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를 들어라!
영국 대중 음악 산업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영국 경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금이야 상황이 다르지만, 6-70년대 대중 음악은 모두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 유명한 비틀즈,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킹크스 등등... 음악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한번씩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런 영국 밴드들이 세계를 주름잡았을때, 사람들은 이를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불렀다. 세계 대중 음악은 모두 런던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비치 보이스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명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의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은 이런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끝나고 1970년대 IMF로 영국 전체가 휘청휘청하던 시절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 등장한 섹스 피스톨즈가 기성 세대의 모든 것을 거부하며 모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있었고, 경제공황에 찌든 많은 청춘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이 맨체스터에 와서 공연을 했을때 별볼일 없는 저널리스트 토니 윌슨은 여기서 영감을 얻어 레코드 사 하나를 차리게 된다. 그 이름은 '팩토리 레코드'. 영화는 이 '팩토리 레코드'에 소속된 밴드들과 토니 윌슨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발랄하기 그지 없다. 같은 감독의 전작 [인 디스 월드]가 현실의 무게가 상당해서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여기저기 재기발랄함이 돋보인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 스티븐 쿠건이 열연한 토니 윌슨이 카메라를 똑바로 보면서 '짤린 장면은 DVD로 감상하삼'라는 대사, 극도로 과장된 카메라 움직임과 CG으로 [지옥의 묵시록]의 '발퀴레' 장면을 패러디하는 장면, 마지막의 회심의 일격까지 영화는 곳곳에 유머를 뿌려 놓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즐거운 영화도 아니다. 인기의 최절정에서 자살하는 조이 디비전의 이안 커티스(덧붙이는데, 점프컷으로 처리한 이안 커티스의 자살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음악에 대한 애정은 무한했지만 그 외에는 실패했던 조이 디비전 및 뉴 오더 프로듀서 마틴 하넷, 향략과 마약에 찌들어 구제 불능으로 변해가는 해피 먼데이즈의 숀 라이더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삶들은 순탄치 않다. 이런 인생들을 통해 영화는 쇼 비지니스의 추잡합과 냉혹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토니 윌슨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는 어찌 보면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처럼 대단한 집념과 야심을 가진 인물이다. 탐욕적인 모습도 있지만, 인간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철저히 계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던 다니엘과 달리 영화 내내 묘사되는 토니 윌슨의 사업은 무모하기 그지 없다. 팩토리 레코드의 수입은 벌어들이는 것에 비해 반만 얻었고, 그토록 인기가 있던 하시엔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정도면 가히 돈키호테 수준이다.
토니 윌슨의 이런 행동들은 영화 첫 장면 글라이더 비행으로 비유된다.(재미있는건 영화 스스로가 그것을 상징이라 뻔뻔히 밝힌다는 점이다.) 그 비행은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무한한 자유를 안겨주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를 통해 토니 윌슨의 사업은 단순히 돈 버는 것 이상의 것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했던 한 사람의 열정이였던 것이였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자본에 지배받지 않는 치열한 예술혼에 대해 진지하고도 위트있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디지털 카메라는 [조디악]이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처럼 때깔나는 화면(몇몇 있긴 하지만)보다 [어둠 속의 댄서]나 [인랜드 엠파이어]같이 기동성 및 실험성 중심이다. 옛날 라이브 영상과 허구와 뒤섞고, 다양한 영상들을 디졸브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유머를 표현하기도 하면, 롱 테이크로 진지하게 그들을 성찰하기도 한다. 얼핏 들으면 실험적이지만 난해하진 않다. 중심 소재인 음악이라는 매체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였다.
잘 만든 영화지만, 단점들도 있다. 우선 영화가 던져주는 정보량이 상당히 많아 후반부에서는 좀 헤맬수도 있고(지루하진 않다), 영화 전체가 토니 윌슨이라는 인물 중심이라 밴드나 청중 묘사는 가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해지는 경우가 있다. 결정적으로 대중 음악에 무관심한 관객들은 '이거 뭥미?'라는 반응을 보일만한 내용이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대중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윈터바텀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PS. 이번 리뷰의 부제는 [마크로스 7]에서 가져왔다.
PS2. 난 이 영화 미국 포스터가 싫다. 내가 생각하는 매드체스터는 저런 이미지가 아니다.
PS3. 뉴 오더 본인들은 이 영화를 안 좋아했는데, 그럴만하다. 뉴 오더는 영화 속에서 레코드사 말아 먹는 밴드로 나오니깐 말이다. 게다가 묘사도 얼마 안되고ORZ 그나저나 숀 라이더는 지금 어디 있을까?
PS4. 성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무덤덤했다. 참고로 수위는 한국에서도 18세 먹고 들어올만한 수준이다.
PS5. 나중에 안톤 코빈의 [컨트롤]나 본즈 제작의 [교향시편 에우레카 7]과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PS6. 토니 윌슨 본인은 200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7. 골룸 및 킹콩 모션 캡쳐를 담당한 앤디 서키스가 출연한다. 느낌은? 직접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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