토드 헤인즈의 내공은 탄탄하다. 특히 뮤지컬 부분은 그런 내공의 극치라 볼 수 있는데 'Ballad of a Thin Man'은 낮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멋졌다. 여기에다가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 진중함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리차드 기어의 밥 딜런은 유달리 튀긴 하지만, 그건 캐릭터 설정에서 오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꽤 힘들다. 우선 밥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은 일단 이 영화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밥 딜런에 대해 관심 있으며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진 이들이라도, 우리와 다른 사회적 장벽에 부딪치기 십상이다. 베트남 전쟁, 68 학생 혁명, 히피, 흑인 민권 운동.... 한때 동방독재지국이였던 이 나라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베트남 전쟁은 제외) 문화적인 갭도 심하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우리는 홍길동이니 전우치전을 보고 자란 문화권이다.(*3) 이 나라 사람들에게 빌리 더 키드는 딴 나라의 문화적 아이콘일뿐이다.

결정적으로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저 세 장벽을 넘은 평범한 미국인이라도 뒤죽박죽인 이 영화의 구성과 주제를 보자마자 한번에 파악했다고 말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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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어쨌든 결론을 내려야 하기에...

이 영화의 감상은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무척 잘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그 대상에 대해 관심 없는 이들은 그저 기나긴 수면제에 불과하다. 만약 밥 딜런에 대해 별 다른 지식이 없는 이들이 "난 밥 딜런을 알고 싶어!" 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이 영화는 밥 딜런의 사전적인 정의엔 별로 흥미가 없을 뿐더러 그 정의를 끄집어내 뒤죽박죽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영화다.

하지만 밥 딜런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가 이뤄낸 깊이는 [데어 윌 비 블러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만하다.(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밥 딜런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토드 헤인즈의 시각은 거장의 포스마저 느껴진다. 덤으로 밥 딜런의 음악을 영화 내내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4)

그리고, 한번 보고 이해 못했다고 좌절하지 마시길. 이 영화는 한번 보고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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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Like a Rolling Stone. (오마케)

영화의 결론을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6명의 밥 딜런 모두 어디론가 떠나간다. 빌리 더 키드는 기차에 몸을 싣고, 쥬드 퀸과 로비는 차를 타고 떠나간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그건 밥 딜런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던 그는 자유로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주1: 실제 우디 거스리는 백인이였다고 한다.
*주2: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이의 모델은 아마도 조안 바에즈 일것이다.
*주3: 포크 가수인 김XX 전기 영화에  전우치나 홍길동을 넣으면 어떨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망상이다.(웃음)
*주4: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밥 딜런 음반은 [Highway 61 Revisited] 하나 뿐이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때 'Like a Rolling Stone'이 흘러 나왔을때 환호성 지를 뻔...했다-_-;; (옆에 어머니가 계셔서 망정이다.)

뱀다리.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봤는데, 극장이 아담하면서도 깔끔해서 좋았다. 그나저나 밥 딜런이라는 이름이 의외로 이 나라에서도 먹히는 이름인가 보다. 사람들이 의외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