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ere/생각

폴 리쾨르의 미메시스 이론의 비판적 재구성: 비행 모델

giantroot2015. 7. 13. 00:56

일관성 있는 이야기란 무질서하게 지나가는 시간에 일련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기가 뇌의 운동이 곧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이러한 이해 방식은 이야기는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이야기란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주시하면서 그에 일련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폴 리쾨르는 시간과 이야기 3부작을 통해 서술성과 시간성의 순환이 악순환이 아니라, 그 양쪽이 서로를 보강하는 건실한 순환성임을 입증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시간성과 서술성의 상호 보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양자가 선순환을 이루기 보다는 통상 두 가지 상반된 형태로 나뉘어져 고찰되기 때문이다. 리쾨르는 이 대립을 심리적 시간과 우주적 시간으로 보며 이 둘의 측면만을 바라봤기 때문에 아포리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런 아포리아를 넘어서기 위해 리쾨르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 심리적 시간론과 우주론적 시간론이 서로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시간의 형상화로서의 이야기 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리쾨르는 이 해결책을 세가지로 나눈다.

 1) 심리적 시간과 우주적 시간 사이에 벌어지는 시간성의 첫 번째 아포리아의 해결책은 서술적 정체성이다.

 이야기 된 시간은 현상학적 시간과 우주론적 시간의 틈새 위에 던져진 다리와 같은데, 이 다리를 리쾨르는 제3의 시간을 만드는 <이야기의 재현활동>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은 나름의 고유한 변증법인 역사와 허구의 상호교배적 통합에서 솟아나는 새싹을 가지고 있다. 리쾨르는 동일성과 자기성의 차이를 말하면서 실체적 혹은 형식적 정체성과 서술적 정체성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이거나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갖는 카타르시스적 효과로 정화되고 정제된 삶이다. 이런 점에서 정신 분석학은 서술적 정체성 개념에 대한 철학적 탐색을 위한 교육적 실험이 된다. 주체는 자기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야기하는 스토리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며 역사적 공동체는 그 공동체가 생산했던 텍스트들을 수용함으로써 정체성을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리쾨르는 이런 해결책에 대해 한계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서술적 정체성은 일관되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것이다. 또한 주체의 자기성에 대한 물음을 완전히 규명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행동의 범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지보다는 상상력을 구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는 윤리적으로 올바름을 주장한다는 데서 이미 윤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2) 단수의 시간과 복수의 시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간성의 두 번째 아포리아의 해결책은 총체성과 총체화이다. 

 두 번째 아포리아는 단수 집합명사로 이해된 비켜갈 수 없는 시간 개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언제나 미래, 과거, 현재의 세 가지 탈자태로 분리되는데서 생겨난다. 총체화라는 절차는 역사에 대한 사유를 실천적인 차원에 위치시킨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한 매개 때문에 두 번 째 아포리아에 대한 이야기의 해결책은 첫 번째 만큼이나 적절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3)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시간의 세 번째 아포리아와 이야기의 한계

시간의 측정불가능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와 더불어 이야기를 통한 시간의 재형상화 그 자체의 한계가 있다. 전자의 내적한계는 이야기하는 기술이 고갈될 정도까지 넘어서서 가늠할수 없는 것에 근접하는 것을 뜻한다면, 후자의 외적 한계는 나름대로 시간을 말하려고 애쓰는 다른 종류의 담론들로 인해 이야기 장르가 넘쳐나는 것을 뜻한다.

 리콰르는 이 세 가지 아포리아를 이야기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가 그들 각각의 서술적 정체성을 탐구하도록 요구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면서 긍정적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리콰르의 이야기의 철학과 미학은 이렇듯 이야기의 시간의 모순성 간의 변증법적인 긴장관계를 풍부하게 포착하고 서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해결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줄거리의 다양한 분기, 개념적인 총체화와 우발적인 현재 사이의 불완전한 매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불확정성과 멈추지 않는 재형상화의 넘쳐남과 같은 한계들이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통한 형상화와 고차의식의 이야기가 비록 일정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의 확인이 이야기 하기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뇌 자체가 무의미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고 투명한 의식 장치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뇌 자체가 무의미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고 투명한 의식 장치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환경과 몸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조절하고 매개하는, 환경 생태학과 몸의 생리학에 의해 이종적으로 제약 받고 있는, 한계를 내포한 중개자라는 이유와도 합치할 것이다.

