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코스타의 [뼈]는 침묵으로 시작한다. 첫 프레임에 등장하는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거의 5분을 지나서야다. 그 뒤로도 인물들은 말을 삼가고 카메라는 그 침묵을 고정된 상태에서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우리가 캐릭터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된 술주정뱅이이자 가난한 무명의 청년, 그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가난한 여성들인 티나와 클로틸드, 티나와 클로틸드와 연계되어 있는 간호사 에두아르다가 서로 엮여가면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들은 그저 사건으로써 "존재"하며 장면을 잇는 인과관계만 남아있지 어떤 서사적인 연쇄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구조는 '뼈'만 남은 매우 앙상하고 단순하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뼈]는 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호사 에두아르다를 제외하면 폰타나야스 주민들인 세 남녀는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영화 내내 떠돌아다닌다. 아무렇지 않게 에두아르다의 집에서 자다가 가스 유출로 죽을 뻔한 티나, 에두아르다의 집에서 자고 있는 무명의 청년를 물끄러미 보다가 가스를 유출시키고 나오는 클로틸드, 에두아르다와 티나가 허름한 방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우리는 폰타나야스라는 공간에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서서히 말라가는 인간상들과, 약간의 교류의 편린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엔딩에 폰타냐아스를 떠나는 티나와 말없이 응시하다가 문을 닫는 한 소녀의 컷을 집어넣으면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들의 삶이 결코 약간의 교류의 편린만으로 위로할 수 없다고 매몰차게 선언하는듯 하다.
[뼈]는 이런 침묵으로 가득찬 세계를 표현주의적인 미장센에 밀어넣는다. 색은 우중충하게 무채색이며 프레임 내에서 공간은 낡아 비틀어진 벽과 계단들, 문 등으로 구획되어 인물들을 가두면서 삭막한 외계혹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비틀어진 미장센이 세트장에서 찍혀진게 아니라 폰타나야스라는 리스본에 실존했던 빈민가에서 찍혀졌다는 것이다.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폰타나야스 출신이며, 이 영화에서 시작한 폰타나야스 3부작을 위해 감독 페드로 코스타는 폰타나야스에 산 적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뼈]를 보면서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취한 영화들이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으례 취하고 하는 사실주의 방법론이 깨져나가는 걸 느끼면서 당혹해할수 밖에 없다. [뼈]의 세계는 어느 쪽으로 봐도 '사실적'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폰타나야스에서 캐스팅된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느릿느릿 움직이며 인물들을 짓누르고 있는 니콜라스 레이나 프리츠 랑 같은 뒤틀어진 흑백 영화의 공간과 프레임을 연상시키는 미장센은 분명 폰타나야스에 실존하는 곳이다. 이 모순된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뼈]에서 볼 수 있는 페드로 코스타 특유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뼈]의 이런 사실주의를 배격하는 전략은 오히려 사실주의가 간과하기 쉬운 요소들을 포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페드로 코스타는 켄 로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걸로 유명한데, 그는 그렇게 설명하면서 '내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도 그저 익숙하고 오래된 곳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 혁명이란 목적하에 기획된 것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보자면 [뼈]는 '기획'이 아니라 '발견'의 영화라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발견'이 사실적이고 따스한 묘사가 아니라, 빈민가에 숨겨진 극도로 표현주의적인 공간에 끼어서 메말라가는 인물들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페드로 코스타는 폰타나야스라는 공간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환원하는걸 거부하고 그들이 느끼는 우울증과 희망 없음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무엘 베케트나 존 포드, 펑크 록 (재미있게도 포드와 펑크 록 모두 페드로 코스타가 사랑하는 것들이다.)처럼 매우 단순한 구조와 방법론으로 구체화된다. [뼈]는 그 점에서 단순한 구조에서 영겁의 시간과 침묵으로 구성된 프레임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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