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9 - [Deeper Into Movie/리뷰] - 피 [O Sangue / The Blood] (1989)
[행진하는 청춘]의 시작은 이상할 정도로 [피]를 닮아있다. 주인공의 가족이 주인공을 버려두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닮은건 구도 뿐이다. 어둠 속 지평선을 향해 사라졌던 [피]의 아버지와 달리 [행진하는 청춘]은 어두운 밖으로 내던져지는 가구들을 멀찍히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또한 사라지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벤투라의 아내 클로틸드다. 그리고 클로틸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긴 독백을 남긴 채 계단참에서 뒷걸음치면서 사라진다. 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피]가 버림받은 아이들에 대한 얘기였다면 [행진하는 청춘]은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뼈]에서 [반다의 방]로 넘어오면서 어떤 식으로 변화 일어났는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우선 [행진하는 청춘]은 [뼈]하고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우선 [행진하는 청춘]은 디지털로 (그것도 미니 DV) 찍었으며, 폰타야나스는 허물어져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리고 이전 영화에서 중심 인물이었던 반다는 조역으로 물러나고 벤투라라는 흑인 노인이 주인공이 되었다. 카보베르데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온 벤투라는 30년동안 폰타야나스에서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영화가 시작할 무렵 그의 인생은 많은게 변해버렸다. 아내는 떠나갔고, 폰타야나스의 집은 무너졌다. 그가 영화 내내 하는 일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거나 '아들'과 '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반대로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비주얼적인 면에서 [행진하는 청춘]은 여전히 [피]와 [뼈]에서 추구했던 유무성 가리지 않는 고전 흑백 영화, 특히 니콜라스 레이와 자크 투르뇌부터 시작해 무르나우와 프리츠 랑까지 이어지는 강한 빛과 그림자의 대조로 그려오던 표현주의의 유구한 전통에 존경을 바치고 있다. DV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와 다른 조명 연출이 필요함에도, 페드로 코스타는 [반다의 방]에 이어 새로 얻은 도구를 통해 마음껏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뽑아내고 있다. 어둠 속에 침잠한 벤투라와 사람들의 얼굴에 내려앉는 빛, 무채색의 색깔들, 프레임 밖에서 안으로, 또는 안에서 밖으로 등장시키거나 사라지는 인물들, 오브제처럼 이뤄진 인물들의 배치 속에서 흑백 영화의 유령들은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을 유혹한다.
중요한 것은 비전문 배우가 등장했음에도 분명하게 허구의 영역에 있었던 [뼈]와 달리 [행진하는 청춘]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가 적극적으로 모호하다는 것이다. 먼저 반다를 비롯한 '아이들'이 길게 늘어놓는 고백은 다큐멘터리적인 '인터뷰'에 가깝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 반다가 벤투라를 아버지라 부르는 장면에서 우리는 반다가 흑인 혼혈인가, 라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다의 남편 구스타보를 아들이라 부르며 조언하는 벤투라를 보면서 우리는 혼돈에 빠질수 밖에 없다. (실제로 구스타보는 비전문 배우가 아니라 이 영화 이전에도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단역 배우다.) 벤투라와 벤투라랑 동거하는 직장 동료 렌토의 에피소드 역시 다큐멘터리라 보기엔 무리수가 너무 많다. 이 시퀀스에서 언급되는 쿠데타는 렌토가 맞이하는 파국과 불타 죽은 유령이 등장하는 시퀀스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픽션이고 다큐멘터리인가? 페드로 코스타는 그에 대한 질문은 의미없다고 말한다.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처럼, 분명 픽션이라 느껴질 부분과 반대로 다큐멘터리라고 느낄 부분도 존재하지만 페드로 코스타는 굳이 구별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러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며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던 [피]와 [뼈]와 달리, [행진하는 청춘]은 벤투라의 주관적인 시점에 몰입하고 있는 영화다. 맥락없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렌토 에피소드는 분명 벤투라가 과거에 겪었던 일을 코스타가 다시 재구성한 재현극일 것이며, 반대로 벤투라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자기 고백은 사실상 벤투라를 인터뷰어 삼아 들려주는 자기고백일 것이다.
