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中村一義 - [ERA] (2000)

giantroot2014. 3. 25. 00:26


1990년대 일본 컬리지 록, 사이키델릭 팝으로 진화하다.


나카무라 카즈요시의 [ERA]는 100s 체제로 들어가기 전에 만든 솔로 앨범이다. 데뷔때부터 일본의 토드 런그렌이라 불렸던 그는 첫 두 앨범인 [金字塔]과 [太陽]에서 앨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오만하지만 당당하게 6-70년대 영미권 선샤인 팝, 핫피 엔도와 아라이 유미, 야마시타 타츠로를 비롯한 197-80년대 뉴 뮤직, 컬리지 록, 쟁글 팝 등을 가져와 마구 가지고 놀았다. 


그 점에서 나카무라 카즈요시는 1990년대에 등장한 일본 분카이 (컬리지) 록 뮤지션들 중에서도 가장 유희적이다. 첫 앨범 [金字塔]이 집에서 혼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처럼, 나카무라 카즈요시는 그동안 축적된 음악적 전통을 지독하게 파고들고 재구성해 궁극적인 팝을 노렸다는 점에서 벡과 일즈의 오타쿠 버전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ERA]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멋진 팝들이 가득한 앨범이다. 나카무라는 '1,2,3' 'ゲルニカ'  'ジュビリー', 'ピーナッツ', '君ノ声' 등에서 순도높은 팝 멜로디와 올드 팝에 대한 애정을 뽐내면서 자신이 얼마나 탁월한 팝 작곡자인지 보여준다. 이 곡들엔 전작들을 사랑한 팬들이라면 실망시키지 않을 약간 쓸쓸하지만 흥겨운 감수성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ERA]가 전작과 다른점이 있다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스튜디오 작업의 끝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리가 매우 풍윤해졌다. 실제로 볼륨을 높이고 곡들은 들어보면 멜로디 아래에 제법 다양한 소리들이 숨어있다는걸 알 수 있다. 플레이밍 립스의 'She's Don't Use Jelly'를 연상시키는 '1,2,3'에선 드라이빙 강한 퍼즈 톤의 기타를 분절적인 리듬으로 배치해 그루브를 만들면서 동시에 잽싸게 슈게이징 멜로디로 가득찬 훅을 날린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쟁글쟁글거리는 어쿠스틱 기타팝처럼 시작하게 하는 'ジュビリー'는 버스 부분에서 샘플링된 드럼과 전자적으로 뒤틀어진 코러스가 기어나와 떠들석하게 만들고 발라드인 'ゲルニカ'에선 첼로와 전자 드럼의 만남을 주선하고 마지막엔 극도로 왜곡된 드럼비트가 기어나온다. 비교적 전작들의 재치있으면서도 애잔한 감수성에 가까운 '君ノ声'에서도 마림바와 코러스를 끌어온다.


그 중 압권은 '威風堂々' 연작과 'メロウ', 'ハレルヤ'일 것이다. '威風堂々'은 엘가의 '위풍당당'을 일렉트로닉 어법으로 재해석해 발라드인 2부작으로 넘기는 대담한 연작이며 'メロウ'에서는 냉소적인 보컬과 스크래칭, 시타르 음율, 힙합 리듬을 빌어 전작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하이브리드를 시도하고 있고, 후자에선 백파이프 소리로 시작해 월 오브 사운드를 연상케하는 다채로운 음향효과들을 통해 인생에 대한 거대한 찬가를 만들어낸다.


여러모로 [ERA]는 금싸라기 같은 팝튠들을 독특한 질감의 소리를 감싸안는다는 점에서 필 스펙터에서 시작한 월 오브 사운드와 1960년대 사이키델릭 팝, 1990년대에 등장한 네오 사이키델릭에 강한 영감을 받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나카무라 카즈요시는 비치 보이즈의 [Pet Sounds]라던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플레이밍 립스의 [Transmissions from the Satellite Heart]나 [The Soft Bulletin]을 내심 벤치마킹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또 앨범의 많은 트랙수와 백화점식 구성을 생각해보면 나카무라는 이 앨범을 비틀즈의 [White Album]나 토드 런그렌의 [Something/Anything?]처럼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때문에 [ERA]는 여러모로 의욕과잉인 앨범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게 한다. 특히 앨범의 클라이맥스인 'ハレルヤ' 이후로 이어지는 트랙들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사족인 감에 없잖아 있다. 'ロックンロール'는 1960년대 로큰롤을 재해석해 가치가 있었지만 간주격인 'バイ・CDJ'나 '21秒間の沈黙'은 휴지를 줘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그래서 앨범 전체를 듣기 보다는 곡 하나하나를 듣는 쪽을 선호하게 되는 앨범이다.


나온지 14년이나 지나서 돌아볼떄 [ERA]는 그야말로 나카무라가 솔로로써 자기 재능을 모두 쏟아부은 앨범 아니였나 생각이 든다. 이 앨범이 나온 뒤 나카무라는 [100s]를 만들면서 동명의 밴드를 만들어 전업했고 2012년에 돌아오기까지 솔로 활동은 중단했었다. 솔로에서는 더 이상 가능성을 찾아볼수 없었다고 봤을까? 그렇기에 [ERA]는 앨범 제목처럼 솔로 시절 (Era)를 총합하는 앨범이자 1990년대 일본 컬리지 록이라는 영역이 다다를수 있었던 소리의 극한을 담고 있는 앨범이다. 포크 록 기반으로 비교적 송스터에 가까웠던 서니 데이 서비스 (+소카베 케이이치), 보다 전자음악에 경도되어 있던 쿠루리하고는 다른 나카무라 카즈요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