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The Left Banke - [Walk Away Renée/Pretty Ballerina] (1967)

giantroot2014. 4. 17. 23:36


잊혀졌던 바로크 팝의 경전


미국 뉴욕 출신의 레프트 뱅크는 버즈와 러빙 스푼풀이 한창 일궈놓고 있었던 포크 록과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영감을 받아 등장한 밴드다. 실질적인 리더였던 마이클 브라운과 톰 핀이 중심이 된 이 밴드는 'Walk Away Renée'라는 데뷔 싱글이 히트치면서 일약 히트를 쳤다. 러빙 스푼풀의 멜로디를 비치 보이스의 하모니와 풍성한 소리들의 담은 뒤 클래식한 하프시코드와 플룻으로 (이 플룻 솔로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채색하면서 르네라는 여성을 향한 브라운의 절절한 짝사랑을 담고 있는 이 곡은 곧 짝사랑을 다룬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심지어 당시 인기 그룹이였던 포 탑스도 가져가 히트를 쳤을 정도다.


그렇게 싱글의 히트에 고무되어 만든 첫 앨범인 [Walk Away Renée/Pretty Ballerina]은 여러모로 초기 바로크 팝의 역사를 탐험하기에 좋은 앨범이다. 우선 [Walk Away  Renée]는 기본적으로 뉴욕 선배였던 러빙 스푼풀의 영향력을 무시할수 없는 앨범이다. 대부분의 곡들은 러빙 스푼풀과 서쪽의 버즈가 개척해놓은 찰랑이는 멜로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놓고 버즈풍 로큰롤인 'What Do You Know'이 그렇다.) 그 배후에 좀비스나 비틀즈 같은 브리티시 인베이전가 있으며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소리의 향연들은 2년전에 나온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의 후예라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선배들과 차별화 카드로 꺼낸 것은 역시 악기들이다. [Walk Away Renée]은 전반적으로 클래식, 특히 바흐와 헨델의 입김이 강한 앨범이다. 앨범 초반을 장식하는 브라운의 짝사랑 연작인 'Pretty Ballerina'와 'She May Call You Up Tonight'은 보통 기타가 주도할 부분을 피아노와 첼로와 바이올린이 중심인 실내악풍의 현악 연주로 채워놓고 있다. 전자의 경우 클라비넷 솔로가 고즈녁하게 깔리면서 묘한 애상감을 안겨주고있으며 후자 같은 경우 흥겨운 하모니에 버즈풍 일렉트릭 기타가 배경에 가세하면서 로큰롤을 시도하고 있다. 


중세풍의 고색창연함이 인상적인 도노반풍의 애시드 포크 'Barterers And Their Wives'에 들어서면 이들은 하프시코드를 꺼내온다. 이 하프시코드는 상기한 'Walk Away Renée'를 비롯해 'I've Got Something On My Mind'나 'Evening Gown', 'I Haven't Got The Nerve'에서 곡을 이끌면서 앨범 전반의 소리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Evening Gown'과 'I Haven't Got The Nerve' 같은 경우 하프시코드가 이끄는 로큰롤을 시도하는 대담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마이클이 겪었던 짝사랑 떄문인지 전반적으로 앨범 분위기는 차분하고 내향적인 편이다. 목가적인 분위기도 상당히 강한 편이기도 하고.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바로크 팝이라 할 순 있어도 선샤인 팝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앨범이다. 성향으로 보면 게리 어셔와 테리 맬처가 이끌었던 사지타리우스에 가깝다.


이 앨범의 전반적인 색을 결정한 거라면 역시 앨범의 프로듀서인 해리 루코프스키일것일이다. 실질적인 리더를 담당하고 있는 마이클 브라운의 아버지였던 그는 토스카나니가 있던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비밥에도 관여한, 그야말로 클래식과 재즈에 정통한 사람이였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전공인 현악을 적극적으로 살리면서 당시 융성했던 포크 록 씬에 바흐와 헨델, 바로크 음악을 데려와 창조적인 시너지를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16-18살이라는 앳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팝 멜로디를 뽑아내는데 성공했던 마이클 브라운과 톰 핀을 비롯한 멤버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참신함과 싱글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앨범 판매량은 실망스러웠고, 곧이어 마이클 브라운(과 매니저도 겸했던 아버지)과 나머지 멤버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기록에 따르면 충돌이 너무 심각해져 나머지 멤버들이 마이클이 녹음한 레코드를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라디오 방송국에 민폐로 낙인 찍히면서 인기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결국 마이클과 해리가 밴드를 빠져나가면서 레프트 뱅크는 그 찬란한 시작과 달리 초라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결국 방향성이 미묘하게 틀어지고 더욱 사이키델릭해진 수작 [The Left Banke Too]를 끝으로 레프트 뱅크는 단명하게 된다.


그렇게 레프트 뱅크는 단명하고 말았지만 그들이 60년대에 남긴 두 앨범은 곧 바로크 팝/챔버 팝/네오 사이키델릭의 선구주자로 남아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기 시작했다. 우선 XTC의 걸작 [Skylarking]와 거기에 실린 '1000 Umbrellas'하고 'Dear God'은 이들이 없었다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고, 벨 앤 세바스찬과 고키스 자이고틱 민치 역시 섬세하고 우울한 감수성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애를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존 브라이언과 에이미 만이 추구했던 다양한 층위의 악기들과 구조를 동원한 팝도 그 기반을 잃고 해맸을 것이다. 그렇기에 레프트 뱅크의 첫 앨범 [Walk Away Renée/Pretty Ballerina]는 일부 곡과 소수의 매니아들을 제외하면 묻혀있지만 음악사에 남긴 공이 만만치 않은 앨범이다.


P.S. 이 앨범은 LP로 나온 이후 한동안 절판상태였다가 1992년 [There's Gonna Be a Storm: The Complete Recordings 1966–1969]라는 1,2집 합본 앨범이 나오면서 처음으로 CD화가 되었다. 사실상 레프트 뱅크 재발굴에 큰 역할을 한 앨범이긴 한데, 다시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어졌다가 2011년 선데이즈드에서 개별 앨범으로 재리마스터링되어 발매 되었다. 


아무래도 선데이즈 판본이 최근에 나온 판본이라 유튜브엔 1992년에 마스터링한 버전이 떠돌아다니는데, 한마디로 리마스터링은 2011년 선데이즈드 판본의 압승이다. 음의 선명도로 따지자면 상대적으로 1992년 판본이 선명하게 되어 있지만, 너무 디지털 마스터링 특유의 쨍한 느낌이 강해지는 바람에 목가적인 느낌을 많이 해쳐버렸다. XTC의 [Skylarking] 2001년 리마스터처럼 마냥 선예도만 좋다고 해서 좋은게 아닌걸 잘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선데이즈드 판본은 원래 의도했던 목가적이면서도 무게감 있게 각 악기들의 느낌을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두터운 느낌이긴 하지만 곡의 질감을 생각해보면 이 쪽이 훨씬 원래 의도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싸더라도 선데이즈드 판본을 구하는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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