 이렇게 인지과학적으로 재핵석된 이야기의 시학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뇌의 이야기-하기와 전문적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이야기-하기를 하나의 통합된 틀 속에서 이해하는데 리쾨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등장한 미메시스라는 개념을 예시로 든다. 미메시스는 ‘고귀한 행동의 재현’으로 서술행위에 의존하지 않고 극의 작중 인물들에 수행된다.

 하지만 리쾨르는 이 비극 모델을 불협화음으로 간주하며 화음적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불협화음이 모여서 이뤄진 것으로 본다. 화음 안에 불협화음을, 인과적인 논리를 가진 줄거리 안에서 예기치 않게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적인 것을 포함하게 한다는 것, 윤리학에서 대립되는 개념들이 시에서는 겹합된다는 것은 “행동의 재현”이라는 미메시스가 다중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슨 리쾨르가 보기엔 미메시스는 허구적인 공간을 여는 단절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메시스 (1)은 시작 창조가 출발해야 할 상류로서, 모든 인간의 행동 중에서 재현의 대상이 될만한 가치가 있는 실천에 관한 윤리학의 영역으로 “전-형상화 단계”로 볼 수 있다. 즉는 행동의 뜻을 체험된 시간의 층위에서 풀어보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주목할 가치 있는 행동의 사슬인 뮈토스를 구성하는 창조적인 재현 행위가 바로 미메시스 (2)라고 할 수 있다. 비극의 뮈토스는 온갖 기대에 반해 행동이 가치 있는 사람을 불행 속에 던지는 방법들에 대한 탐험으로서 행동이 어떻게 미덕의 실천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가를 가르치는 윤리학과 대위법을 이루지만, 동시에 행동에 대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그 윤리적인 특징만을 빌려온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 “형상화 단계”로 지칭되며 미메시스 (1)에서 이해된 행동의 뜻을 줄거리고 꾸며, 실제로 이야기를 옮기는 과정이다. 형상화와 뮈토스는 이때 일치한다.

 한편 미메시스 (3)은 설득력 있는 사실임직함에서 비롯되는, 선택의 선택의 선택이라는 3차선택에 의한, “배우는 즐거움”과 관계되어 있다. 이는 “재형상화 단계”로서 텍스트의 세계와 독자 세계의 교차지점의 형성이다. 즉, 독자가 이야기의 뜻을 풀어 삶의 뜻을 찾아가는 작업이 이뤄지는 단계이다.

 이렇게 미메시스 (1)이 가리키는 현실 세계가 미메시스(2)를 통해서 형상을 갖추고 미메시스(3)을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재형상화를 통핸 우리의 체험은 그 깊이를 드러내고 방향성을 변형시킨다.

 리쾨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재해석하여 시간의 형상화를 통해 불협화음을 내표한 화음을 만드는 이야기 하기의 행위를 <윤리적 행동(프락시스)의 선별 -> 예술적 창작->작품-관객이 공동 구성한 문화의 세계>라는 절차로 압축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 하기의 일반 이론은 그 점에서 상류미메시스 (1)->시간의 형상화를 미메시스(2)->포이에시스통한 <삼중의 미메시스>를 통해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일반이론이라고 함은 단지 허구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 서술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이야기 일반에 대한 이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역사 서술에 대한 일반 이론을 미메시스적인 관점으로 따라가보자면 역사가의 역사 서술은 재현할 가치가 있는 행동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일정한 줄거리로 다시 엮는 선택의 선택, 마지막으로는 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 그로부터 어떤 윤리적으로 가치 있는 의미를 다시 해석해내는 선택의 선택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삼중의 미메시스라는 이야기의 일반이론은 인지생태학적인 이야기 이론과 비교해보면, 시간성과 서술성의 순환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이야기의 일반 이론은 인지생태학적인 이야기 이론과 달리 불협화음을 내는 화음을 만드는 반전을 가진 줄거리의 구성을 통해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현실과의 일시적인 단절을 통한 현실과의 재연결이라는 이중의 측면이 잘 드러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지생태학적 설명을 능가 하지만 동시에 단절의 측면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삼중의 미메시스는 물줄기보다는 비행의 모델로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비행 모델은 단절과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비행과 착륙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단절, 즉, 비행의 목적 역시 명확하게 해주며 단절의 위험을 잘 보여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