그 점에서 [행진하는 청춘]은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를 떠오르게 한다. 벤야민은 [이야기꾼]에서 이야기는 순수한 실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보고하는 사람의 삶 속에 일단 사물을 침잠시키고 나중에 다시 그 사물을 그 사람에게서 건져올리지만, 소설은 철저히 개인적인,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한 것”에서 시작해 그것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구분과 더불어 벤야민은 이야기에는 어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와 리듬이 주변 전체를 기억케한다고 하며, 이를 '서사적 기억'이라고 했다.
[행진하는 청춘]이 취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은 그 점에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서사적 기억을 영화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뤄져있다. [뼈]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페드로 코스타는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도 그저 익숙하고 오래된 곳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 혁명이란 목적하에 기획된 것들이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 그대로 [반다의 방]과 [행진하는 청춘]에 이르면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폰타야나스와 카보베르데 이주민의 이야기를 발견해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것에 집중한다. 다큐멘터리의 사적인 경험에 대한 고백과 경청, 과거에 있었던 사건 재연부터 허구적인 상징과 은유, 캐릭터/관계 설정까지... [행진하는 청춘]에서 중요한 것은 벤투라라는 인물이 겪었던 과거와, 아이들에게 전해듣는 현재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담긴 서사적 기억을 관객들이 공유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벤투라의 삶에 침잠된 폰타야나스와 카보베르데, 포르투갈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고 할까.
이런 서사적 기억을 통해 관객들이 뭘 체험하길 원하는가?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 [뼈]와 [피]로 돌아가보자. 이 영화들은 집 없이 방랑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집을 주요한 모티브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행진하는 청춘] 역시 코스타 특유의 '집'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다만 [피]가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얘기였고, [뼈]는 안정된 집을 갈구하며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얘기였다면, [행진하는 청춘]은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머물 집을 원하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페드로 코스타는 벤투라가 열쇠공을 만나서 깔끔한 아파트를 보면서 많은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간단하게 본심을 토로한다.
하지만 정작 [행진하는 청춘]에서 벤투라의 집은 허물어졌거나,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기껏 얻은 깔끔한 아파트에서도 벤투라는 바닥에 누워자거나 그 아파트를 벗어나 아이들을 방문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벤투라가 원하는 집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소통 아닐까? 이에 답하듯이 코스타는 문맹에 펜과 종이조차 없지만, 어떻게든 아내를 향한 연애 편지를 쓰고자 하는 에피소드를 집요하게 삽입한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편지 쓰는 걸 포기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난다.그렇다면 벤투라가 아이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쓰도록 안간힘을 쓰는 장면들은 하나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듣는 행위로 말이다.
페드로 코스타가 존 포드의 열렬한 지지자라는걸 생각해보면, [행진하는 청춘]은 존 포드 서부극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공동체에 대한 갈구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벤투라가 영화 내내 '뭔가 중단하지 말고 그대로 진행되도록' 쪽으로 행동한다. 불안정하게 튀는 LP를 끊임없이 듣는 사소한 행위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과거에도 렌토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도록 재촉하고 아이들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까지 벤투라는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아가 벤투라 자신도 포르투갈이라는 사회에서 유령과 다름 없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는 아이들이라는 단어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을 부르며 그들을 어떤 유대감을 마련한다. 이 점에서 [행진하는 청춘]은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에 등장했던 수평적인 공동체를 연상케 한다. 이 점에서 [행진하는 청춘]은 죽음에 대한 암시와 떠남으로 마무리했던 [뼈]하고는 확실히 차별하고 있다. 반다는 벤투라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며, 삶에 지쳐 자살한 젊은 청년의 유령은 벤투라에게 찾아가겠노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행진하는 청춘]은 다소 난해한 모양새랑 달리 의외로 조용한 감동을 주는 영화기도 하다. 반다와 그 아이들이 늘어놓는 고백의 조용한 에너지를 어찌 무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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