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giantroot2008. 4. 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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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이 혓바닥 뿐인 검은 욕망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전작 [펀치 드렁크 러브]와 똑같이 시작된다. 2.35:1 커다란 화면에 배우를 던져 넣고 관객들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다만 달라졌다면,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는 11분 동안 아무런 ‘대사 없이’ 뚝심 있게 관찰한다는 점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기가 팍 죽어버렸다. 너무나 압도적이고 우아해서.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배경은 1920년대 미국 석유 개발 시대이다. 영화는 인간혐오자인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한 석유업자의 인생을 쫓아간다. 그는 엄청난 집념으로 부를 이뤄내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점점 고립되어간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지극히 탐욕적이자만,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다. 그의 캐릭터에는 탐욕 그 이상들의 감정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인간혐오는 관계에 대해 자신없어 해 무관심으로 자신을 위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괴팍하지만 매력적이였던 [펀치 드렁크 러브]의 배리 이건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에 구원을 받았던 배리와 달리 다니엘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

보통 다른 영화에서 구원의 역할을 담당하는 종교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조롱받고 있다. 영화 속 종교를 상징하는 일라이 선데이는 구원과 전혀 먼 탐욕적이고 간사한 인물이다. 욕망에 솔직하기라도 했던 다니엘과 달리 그는 표리부동하고 비굴하다. 남을 구원하기는커녕 자기 자신 조차 구원 못할 인물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일라이의 굴욕과 몰락은 다름 아닌 구원의 기능을 상실한 종교의 몰락이며, 다니엘로 대표되는 자본의 승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라이를 몰락시키고 나서 다니엘이 내뱉는 “I'm Finished."에는 오히려 자멸과 절망의 기운이 역력하다. 그리고 암전되며 뜨는 There Will Be Blood라는 타이틀.

석유보다 컴컴한 극장을 나오면서 우리 가족은 이 영화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제각각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메리카 드림의 허상부터, 인간의 성격에 대한 고찰까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작품을 명쾌하게 정의 내리지 못했다. 작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오히려 훌륭했기 때문이였다. 나는 이 영화를 좀 미시적인 측면으로 봤는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 대한 형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훌륭했다고 적고 끝내기엔 말 해야 될게 많다. 우선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발견은 단연 일라이 역의 폴 다노 아닐까 싶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미 검증된 배우라서, ‘오... 과연 명배우’라는 느낌이였다면, 폴 다노는 진짜 어디서 듣도 보지도 못했던 괴물 그 자체였다. 그 외 조,단역들의 연기 역시 잘 통제되어 있다.

조니 그린우드의 영화음악도 상당히 독특했다. 그는 대뇌피질을 벅벅 긁는 음악 사이사이에 뻔뻔하게 감미로운 브람스 음악을 섞어넣는 방식으로 영화의 음악을 채워 넣었다. 그 결과는 ‘음향으로 실천한 소외효과’였다. 보는 내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고, 끊임없이 성찰을 요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음악은 정말이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풍성하고 압도적인 영화다. 물론 내가 무척 좋아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처럼 달콤함도, 화려함도 없지만 사람을 넉다운 시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녔다. 이 졸렬한 리뷰가 그 힘을 빛을 바래게 한 건 아닐지 조금은 걱정되지만, 그래도 많이 보았으면 해서 이렇게 끄적여봤다.

PS. 2주동안 붙잡고 썼다. 왠지 내 자신이 다니엘 플레인뷰 처럼 느껴졌다. 그냥 간단히 때워도 될 일을 리뷰 쓴다고 시간을 왕창 써버리다니. 하지만 난 이 영화에 대해 뭐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PS2. 부제는 최승호의 두번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