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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명의 전통: 초기 문화연구에 대한 고찰

giantroot2015. 6. 20. 18:40

(이 글은 존 스토리의 [대중문화와 문화이론]를 읽고 정리한 글입니다.)

다수의 대중문화는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소수 권력층의 정치적 관심거리였지만 그 이후로는 신호나 징후로서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변화는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비롯되었는데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노동관계로 인해 일어난 주거분리하고 연관관계가 있다. 이 때 피지배층만이 갖는 문화가 등장했고 문화의 융합과 회 안정이라는 개념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매튜 아놀드는 근대 대중문화의 연구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그는 직접적으로 대중 문화를 언급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일반적인 문화 영역 안에 대중문화의 위치를 규정했던 점 때문이였다. 아놀드에게 문화는 두 가지 의미로 시작하는데 지식체계로써 문화와 도덕적/사회적 이득을 주는 문화로 나눠진다. 아놀드는 “인간의 생각과 표현의 정수를 담고 있으며 이성과 신의 의지를 널리 퍼지도록 하게 하는 것”라고 문화를 정의하면서 그것들이 ‘읽고 관찰하고 생각함으로써 알수 있는 최선의 것을 알려는 열망으로 활기차게 객관적으로’ 얻을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놀드는 거기다가 “고상한 무위”를 추구하려고 하는게 대중문화라고 보고 있다. 

일견 정리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놀드의 이런 고찰을 읽어보면 무정부 상태야말로 대중문화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아놀드가 이런 고찰을 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도시 남성 노동계급이 정식으로 정치에 진입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되었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놀드가 1866-7년에 발표한 참정권에 대한 문제를 다룬 글을 읽어보면 그의 논의가 계급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놀드는 마르크스와 달리 결국 중산층과 귀족을 노동자 계급보다 우위에 두면서 영원한 정신이 상황의 도움을 받아 ‘이겨야’ 한다고 적고 있다. 즉슨 교육이 노동계급의 위험한 노동계급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이겨내는 문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권위의 중심 역할을 하던 귀족층이 쇠퇴한데다 민주주의가 출현하면서 노동 계급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욕구를 조절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법적 절차를 밟은 혁명’이라고 불리는 교육과 문명화에 대한 이론으로  그렇기에 아놀드는 대중문화에 대한 최초의 이론가로 불리지만 정작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정치적 무질서의 징후 정도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놀드의 이런 시설은 산업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특히 콜러릿지의 ‘문명의 발달을 이끄는 것은 교화된 지식인 계층의 기능’이라는 인식에서 비롯하고 있다.

 이런 아놀드에게 영향을 받은 리비스는 1930년대를 문화적 위기의 시대로 규명했다. 리비스의 연구는 40여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리비스주의는 “문화를 지켜 온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다”라고 보고 있다. 변천해온 것은 저 소수의 위상이다. 그런 소수의 위상이 상반되어 대량 문명과 대문화는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이끌 것처럼 위협하고 있다. 리비스주의는 이런 대항능력을 학교에서 훈련시키도록 선언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리비스는 대중 소설과 광고로 대표되는 현재의 돌이킬수 없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리비스와 리비스주의는 전원적인 신화적 과거를 호명하며 권위와 위계질서에 기반을 두면서 지적 자극과 감정적 즐거움을 주는 일반 문화를 찾기 시작했다. 리비스주의는 엘리티시즘으로 비판을 받지만 그가 문화 연구에 큰 역할을 했다는건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5여년간 미국의 지식인들은 대량문화에 대한 논쟁을 시작했는데 앤드류 로스는 대량이란 요소를 미국적/비미국적인 것의 공식적 차이를 밝히는 주요한 용어들 중 하나로 보았다. 로스는 그의 연구 대부분을 봉쇄라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랑 연관시켰는데 이 논의에서 로스는 다수가 저급한 문화를 택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미학적 자유주의, 대중문화 친절한 사회화 기능을 한다는 진보적 진화론의 태도, 사회통제 형식으로 보는 사회주의적 태도로 나눈다.

 버나드 로젠버그는 미국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복지가 대량 문화의 비인간적 영향으로 위협받는다고 보고 있으며 대량문화는 그 태생이나 표본 어느 쪽으로 보아도 미국의 고유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화이트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현재를 혹평하기 위해 과거를 낭만화한다고 비판하면서 또한 미국에서 고급문화가 얼마나 융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드와이트 맥도날드의 대량문화에 대한 비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다. 그가 보기에 대량문화는 고급문화의 생명을 위협하고 정치적 지배의 도구로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맥도날드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인데, 문화적 엘리트가 없는 미국은 유치한 군중으로 득시글거리는 대량문화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맥도날드의 전-트로츠키주의는 반 덴 하그의 자유주의로 옮겨감에 따라 분석은 다시 변한다. 반 덴 하그에게 대량문화는 대중사회의 대량생산의 불가피한 결과다. 고급문화에 대한 대량문화의 유혹은 하나는 대량문화에서 나오는 재정적 보답이고 다른 하나는 잠재적으로 엄청난 수를 차지하는 관중이다. 이는 군중이 취향이 전보다 저하되었다기보다는 서구사회에서 문화 제작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그는 미국에서 소비된 문화 텍스트와 그 산물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 역시 대량문화가 마약과 같은 것이라는 최종적인 귀결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대량 문화는 궁극적으로 결핍의 상징이며 이는 대리만족과 대리 인생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다. 반 덴 하그는 대량문화의 공허한 텍스트와 생산물들을 소비하면 할수록 결국 공허감만 더 커지고 그에 따라 대량문화의 소비는 더 늘어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기본욕구의 억압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만족의 경험이 어렵게 된다. 이 점에서 반 덴 허그는 대량 문화의 소비 방법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낭만적인 시각을 동원하는 ‘문화적 향수병자’하고는 다른 비판적인 시선을 획득하게 되는데, 대량생산기술을 없앤다고 더 만족하게 될지 모를지 알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에드워즈 실즈는 이런 반 덴 하그의 시선을 비판하면서 산업이 삶을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대량 문화에 있는게 아니라, 대량문화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응이다. 레슬리 피들러는 반대로 대량문화를 ‘분수를 모른다’라는 대중문화라 말하면서 미국의 대량문화를 동질적이고 평준화 된 것이 아닌 위계적이며 다원적인 것으로 보았다. 쉴즈도 비슷한 유형을 제시하면서 꼭대기의 우월한 문화, 중간의 평범한 문화, 바닥의 거친 문화가로 나누면서 평범하고 거친 문화가 우월하고 세련된 문화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변화를 나쁘게 보지 않으면서 미학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량문화에 대한 이런 논쟁들은 문화적 선택과 소비는 이제 소속계급의 징표이자 계급차이의 표시이며 소비자의 선택의 다양성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수 있다.

 문화이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적 성과를 보면 문화와 문명의 전통에서 입각한 접근방식은 다소 고루해보일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영국의 문화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걸 잊으면 안 된다. 한 세기 이상 문화분석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였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문화와 문명이 지닌 걱정거리는 한마디로 사회적 문화적 배타성과 범위의 확장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근대화로 인해 확장되어가는 대중과 대중 문화에 대해 기존 지식인계층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문제에 대해 시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민했다는 점에서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